안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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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시절의 안익수(오른쪽)

안익수(安益秀, 1965년 5월 6일 ~ )는 1989년부터 1998년까지 K리그에서 선수로서 활약하였으며, 현재는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안익수
  • 등록명 : 안익수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생년월일 : 1965년 5월 6일
  • 신장/체중 : 183cm / 80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일화 천마 K리그 1989 22 6 0 0 3 0
1990 29 1 0 1 2 0
1991 12 4 0 0 1 0
1992 27 1 0 0 4 0
1993 26 2 0 0 2 1
1994 20 3 1 1 3 0
1995 17 3 0 0 4 0
포항제철 아톰즈 1996 30 7 0 0 3 0
포항 스틸러스 1997 34 1 0 0 4 0
1998 36 1 0 1 2 0
통산(K리그) 클래식 - 253 23 2 3 36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1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안익수 감독
  • 주요 경력
경력
기간 활동내역
1999년 천안 일화 천마 코치
2000년 ~ 2005년 성남 일화 천마 코치
2006년 고양 대교 캥거루스 여자축구단 코치
2007년 고양 대교 캥거루스 여자축구단 감독
2008년 ~ 2009년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0년 FC GS 수석코치
2011년 ~ 2012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2013년 성남 일화 천마 감독
2015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승리 무승부 패배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부산 아이파크 K리그 2011 19 7 13 6위 준우승 8강
2012 13 14 17 7위 미개최 32강
성남 일화 천마 클래식 2013 17 9 12 8위 16강
통산 (K리그) 클래식 - 49 30 42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1월 1일 기준


유소년 시절[편집]

그와 같은 세대의 프로 선수들이 일반적으로 초, 중학교 축구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것과는 달리, 비교적 늦게 숭실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 본격적으로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한건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시 후배들에게 라면을 사주면서 기본기를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고교졸업후 그를 데려가려는 대학축구팀은 없었고, 결국 학력고사를 통해 중앙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대 축구부 역시 일반 학생신분이었던 그의 입부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크게 상심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서면에서 다방 DJ 생활을 하는 등 잠시 방황하였으나,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인천전문대 (현 인천대학교)에서 축구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일화 시절[편집]

1989년 새로 K리그에 참가한 일화 천마는 고정운김이주를 비롯한 젊은 선수들을 수혈하고 있었다. 당시 일화의 창단 감독이었던 박종환 감독은 대학팀 경기를 눈여겨보던 중 파이팅 넘치는 수비수 안익수를 찾아냈고, 드래프트가 아닌 연습생 신분으로 일화 천마에 입단시켰다. 시즌이 시작되자 매게임 3실점 이상의 실점률을 기록하며 막장크리를 타던 수비라인을 보다 못한 박종환 감독은 안익수를 중용하기 시작했다. 안익수는 그 기대에 부응하면서 처절하게 무너진 수비라인을 홀로 지키며 22경기에 출장했고, 이듬해인 1990년에도 29경기에 출전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91년 전반기를 부상으로 날려먹은 것만을 빼면 매년 꾸준히 20경기 이상 출전, 일화의 철벽 수비라인을 이끌었다. 특히 사리체프가 입단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종화, 이영진과 함께 철벽 수비라인을 가동하며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일화의 3연패를 이뤄냈다.


포항 시절[편집]

하지만 1996년 안익수는 버려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살이었고, 천안 일화는 나이 든 수비수를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포항 아톰즈로 트레이드를 시켜버렸던 것.[1] 하지만, 포항에서 박성화 감독의 지원 아래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갔다. 이적 첫해 30경기에 출전하면서 팀의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했고, 1997년에는 포항의 아시아클럽축구선수권대회 (현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의 우승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또한 안익수는 포항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프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등 맏형으로써의 리더쉽을 보여주었고[2] 이는 포항 스틸러스의 약진에 큰 힘이 되었다. 1998년 시즌이 끝난 직후 은퇴를 선언하였고, 9년간의 K리그 생활을 마쳤다.


