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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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경수.jpg
전북 현대 시절 이경수

이경수(1973년 10월 28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했던 수비수다.



프로필

  • 이름 : 이경수
  • 출생일 : 1973년 10월 28일
  • 신체 : 181cm / 76kg
  • 국가대표 경력
199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 대표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 6 2 0 0 1 0
1997 0 0 0 0 0 0
울산 현대 호랑이 1998 25 15 0 0 4 0
천안 일화 천마 1999 16 11 1 0 0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0 3 2 0 0 0 0
2001 14 11 1 0 2 0
대구 FC 2003 22 17 1 0 4 0
2004 13 8 1 0 3 0
대전 시티즌 2005 29 10 1 1 6 0
통산 (K리그) - 128 76 5 1 20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3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숭실대학교를 졸업했다. 배재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였고, 숭실대 시절에는 올림픽대표팀 명단에 오르내리던 선수였다. 올대 시절 강력한 중거리 슈팅과 프리킥 능력을 보유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입지를 다졌으며, 이후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본선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K리그

1996년 드래프트에서 창단팀 우선지명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였다. 당시 수원은 김호 감독의 야심찬 계획 아래,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출신을 싹쓸이 하다시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이경수는 김호 감독이 공을 들여 영입한 케이스였다. 폭넓은 포지션 이해도와 수비력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공격능력을 보유해 장차 대성할 재목으로 내다봤던 것. 그러나 수원에는 올리, 윤성효, 김진우 등 이경수 선수와 포지션 경쟁을 하는 자리에 막강한 선수들이 즐비했고, 결국 이선수는 후보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97년 시즌을 앞두고는 다리부상을 당해 1년간을 병상에서 보내야했으며, 1998년 신홍기와의 트레이드로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다.



이후 울산, 천안, 전북에 이르기까지 각 팀을 전전했다. 천안에는 올림픽대표 시절 코치와 선수로 인연을 맺었던 김학범 당시 천안 코치의 추천으로, 전북에는 숭실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이경수 선수와 사제관계를 맺었던 최만희 당시 전북 감독의 러브콜로 팀을 옮겼으나, 천안에서는 차경복 당시 천안 감독의 마음에 들지않아 1.5군에 머물렀고, 전북에서는 입단 직후 최만희 감독이 경질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야했다. 여러모로 운이 없었던셈. 이후 서울시청, 대구 FC, 중국의 쓰촨관청, 대전 시티즌을 거치며 노장 미드필더로 제역할을 다하다 2005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지도자 생활

2005년 선수 생활을 정리한 후, 김호 감독의 추천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윤성효 숭실대 감독을 보좌하며 지도력을 쌓은 이씨는 2009년부로 윤성효 감독이 프로 무대로 적을 옮기자, 그 후임으로 숭실대학교 축구부 감독직을 맡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정식 감독이 되면서 팀을 급격히 안정화시켰다는 평이며, 2012년 U리그 출전 첫 해에 우승을 거머쥐더니 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학축구계에서 손꼽히는 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2013년에는 U리그 2위와 추계대학연맹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좋은 행보를 이어가는 중.


플레이 스타일

  • 올림픽대표 시절부터 대포알 프리킥과 중거리 슈팅 능력으로 화제에 오르내렸던 선수였다. 그러나 주 포지션이 수비수임에도, 잦은 팀 이동으로 말미암아 팀 수비전술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프로 무대에서는 올대때 받았던 스폿라이트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에피소드

  • 2000년대 중반까지 K리그 역사상 가장 이적을 많이한 선수 1위가 바로 이경수 선수였다. 9년간 K리그를 뛰면서 6번 팀을 옮겼던 것.[2] 하지만 이 기록은 서동원 선수가 7번 팀을 옮기는 저니맨계의 금자탑(?)을 쌓으면서 2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경력

  • 2004.7 ~ 2004.12 : 쓰촨관청(四川冠城) / CSL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이 때의 트레이드를 두고, 축구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이경수가 유망주라 해도 96년 울산의 초대 우승 주역이었던 신홍기와는 비교할수가 없었기때문. 훗날 신홍기 선수가 강력하게 수원행을 희망하여 어쩔 수 없이 구색맞추기 용으로 이경수와의 트레이드가 성사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의문은 해소되었다..
  2. 해외리그 및 실업무대 이적까지 고려하면 10년동안 8팀을 옮겨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