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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3일 (토) 01:55 판

유창현(1985년 5월 14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로 2009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격수다.


프로필

  • 이름 : 유창현
  • 출생일 : 1985년 5월 14일
  • 신체 : 181cm / 75kg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 스틸러스 2008 0 0 0 0 0 0
2009 25 18 11 5 0 0
2010 15 12 2 2 0 0
상주 상무 2011 21 13 2 2 4 0
2012 24 16 4 2 5 0
포항 스틸러스 2012 10 9 1 1 0 0
2013 4 4 0 0 0 0
2014 28 27 4 3 1 0
전북 현대 모터스 2015 7 7 2 0 0 0
성남 FC 2016 3 3 0 0 1 0
서울 이랜드 FC 2016 - - - - - -
통산 (K리그) - 137 109 26 15 1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7월 22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

논현초등학교,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 대구대학교를 졸업했다. 중동고 시절 서울축구협회장배 축구대회에서 골든골을 터뜨리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득점왕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대구대 진학 이후에는 이렇다할 수상 기록은 없었지만, 박창현 당시 포항 코치에게 눈도장을 얻어내며 포항에 입단하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08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지명되어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포항에서의 첫시즌은 유선수에게 시련의 시기였다. 1군 무대로의 콜업이 좀처럼 없었던 것. 하지만 2군리그에서 유창현 선수는 23경기를 나와 13골을 터뜨리는 활약으로 R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이후 세르지오 파리야스 감독의 눈에 들며 2년차를 맞이한 2009시즌 본격적으로 기회를 얻게된다.[1] 09시즌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출장 횟수를 늘려간 유창현 선수는 7월 무렵 6경기를 나와 5골을 터뜨리는 순도높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특히 2009 피스컵코리아배 K리그 컵대회 8강전에서는 수원 삼성을 상대로 2골을 터뜨리며 팀의 역전승을 견인, 스폿라이트를 한몸에 받기에 이른다. 결국 2009 시즌, 리그에서만 11골 5도움을 기록하였고 포항의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멤버로도 활약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유창현은 이전에 비해 출장 횟수가 줄어들었고, 결국 2010 시즌을 마친 후 상주 상무로 입대하게 된다. 상무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뒤 복귀해 2012년 9월 SK 유나이티드 전에서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2013시즌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주전 경쟁에 실패하며 4경기 출장에 그치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이후 2014년 박성호, 노병준의 이탈 후 조커로 1군 복귀 기회를 잡는데 성공하였고, 드디어 2014년 3월 22일 對 수원 삼성 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2]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2015 시즌을 앞둔 겨울 이적 시장에서 김형일과 함께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여 7경기 출장 2골을 기록한 뒤, 2016 시즌 직전 성남 FC로 재차 이적하였다. 그러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3경기 출장 0골이라는 안타까운 기록을 남긴채 여름 이적시장에서 서울 이랜드 FC로 임대되었다.

플레이 스타일

수비수 뒷공간을 파고들며 미드필더에서 오는 패스를 한두번의 볼 터치 이후에 슛으로 연결하는 스타일이다. 공을 잡고 수비를 제치거나 몸싸움으로 볼을 따내기 보다는 동료의 패스를 효과적으로 골로 연결해내는 선수이다. 몸싸움에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공중볼 경합시 헤딩골을 만들어 낸다. 이는 공간 활용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골키퍼의 왼쪽 방향에서 각이 없는 지점으로 돌파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이 지점에서 어려운 골을 만들어 낸다.

에피소드

프로 데뷔 전 대구대학교 재학시절이던 2006년도 FA컵 예선전에서 아마추어 클럽인 전남여수아이엔지넥스라는 듣보잡 팀과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의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모교 축구부를 32강전에 올리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 후 32강전에서 대구FC와 맞대결(대구더비?)을 펼치게 되는데 당시 대구대 에이스 NO.10 유창현 선수는 기숙사에서 불과 1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의 대구월드컵경기장(대구스타디움)에서 K리그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떨칠 기회를 잡았으나 정확히 1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59분 동안 옐로카드 2개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함으로써 팀의 역전패에 빌미를 제공하였다. 경기내용과 장내 분위기를 요약해보면 전반 3분만에 팀 동료인 NO.11 홍진섭 선수의 선취골을 따내며 당시 경기장을 찾은 대구대 축구부 선수들의 가족들과 지인들로 추정되는 일부 관중들의 열성적인 응원에 힘입어 경기 초반부터 대구대가 기선을 제압하였고 수요일 저녁시간에 펼쳐진 아마추어와의 경기라서 대구FC를 응원하러온 서포터즈 또한 극소수에 불과한 날이었다. 스코어보드도 0대1로 지고 있었으니 경기가 펼쳐지는 곳이 대구FC의 홈구장인지 대구대학교 운동장인지 구분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가 싶었지만 경기시간 55분 대구 FC의 2006 FA컵 득점왕 장남석(승부조작)선수와 83분 하대성(국가대표)선수에게 차례대로 동점골, 역전골을 허용해 너무나도 아쉽게 탈락하였다. 결국 이변은 없었지만 시즌 초 2006 통영컵(통영국제프로축구대회) 우승으로 기대치가 한껏 높았던 대구FC 서포터즈의 팀에 대한 자부심에 크게 스크래치가 났었던 경기로 기억된다. 여담으로 대구 FC는 다음 라운드인 16강에서 만난 중앙대를 상대로 6대0으로 떡실신 시키며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프로축구단 채면을 살렸다. 유창현 선수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 데뷔 후에는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하나의 레드카드도 받은 적이 없는 신사적인 페어플레이어(?)가 되었다.

경력

같이 보기

참고

  1. 사실 포항은 2009시즌에도 유창현 선수보다는 야심차게 영입한 남궁도 선수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있었다. 하지만 남궁도 선수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결국 유창현 선수를 땜빵으로 올려야했고, 그리고 그 기회를 유창현 선수는 놓치지않았다.
  2. 1년 6개월여만에 기록한 리그 득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