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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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절 김형일

김형일 (1984년 4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7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앙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형일
  • 출생일 : 1984년 4월 27일
  • 신체 : 187cm / 83kg
  • 수상경력
2009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DF 부문 수상
2013년 K리그 챌린지 시즌 베스트 11 DF 부문 수상
  • 국가대표 경력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대표
2009 ~ 201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경기 출전)
  • 등번호 :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2007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K리그 29 2 0 1 11 0 0
2008 16 3 0 0 7 0 0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3 0 0 0 1 0 0
2009 30 1 2 1 9 0 0
2010 22 2 2 1 8 0 1
2011 21 2 0 0 3 0 0
2012 상주 상무 상주 상무 17 2 1 0 3 0 0
2013 챌린지 26 0 0 0 3 1 0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클래식 2 2 0 0 0 0 0
2014 14 3 1 0 3 0 0
2015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24 2 0 0 4 0 0
2016 13 1 0 0 4 0 0
2017 부천 FC 1995 부천 FC 1995 챌린지 0 0 0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191 20 6 3 53 0 1
K리그 챌린지 26 0 0 0 3 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8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인천광역시의 부평초등학교, 부평동중, 부평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경희대 3학년 시절 무릎을 다쳐 1년간 결장하기도 했다고. 다행히 4학년 시절에는 부상없이 그라운드를 누벼 프로팀 스카우터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프로 시절[편집]

대전과 포항 시절[편집]

2007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2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최윤겸 당시 대전 감독은 김형일 선수에게 과거 최거룩 선수 등에게 맡겼던 파이터형 수비수 보직을 맡겼고, 김선수는 넘치는 투지와 끈질긴 수비로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김형일 선수가 든든히 버틴 대전은 2007년 악재 속에서도 K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게된다. 유난히 대어급 신인이 없었던 2007년 김형일 선수의 활약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고, 덕분에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K리그 신인왕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1]

이처럼 데뷔 시즌부터 대전의 핵심 선수로 등극한 김형일 선수에게, 대전팬들은 많은 기대를 아끼지않았다. 그런데.. 2008년 5월, 당시 대전의 김호 감독은 자신의 애제자인 권집 선수 영입을 위해 포항 스틸러스에 현금 트레이드를 제의했고, 이에 트레이드가 합의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 대전은 권집 선수의 이적료를 지불할 자금이 없었고, 포항은 대전측에 현금이 없으면 선수라도 달라고 요구한 결과 권집과 김형일의 트레이드가 성사되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대전 입장에서는 팀의 잠재적 프렌차이즈 스타를 눈뜨게 내준격이 되었고, 김형일 내주고 데려온 권집은 2010년 K리그 승부조작에 연루되며 대전을 좀먹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대전 입장에서는 최악의 트레이드가 된셈. 반면, 포항은 김형일 선수의 영입으로 장현규, 조성환 등이 빠져나간 포항의 수비진에 주축 수비수를 얻게되었다. 특히 2009년 김형일 선수는 아챔과 리그에서 대활약하며,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고 2011년부터는 팀의 주장을 맡아 활약하기도 하였다.


상주 상무 입대 이후[편집]

2012시즌을 앞두고 김선수는 상주 상무에 입대했으며, 2013 K리그 챌린지 시즌 베스트 11에 오르는 활약을 보이며 2013년 11월 제대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김원일 선수가 포항의 주전 수비수로 성장하면서, 김형일 선수는 한동안 벤치를 지키거나 종료 직전 제공권을 노리고 원톱으로 투입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묵묵히 견디며 기회를 엿보다가, 하반기부터는 다시 출전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2014시즌 시작 전부터 중국으로의 이적설이 돌면서 팀 내 위치가 흔들렸고, 결국 주전이 아닌 로테이션 멤버로 나오면서 입지가 약화되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유창현과 함께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전북 시절과 중국 진출[편집]

2015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그의 평가는 그저 '땜빵용'에 그쳤다. 이미 주전인 윌킨슨김기희가 건재하고, 조성환도 팀에 다시 복귀한터라 그의 자리는 여전히 로테이션이라는 평가였는데.... 17R를 기점으로 그는 팀에 없어서는 안될 주축선수로 성장했다. 앞서 이야기한 선수들이 국가대표 차출, 포지션 변경,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그의 발돋움 시기가 매우 시기적절하기도 했으며, 그의 적극적인 맨마킹은 전북 전술과 좋은 시너지를 낳고 있다. 다만 경기때마다 (실점으로 이어지진 않으나) 잔 실수가 발생하는 점은 항상 문제거리로 남는다. 그러나 2016년에는 부상과 경쟁 포지션의 임종은 선수가 더욱 중용받는 이유로 13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에는 중국 슈퍼리그광저우 에버그란데에 입단하였는데, 주축 수비수 김영권의 부상을 잠시 대신할 자격이었기에 단기 계약으로 광저우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으로부터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서 2군 선수에 머무르다가 김영권의 부상 회복 소식과 함께 계약해지로 팀을 떠났다.


부천 입단[편집]

계약기간이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에 계약해지로 자유계약 선수가 된 김형일 선수는 K리그 클래식 소속의 강원 FC와 입단을 조율하였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로부터 지급해야 되는 보상금 문제로 이적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늘어지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K리그 챌린지 팀으로 눈길을 돌렸으며, 2017년 6월 29일로 부천 FC 1995에 입단하였다.


플레이스타일[편집]

상대팀 공격수를 압박하는데 능숙한 선수이다. 다부진 체격에다가, 대전 시절부터 몸싸움을 사리지않는 적극적인 플레이 성향으로 호평을 받았다. 검투사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 반면 스피드가 느리다는 것이 단점이다.


에피소드[편집]

  • 대전 시절 머리를 박박밀고 활약했는데, 당시 대전 시티즌 주장인 강정훈 선수가 권유한 것이라고. 상대팀 공격수가 삭발한 선수를 보면 위압감을 느낀다는 조언이었다.(;;)
  •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김형일은 팀이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후반 21분 김재성의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넣으며 2:0을 만드는 중요한 쐐기골을 만들어냈다.[2] 골이 들어가자, 김형일은 땅위에 엎드려 가만히 흐느끼다가 양손 검지 손가락을 하늘위로 올리는 세레모니를 하였는데, 바로 결승전 일주일전 세상을 달리한 아버지를 위한 세레모니였던 것이었다. 원래 포항구단은 삼우제까지 지내다가 오라고 김형일을 설득했지만, 김형일은 발인 후 곧바로 팀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우승을 결정짓는 가장 귀중한 골을 넣음으로써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7.01 ~ 2008.07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K리그
2008.07 ~ 2014.12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K리그 클래식
→ 2012.01 ~ 2013.08 상주 상무 상주 상무 K리그K리그 챌린지 군복무
2015.01 ~ 2016.12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클래식
2017.01 ~ 2017.05 중국 광저우 에버그란데 중국 슈퍼리그
2017.06 ~ 현재 부천 FC 1995 부천 FC 1995 K리그 챌린지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하지만 기자단 투표로 신인왕이 결정되는 특성상, 공격수인 하태균 선수에게 신인왕이 돌아가게 된다. 사실 신인왕의 저주를 생각해보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2. 이 골이 터지고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알 이티하드의 모하메드 누르가 만회골을 넣었으니 김형일의 골은 가치가 매우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