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모브
뒷쪽의 대전 선수는 한정국이다.
우르모브(1977년 8월 30일~)는 세르비아 출신의 축구선수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외국인 선수이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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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입단 이전
K리그 생활
김호곤 감독이 지휘봉을 잡던 시절 부산은, 전반에는 수비적으로 웅크리고 있다가 후반에는 공격적인 오버래핑으로 상대팀을 혼란시키는 전술을 써먹곤 했는데 우르모브가 이 전술의 키를 잡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즉 우르모브가 공격가담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부산 공격의 시작이자 끝이었을 정도. 특히 우성용, 마니치 등 장신의 부산 선수들에게 크로스를 떠먹여주며 공격 포인트를 쏠쏠히 모아 2001년에는 수비수임에도 K리그 도움왕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게된다.
하지만 2002년 김호곤 감독이 아테네 올림픽대표 감독직 선임을 이유로 부산의 지휘봉을 놓으면서 우르모브의 입장도 꼬이기 시작한다. 김감독의 후임으로 부산에 들어온 이안 포터필드는 정통 잉글리쉬 4-4-2 신봉자였기 때문. 포터필드에게 사이드 풀백이란 수비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롱패스만 잘 걷어내면 되는 존재였고, 오버래핑으로 빛을 발하던 측면 수비수 우르모브는 포터의 전술과 대립적인 위치에 놓여있었다. 결국 우르모브를 스트라이커로 돌리는 등 잡음을 내다 2003년 7월 우르모브를 FA로 풀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수원은 FA가 된 우르모브를 냉큼 줏어갔다. 계약금 35만달러, 연봉 12만달러에 3년계약의 조건. 당연히 이 때 부산팬들은 난리가 났고, 어떻게 K리그 도움왕 출신에 2003년 전기리그에만 7골을 쏟아넣은 선수를 저런식으로 내보내냐고 구단을 성토하기에 이르렀다.[1] 이 때부터 부산 서포터들과 포터필드와의 갈등의 골은 돌아올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
2003년 입단한 후 2004년 부상으로 시즌 초반을 날렸지만 이후 복귀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 및 윙백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2004년 7월 29일 수원에 방한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호쾌한 프리킥을 꽃아넣으며 1-0 승리를 이끌면서 수원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챔피언 결정전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김병지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수원의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 수원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은퇴 후에는 에이전트를 한다고 한다.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이 수비수였지만, 공격적인 재능에서 빛을 발했던 선수이다. K리그 역사상 신홍기 선수와 함께 '공격형 수비수(?)'라 자타가 공인할만한 선수. 프리킥과 코너킥 찬스에서 킥력의 정확도와 세기는 당대에 이기형, 고종수 정도를 제외하면 따라올 자가 없었다.
에피소드
- 바르샤 뿐만이 아니라 페예노르트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둔 선수이다. 유럽 팀에게 2연승을 거둔 K리그 소속 선수는 드물지 않을까?
- 수원에서의 활약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수원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이기도 하다. 섭팅콜도 있다. '우르모브 우르모브 너의 왼발의 마법을 보기 위해 노래해~'
경력
- 2003.7 - 2004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같이 보기
외부링크
참고
- ↑ 부산 서포터 단체인 POP가 구단 사무국을 항의 방문하고, 포터필드와의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포터필드는 '전술하고 맞지않는 선수였다.'는 말만을 남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