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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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항서.jpg
부산 아시안게임 감독 시절 박항서

박항서(1959년 1월 4일 ~ 현재)는 대한민국 국적의 미드필더 출신 지도자다.




선수 프로필

  • 성명: 박항서
  • 등록명: 박항서
  • 출생일: 1959년 1월 4일
  • 신체 조건: 167cm / 63kg
  • 포지션: 미드필더
  • 국가 대표팀 기록
1978년 대한민국 U-20 대표팀
1979년 ~ 1982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 현 소속 클럽: 선수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럭키금성 황소 1984 21 3 2 1 2 0 0
1985 19 3 4 3 3 0 0
1986 35 3 6 3 4 0 0
1987 28 1 7 0 3 1 0
1988 12 5 1 1 2 0 0
통산 (K리그) - 115 15 20 8 14 1 0
K리그 기록은 리그컵 포함. 2013년 6월 6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89 ~ 1990 LG 치타스 트레이너
1991 ~ 1996 코치
1994 대한민국 트레이너
1997 ~ 200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0 ~ 2002 대한민국 코치
2002 대한민국 U-23 감독
2003 ~ 2004 포항 스틸러스 코치
2005 전남 드래곤즈 기술 고문
2006 ~ 2007 경남 FC 감독
2008 ~ 2010 전남 드래곤즈
2012 ~ 현재 상주 상무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아챔
경남 FC K리그 2006 14 6 19 12위 3위
2007 14 10 13 4위 조별예선
전남 드래곤즈 2008 10 5 14 9위 준우승 16강
2009 13 11 11 4위 조별예선 8강
2010[1] 9 9 14 10위 조별예선 4강
상주 상무 2012 7 6 31 16위 컵대회 미개최 16강
챌린지 2013 우승
클래식 2014



선수 시절

유소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난 박항서는 산청 생초초등학교와 생초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신고등학교에 스카웃되어 서울유학을 떠났다. 고교 졸업 후에는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여, 2학년 시절인 1978년 U-20 대표팀에 선발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979년에는 당시 국가대표팀 2진이었던 충무팀에 선발되었고, 1진인 화랑팀에도 명단을 올리는 등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다.


성인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성인 축구 무대에 입성한 그는 곧바로 군입대를 결심, 육군 축구단에서 군생활을 했으며, 전역 후인 1984년 제일은행을 떠나 슈퍼리그 팀이었던 럭키금성 황소와 계약하였다. 럭금 입단 첫 해 21경기에 나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연착륙한 그는 1985년 K리그에서 19경기에 나서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해당 시즌의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발되며 럭금의 중심축으로 떠올랐고, 은퇴하는 1988년까지 럭금에서만 115경기에 나서 20골 8도움을 기록하였다. 1988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친 박항서는 친정팀 LG 치타스의 트레이너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에 접어든다.


지도자 시절

감독 생활 이전

LG 치타스에서 트레이너와 코치를 역임한 박항서는 1997년 수원 블루윙즈의 코치로 합류하여 2000년까지 일했다. 2000년에는 휘스 히딩크의 부임과 함께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FIFA 월드컵 2002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4강 위업을 달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곧이어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드 경기대회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기대와는 다르게 동메달에 그치며 경질되었다. 1년 뒤인 2003년, 포항 스틸러스의 코치로 부임하여 팀의 2004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하고 사임했으며, 2005년에는 잠시 전남 드래곤즈의 기술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경남 FC 감독

2005년 창단 준비에 들어간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감독 첫 해인 2006년 K리그컵 3위라는 호성적을 거두었고, 이어진 K리그 2007 시즌에서는 기존 선수들의 재발견과 까뽀콤비의 대활약으로 구단 역사상 최초로 정규 리그 4위를 기록하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07시즌 중반 고향인 산청지방 인조잔디 업체 선정 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이에 당시 전형두 대표이사의 감독 흔들기라는 판단을 내린 팬들이 대표이사 퇴진 운동을 하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 챔피언십 1차전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고배를 마셨다. 박항서는 시즌이 끝난 뒤 곧바로 사임하였고, 전형두도 사임하면서 경남은 졸지에 수장 두 명을 잃어버린 꼴이 되었다.


전남 드래곤즈 감독

상주 상무 피닉스 감독

전남에서 경질사퇴 한 후 한동안 휴식을 보내던 박항서 감독은 2012년, 상주 상무 피닉스의 감독직을 수락하여[2] 다시금 K리그 구단의 수장이 된다.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상주 상무가 잔여경기와 상관없이 강등이 확정되자, 잔여경기 보이콧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한동안 강제실직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3]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계속 상주의 지휘봉을 붙잡았고, 상주를 K리그 챌린지 사상 최초의 우승팀으로 만들어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번째 승격팀의 감독이 되었다. 임대선수는 원 소속팀을 상대로 경기에 임할 수 없는 조항으로 인해, 매번 경기 때 마다 11명의 선발 선수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4] 저력을 발휘하여 그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지도자 스타일

  • 전반적으로 지도력은 우수한데 운이 정말 없는 감독으로 통한다. 창단구단인 경남 FC를 이끌고 창단 2년만에 K리그 4위로 끌어올린 업적이나, 2008시즌까지 10위권을 맴돌던 전남을, 2009시즌 마찬가지로 K리그 4위까지 끌어올리는 등 팀 분위기를 추스리고, 팀을 경쟁력있게 재탄생 시키는데 능력이 탁월하다는 소리를 듣고있다. 하지만 경쟁력있는 팀을 만들어놓고, 장기적으로 이를 유지하는데는 미숙하다는 평이다. 특히 팀 프론트와의 갈등, 선수단 장악 부족 등 경기 외적인 요소에서 감독직 경질을 자주 당하는 편이다.


에피소드

  • 선수 시절에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노안(老顔) 으로 통했다. 진경선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 50대에 접어든 지금이 오히려 선수 시절보다 젊어보일 정도다.
  • 리액션이 굉장히 굉장하다(;;) 선수들이 득점에 성공하거나 하는 경우에 보여주는 리액션은 정말 시원시원하다. 하지만 심판 판정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다가 퇴장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2010년 11월 9일경 자진사임하였다.
  2. 이는 국군 체육부대 축구단 사상 첫 민간인 감독직 수행이다.
  3. 관련기사 : [1]
  4. 관련기사 : [2]
  1. 넘겨주기 틀:K리그 1985 베스트 11

틀:상주 상무 역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