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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C GS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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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백지훈은 전남을 떠나 [[FC GS]]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GS는 [[이장수]] 감독 체제 아래에서 리빌딩을 시작했고, [[K리그]]에서 검증받은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훼이종]]과 [[노나또]]를 필두로 [[박성배]], [[이기형2|이기형]] 등을 영입한 GS는 즉시 전력감이었던 [[이준영]]을 전남에 내주고 [[백지훈]]을 데려오며 리빌딩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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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백지훈은 전남을 떠나 [[FC GS]]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GS는 [[이장수]] 감독 체제 아래에서 리빌딩을 시작했고, [[K리그]]에서 검증받은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훼이종]]과 [[노나또]]를 필두로 [[박성배]], [[이기형2|이기형]] 등을 영입한 GS는 즉시 전력감이었던 [[이준영1|이준영]]을 전남에 내주고 [[백지훈]]을 데려오며 리빌딩에 방점을 찍었다.  
  
  
* '''[[이준영]] (FC GS) <-> 백지훈 (전남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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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영1|이준영]] (FC GS) <-> 백지훈 (전남 드래곤즈)'''
  
  

2012년 2월 19일 (일) 00:54 판

백지훈의 골세리머니

백지훈(白智勳, 1985년 2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으로 뛰고 있다. 탈북패화의 1호 수혜자라고 주장했는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꼭 그렇지도 않은듯.




프로필

  • 이름 : 백지훈
  • 등록명 : 백지훈
  • 출생일 : 1985년 2월 28일
  • 신체 : 177cm / 68kg
  • 국가대표 경력
2004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2005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 본선 대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표
통산 A매치 15경기 출장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남 드래곤즈 2003 4 4 0 0 0 0
전남 드래곤즈 2004 18 10 1 0 1 1
FC GS 2005 22 16 2 0 2 0
FC GS 2006 15 10 1 0 3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 14 4 5 0 2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23 6 6 1 3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22 12 4 2 2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9 23 15 1 2 4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15 8 2 3 1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 0 - - - - -
상주 상무 2012 0 - - - - -
통산(K리그) - 156 85 22 8 18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시즌 종료시점 기준.


수상

개인


클럽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유소년 시절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태어나 봉래초등학교, 풍기중학교,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김진규와 동기로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어, 둘이 실제로 매우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지훈은 학창시절 축구센스가 뛰어난 선수로 정평이 높았으며, 2001년 백록기 고교축구대회 어시스트상과 2002년 전국고교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슈퍼루키의 탄생을 알렸다.



전남 시절

안동고를 졸업한 백지훈은 김진규와 함께 2003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전남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효시 김도근을 비롯해 유상수, 박종우, 이영수, 김홍철 등 쟁쟁한 선배들이 버티고 있었다. 때문에 백지훈은 즉시 주전감으로는 활용되지 못했지만, 간간히 조커 멤버로 나오면서, 주전경쟁에 서서히 열을 올렸다. 당시 백지훈은 U-20 청소년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백지훈은 박주영과 함께 2004 19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비록,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박주영에게 집중되었지만, 사실 이 대회를 우승하게 된 데에는 백지훈의 역할이 컸다. 백지훈은 전남에서 2004년까지 22경기에 출전 1골을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당시에는 어린 나이였고, 대표선수 생활로 인해서 자주 차출이 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연착륙이었던 셈이었다.


FC GS 시절

2005년 백지훈은 전남을 떠나 FC GS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GS는 이장수 감독 체제 아래에서 리빌딩을 시작했고, K리그에서 검증받은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훼이종노나또를 필두로 박성배, 이기형 등을 영입한 GS는 즉시 전력감이었던 이준영을 전남에 내주고 백지훈을 데려오며 리빌딩에 방점을 찍었다.