지도자 시절[편집]

1999년 친정팀 천안 일화 천마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안익수는 2005년까지 코치생활을 지속했고, 많은 선수들을 발굴해냈다.[3] 이후 영국 유학을 준비하다가 당시 대교 감독이었던 최추경 감독의 부탁을 받고 고양대교의 코치로 부임하였고, 이듬해 최 감독이 세상을 떠나면서, 고양 대교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고양대교의 전성기의 토대를 다졌다. 이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민국 여자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있던 안익수 감독은 2010년 FC GS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고, 2010년 FC GS의 K리그 첫 우승을 이끌었다. 동년 11월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내정된 뒤 2011년 부산을 지휘하며 부산축구의 부활을 이끌었던바 있다. 2011시즌 6위, 12시즌 7위를 기록하며 부산을 중상위권 궤도로 올린듯 했는데.. 2012년 12월 뜬금없이 성남 일화 천마 감독으로 부임해 부산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4][5]

2013년 성남 일화 천마에도 질식수비를 도입하며, 한때 전북, 울산, 서울을 연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뒤엔 팀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대전이나 전남, 대구 같은 하위권 팀에 고전을 면치 못해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다. 어찌어찌 8위이자 하위 스플릿 선두로 시즌을 마감할 무렵, 축구단이 통일그룹에서 성남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스승이자 대선배인 박종환이 성남 FC 감독으로 발탁되면서 당시 잉글랜드에서 지도자 연수중이던 안 감독은 자동 해임되고 말았다.[6]


에피소드[편집]

  • 수비수로서 프로 통산 200경기 이상 출장하면서도 퇴장은 단 한번밖에 기록하지 않았다. 본인은 "축구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을 해하는 플레이보단 기술적인 플레이를 중시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기술 좋은 수비수들을 많이 키워냈다.
  • 지도자 커리어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GS 수석코치 시절 GS 선수들의 안이한 정신 상태를 바로잡은 것으로 꼽힌다. 지난 5년간 그 어떤 코치는 물론이고 감독들도 해내지 못한 것을 반년 만에 이뤄냈고 이것이 빙가다 감독의 데뷔 시즌 K리그 우승 달성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
  • 여자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헌신하였다. 여자 클럽팀 최초로 클럽하우스를 건립하는데 이바지하였으며,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영어교육을 의무화 하였다. 게다가 일화 시절 동료였던 신의손을 골키퍼 코치로 선임하는 등 여자 축구클럽의 선진화에 기여하였다.
  •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알려져 있다. 국내 최상위 지도자 자격증인 P라이선스를 가졌고, 명지대 박사과정을 밟았다. 박사논문은 "K-리그EPL을 통한 실제 경기 시간과 경기 외 시간에 나타나는 축구경기력 특성에 관한 연구"이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2] ([이영미의 핫피플] U-18 대표팀 안익수)


참조[편집]

  1. 이는 박종환 감독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트레이드가 진행된 것이었고, 이에 격분한 박종환 감독은 스스로 천안의 감독직을 그만두고 말았다
  2. 특히 당시 포항에 갓 입단했던 이싸빅 선수도 안익수 선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고..
  3. 대표적인 예로 장학영, 김철호, 박우현 등이 있다. 장학영은 연습생에서 국가대표급 수비수로, 박우현등은 2군에만 머물며 방황하던 선수에게 재기의지를 불어넣어 1군 주전선수로 키워냈다. 당연히도 위에 열거한 선수들 모두 안익수 감독을 가장 존경한다고.
  4. 아직 부산과의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성남으로 가버린 셈이라 신의를 무엇보다 강조하던 안 감독 스스로 신의를 저버린 행동을 해서 부산팬들의 충격이 크다. 여기다 부산 구단주인 정몽규 선에서 안감독의 성남행이 허락된 것으로 밝혀져 더욱 부산팬들의 황당함은 커져가는 상황이다.
  5. 정몽규 구단주와의 사이가 안 좋았다는 카더라가 있다.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