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2
김현석(金鉉錫, Kim, Hyun Seok, 1967년 5월 5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이며 울산 현대를 대표하는 레전드이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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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
1990년 현대 호랑이를 통해 K리그 무대에 데뷔하였다. 1990년대 내내 현대 호랑이 및 울산 현대의 주포로 활약한 김선수는 1996년 팀의 창단 첫 우승을 견인하며,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00년 일본 J리그의 베르디 가와사키로 이적하였으며,[1] 2000시즌 베르디에서 17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쳤보였다. 그러나 김현석이 빠진 울산은 2000년 K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고, 김선수는 베르디의 2년 재계약 의사도 거절하고 2001년 다시 울산 현대로 복귀하였다. 이 때 울산 복귀 인터뷰에서 "울산에 뼈를 묻겠다"라는 발언을 하면서 울산팬들을 눈물짓게 하였다. 그 후 2001시즌 PK골을 통해 K리그 통산 100호골을 기록하였고, 2003년 은퇴할 때까지 K리그 통산 110골을 넣었다. 이후 2003년 8월 K리그 올스타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후 코치로 일하던 김현석은 2004년 5월 29일 축구 유학을 위해 독일로 떠났다. 유학 후 울산 현대로 돌아온 김현석은 2012년 현재 울산 현대의 수석코치직을 수행하고 있다.
은퇴 이후
2003년을 끝으로 선수 은퇴 이후, 2004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베르더브레멘으로 약 1년 6개월간 지도자 연수를 떠났던바 있다. 근데 1년 6개월가지고는 독일어 익히는데만도 벅찰텐데.. 유학에서 돌아온 후 2006년부터 울산 현대의 코치직을 현재까지 수행중이다. 언젠가는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플레이스타일
문전혼전에서의 파괴력이나 볼에 대한 집착도 매우 뛰어났고, 여기에 당대 K리그에서 테크니션으로 최문식과 나란히 이름을 올릴만큼 기술적인 능력까지 겸부한 9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다만 불같은 성미으로 인한 폭력 시비, 팔꿈치를 이용해 상대 수비수를 압도하는(?)[2] 모습을 더러 노출한 탓에 상대적으로 평가가 깍이는 선수 중 한명. 특히 리그에서의 씹어먹을듯한 활약도에 비해 국가대표에서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국내용이란 오명을 들은 것도 이런 평가절하의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팬들을 비롯한 올드 K리그 팬들에게 김현석이 갖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지도자 스타일
에피소드
- 이런 김현석에게 Fu.. 을 날린 용자가 있었으니 바로 대전 서포터. 다행히(?) 김현석 선수가 은퇴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간듯. 선수 시절 같았으면 한국의 에릭 칸토나가 되셨을지도.. 아니 칸토나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이빨은 날아갔겠지대전개서포터도 그냥 이유없이 김현석에게 폭유를 날린건 아니었고, 김대수 vs 유상철 + 김현석 충돌사건 때문에 김현석과 대전팬간의 사이가 상당히 좋질않았던데 기인하는바가 크다.
경력
- 1993.6 ~ 1994 : 상무 / 군복무
- 2000 : 베르디 가와사키 / J리그
갤러리
- 김현석1.jpg
J리그 시절 김현석
- 김현석 코치.jpg
울산 현대 김현석 코치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