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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당시 신생팀이던 [[현대 호랑이]]의 초대 감독이었던 [[문정식]] 감독은 PSV에서 활약하던 허정무를 국대로 복귀시킨다는 계획을 잡고있었다. 당시 허정무는 82년과 83년 PSV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한국에 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참여했었고, 83년에는 우승까지 차지했었다. 현대 스카우터(?)진은 네덜란드로 건너가 허정무를 설득하였는데, 당시 한국축구의 발전이라는 대의적인 명분을 내세워 허정무를 설득했고, 허정무는 현대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때 현대에서는 83년 대통령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를 같이 데려오려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바로 랜스베르겐이었다. | 1984년 당시 신생팀이던 [[현대 호랑이]]의 초대 감독이었던 [[문정식]] 감독은 PSV에서 활약하던 허정무를 국대로 복귀시킨다는 계획을 잡고있었다. 당시 허정무는 82년과 83년 PSV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한국에 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참여했었고, 83년에는 우승까지 차지했었다. 현대 스카우터(?)진은 네덜란드로 건너가 허정무를 설득하였는데, 당시 한국축구의 발전이라는 대의적인 명분을 내세워 허정무를 설득했고, 허정무는 현대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때 현대에서는 83년 대통령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를 같이 데려오려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바로 랜스베르겐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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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릎이 좋지않은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경기를 펼친 랜스베르겐은 85시즌 계속되는 무릎부상에 고전하면서 11경기에 출전해 단 2골에 그쳤고, 결국 85시즌 이후 랜스베르겐은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 하지만, 무릎이 좋지않은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경기를 펼친 랜스베르겐은 85시즌 계속되는 무릎부상에 고전하면서 11경기에 출전해 단 2골에 그쳤고, 결국 85시즌 이후 랜스베르겐은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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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이후 == | == K리그 이후 == | ||
+ | 네덜란드로 돌아간 랜스베르겐은 NAC 브레다에서 1시즌을 더 뛴 후 은퇴하였고, 현재는 PSV 아인트호벤의 트레이너로 재직중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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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 에피소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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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리그에서 활약할 당시 랜스베르겐은 36도나 되는 대한민국의 폭염속에서 어떻게 경기를 하냐고 투덜투덜 거린적이 있었다. <del> 우리 한겨울 날씨를 보면 아마 또 춥다고 투덜투덜 거릴듯 </del> | * 슈퍼리그에서 활약할 당시 랜스베르겐은 36도나 되는 대한민국의 폭염속에서 어떻게 경기를 하냐고 투덜투덜 거린적이 있었다. <del> 우리 한겨울 날씨를 보면 아마 또 춥다고 투덜투덜 거릴듯 </del> | ||
* 워낙 첫 시즌에 보여준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에 K리그 최초의 외국인 선수가 랜스베르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첫번째 외국인 선수는 포항의 [[호세1|호세]]와 [[세르지오1|세르지오]]) | * 워낙 첫 시즌에 보여준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에 K리그 최초의 외국인 선수가 랜스베르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첫번째 외국인 선수는 포항의 [[호세1|호세]]와 [[세르지오1|세르지오]]) | ||
+ | * 뱀발로 덧붙이자면 랜스베르겐 이후 K리그와 네덜란드의 인연은 뚝 끊겨있다 역대 K리그 외국인 선수중 네덜란드 국적자는 4명에 불과할 정도. <ref>그나마 개중 한명인 무삼파의 경우 네덜란드 콩고 이중국적자이다.</ref> 특히 2002 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신드롬을 생각해보면 신기할 따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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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3일 (토) 11:14 판
롭 랜스베르겐 (롭 렌스베르겐 Rob Landsbergen 1960.02.25~ )은 1984년부터 85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이다. 본격적인 외국인 선수의 서막을 알리는 선수이기도 하다. 원래는 렌스베르겐으로 알려져있지만 당시 언론은 랜스베르겐을 주로 사용하였으므로 당시 등록명이었던 랜스베르겐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프로필
- 이름 : Rob Landsber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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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이전
1978년 PSV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프로무대에 데뷔한 랜스베르겐은 빌렘Ⅱ로 임대된 80/81 시즌을 제외하고 아인트호벤을 위해 헌신했다. 당시 랜스베르겐은 한국에서 건너온 허정무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고, 이는 랜스베르겐의 한국행에 결정적인 역할로 작용했다.
K리그 시절
1984년 당시 신생팀이던 현대 호랑이의 초대 감독이었던 문정식 감독은 PSV에서 활약하던 허정무를 국대로 복귀시킨다는 계획을 잡고있었다. 당시 허정무는 82년과 83년 PSV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한국에 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 참여했었고, 83년에는 우승까지 차지했었다. 현대 스카우터(?)진은 네덜란드로 건너가 허정무를 설득하였는데, 당시 한국축구의 발전이라는 대의적인 명분을 내세워 허정무를 설득했고, 허정무는 현대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때 현대에서는 83년 대통령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를 같이 데려오려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바로 랜스베르겐이었다.
이적료는 13만길더 (당시 3천 6백만원) 연봉 1천 9백 20만원이었다. 허정무와 함께 84년 슈퍼리그에 뛰게된 랜스베르겐은 197cm의 당시로서는 엄청난 키를 바탕으로 공중볼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게다가 네덜란드 수비수로 뛰었지만, 현대에서는 공격수로 활약할 만큼 공격력도 날카로웠다. 랜스베르겐의 포스트 플레이에 다른 팀들은 혀를 내둘러야했고, 랜스베르겐은 84년 9골 9어시스트로 대활약. K리그 도움왕을 거머쥐게 되었다. 골과 어시스트에서 한 골씩만 더 성공했다면, 92년 라데가 최초로 작성했던 외국인 10-10클럽에 먼저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릎이 좋지않은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경기를 펼친 랜스베르겐은 85시즌 계속되는 무릎부상에 고전하면서 11경기에 출전해 단 2골에 그쳤고, 결국 85시즌 이후 랜스베르겐은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K리그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간 랜스베르겐은 NAC 브레다에서 1시즌을 더 뛴 후 은퇴하였고, 현재는 PSV 아인트호벤의 트레이너로 재직중에 있다.
에피소드
- 슈퍼리그에서 활약할 당시 랜스베르겐은 36도나 되는 대한민국의 폭염속에서 어떻게 경기를 하냐고 투덜투덜 거린적이 있었다.
우리 한겨울 날씨를 보면 아마 또 춥다고 투덜투덜 거릴듯
- 뱀발로 덧붙이자면 랜스베르겐 이후 K리그와 네덜란드의 인연은 뚝 끊겨있다 역대 K리그 외국인 선수중 네덜란드 국적자는 4명에 불과할 정도. [1] 특히 2002 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신드롬을 생각해보면 신기할 따름.
참고사항
- ↑ 그나마 개중 한명인 무삼파의 경우 네덜란드 콩고 이중국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