  • 이준영 (FC GS) <-> 백지훈 (전남 드래곤즈)


백지훈은 이장수 감독의 지원아래 22경기에 출전 2골을 넣었고, 이듬해인 2006년 전반기까지 15경기 1골을 넣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백지훈은 2006년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에도 뽑혔다.[1]당시 백지훈은 잘생긴 외모와 탁월한 축구센스로 일종의 신드롬 속에 2005년에 입단한 박주영과 함께 GS의 관중몰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콕콕신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수원 시절

2006년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백지훈은 GS와의 계약이 6개월 남은 상태였다. 당시 백지훈은 FA자격을 취득해 해외로 진출한다는 복안이었고, GS는 이적료 없이 백지훈을 보내기가 싫었는지, 수원에 백지훈을 제의했다. 당시 김두현의 이적으로 미드필더진이 박살나 있었던 수원은 OK를 외쳤고, 백지훈과는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백지훈의 수원행이 결정되어 버렸다. 당시 수원이 백지훈을 영입하는데 들인 이적료는 15억(!) 이관우의 이적료와 거의 맞먹는 액수였다. 수원에 가지 않겠다고 땡깡을 부린 백지훈은 어쩔수 없이 수원에 입단했고, 이때부터 백지훈은 수원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는다.

8월 26일 SK 유나이티드 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백지훈은, 9월 24일 후기리그 우승의 분수령이 된 울산 현대 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후반기에만 14경기에 나와 5골을 쓸어담으면서 팀의 후기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는 힘을 못쓰고 팀은 준우승. 이듬해인 2007년에도 백지훈은 멈추지 않았고 23경기에 나와 6골을 넣으며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8년 백지훈은 22경기에 나와 4골 2도움을 기록, 팀의 K리그 우승 리그컵 우승 2관왕에 1등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2009년 부상으로 계속 신음하는 바람에 23경기 1골 2도움에 그친 백지훈은 2010년에도 부상이 도지면서 15경기 2골 3도움을 기록했다. 2011년 현재 재활에 매진하고 있으며, 곧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또 부상을 당하며 수술대에 올랐다. 아마 8월쯤에 복귀가 가능할 듯 백지훈도 나름 유리몸인 선수중 한명이다 그리고 현재 상무 입대를 신청하여 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플레이 스타일

전반적으로 유소년기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었으나,[2] 이후로는 약간 주춤한 상태. 본인이 자기의 상황에 안주한다는 느낌이 든다. 체격조건이 윤성효 감독의 축구철학과 맞지않고 부상이 잦은감도 크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


에피소드

  • 득점을 하면 팀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징크스로 인해 '승리를 부르는 파랑새'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2006년 수원으로 이적하고 난 뒤 골을 넣는 경기마다 족족 승리하면서, 이 별명이 매우 부각되었다. 성이 '백'씨인 것에 착안하여 '빽가'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 서글서글한 외모 탓인지 여성팬들이 굉장히 많다. 팬클럽 이름이 '지훈경비구역'이다. 근데 작년에 수진과의 열애사실이 공개가 되면서 팬들은 좀 줄어든 듯?
  • FC GS에서 통산 3골에 그치던 백지훈이 수원으로 이적하면서 6골을 넣자. 탈북패의 최대의 수혜자라고 불리고 있다. 다른 탈북패의 수혜자는 심우연윤시호
  • 2008년 7월 있었던 FA컵포항 스틸러스와의 8강전에서 백지훈 선수가 쏜 중거리슈팅이 그랑블루 응원석에 있던 한 남자의 영 좋지않은 곳을 강타한 적이 있다. 그 남성은 아파서 죽을라하는데 주변에 있던 여관중들은 모두 야릇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으니.. 지못미. ㅠㅠ 아래 링크가 그 당시 상황을 아로새긴 것이다.


갤러리


참고 사항

  1. 다만 독일월드컵 본선무대에 출전은 못하고, 벤치에만 있다가 돌아왔다.
  2. 2003년에 처음 청소년대표에 발탁된뒤 불과 3년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