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금배 고교축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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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금배 고교축구대회(大統領金盃 高校蹴求大會)는 1967년 대한민국 대표팀이 멕시코 올림픽 진출에 실패하고, 각 급 대표팀이 아시아대회에서도 참패를 거듭하면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등학교 축구를 통해 한국 축구의 중흥을 이룰 것을 기대하며 만들었다.


역대 결과[편집]

횟수 년도 우승 스코어 준우승 MVP 득점상 비고
1회 1968년 동북고 1:0 한양공고 개인상 없음
2회 1969년 경희고 2:0 경신고 고재욱 (중동고) 시상 없음
3회[1] 1970년 대신고 1:0 한양공고 홍황표 (한양공고) 시상 없음
4회[2] 1971년 중대부고 2:1 한양공고 김은규 (중대부고) 정현복 (중대부고) 5골 우수상 : 이상엽 (한양공고)
미기상 : 안동헌 (대신고)
감투상 : 진정규 (현풍고)
5회 1972년 대신고 6:2 영등포공고 김희태 (대신고) 이종설 (중동고)ㆍ최돈원 (대신고) 3골
6회[3] 1973년 한양공고 2:1 경희고 박종원 (경신고) 박종원 (경신고)ㆍ이강민 (영남상고) 4골
7회 1974년 중동고 5<pk>2 부산상고 이성룡 (중동고) 송봉근 (안양공고) 6골
8회 1975년 청구고전남기계공고 김동윤 (전남기공) 수상자 없음 공동 우승
9회 1976년 대신고 1:0 한영고 조병득 (서울체고) 장외룡 (경성고) 4골
10회 1977년 동아고 1:0 대전상고 김장수 (동아고) 박혜성 (신흥실고) 5골
11회 1978년 동아고 6<pk>3 안양공고 왕선재 (동아고) 정환식 (한양공고) 5골
12회 1979년 청구고 1:0 마산공고 이흥실 (마산공고) 변병주백종철(청구고) 4골
13회 1980년 대전상고 2:0 한양공고 박해철 (대전상고) 수상자 없음
14회 1981년 금호고 2:0 중동고 오승석 (금호고) 박양하 (창신공고) 6골
15회 1982년 창신공고 1:0 부산상고 김홍운 (창신공고) 신연호 (금호고) 5골
16회 1983년 강릉상고 1:0 숭신공고 설대철 (강릉상고) 조인수 (강릉상고) 5골
17회 1984년 청구고 3:2 거제고 이수철 (청구고) 박창현(청구고)ㆍ최청일(거제고) 4골
18회 1985년 동북고 3:2 대신고 장용순 (동북고) 최종호 (동북고) 6골
19회 1986년 거제고 1:0 문일고 김장근 (거제고) 서정원 (거제고) 11골
20회 1987년 숭신공고 2:0 청주상고 박용경 (숭신공고) 이재영 (숭신공고) 4골
21회[4] 1988년 동대부고 2:1 숭실고 최문식 (동대부고) MVPㆍ대회 득점왕 동시석권
22회 1989년 거제고 2:0 풍생고
23회 1990년 용문고 3:2 강동고
24회 1991년 청주상고 2:1 동래고 이운재 (청주상고) 홍종경 (청주상고) 6골
25회 1992년 남강고 1:0 진주고
26회 1993년 안양공고 2:0 대신고
27회 1994년 배재고 2:0 운봉공고
28회 1995년 이천실고 3:2 동래고
29회 1996년 부평고 1:0 동래고
30회 1997년 안동고 12<pk>11 포철공고
31회 1998년 금호고 5:4 대신고
32회 1999년 포철공고 2:1 강릉상고
33회 2000년 부평고 1:0 광양제철고
34회 2001년 금호고 2:0 안양공고
35회 2002년 광양제철고 1:0 풍생고
36회 2003년 부평고 4<pk>1 보인정보고
37회 2004년 유성생명고 3:0 강릉농고
38회 2005년 수원공고 5<pk>4 중동고
39회 2006년 장훈고 3:1 보인정보고
40회 2007년 인암고 3:0 풍생고
41회 2008년 광운전공 6<pk>5 장훈고
42회 2009년 과천고 2:1 현대고
43회 2010년 현대고 1:0 안동고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진행
44회 2011년 수원공고 3:2 보인고 안동시민운동장에서 진행
45회 2012년 보인고 3:1 메탄고 효창운동장에서 진행
46회 2013년 언남고 6<pk>5 보인고 안동시민운동장에서 진행


각 대회 설명[편집]

  1. 1970년 6월 2일부터 7일까지 효창운동장에서 개최되었으며, 총 21개 고교팀이 참가하였다. 대회 초반 지방 고교축구팀들이 전원 탈락해버려 8강부터 서울팀들의 잔치가 되어버렸고, 결승전은 한양공고대신고가 격돌하였다. 결과는 후반 5분 대신고의 코너킥 상황에서 한양공고의 김수복 선수가 자책골을 기록한 것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대신고가 승리를 거두었다.
  2. 1971년 6월 12일부터 20일까지 효창운동장과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되었으며, 총 20개 고교팀이 참가하였다. 결승전에서는 작년 준우승팀 한양공고와 작년 우승팀인 대신고를 4강에서 7:4로 누르고 올라온 중대부고가 격돌하였으며, 중대부고의 2:1 승리로 끝이 났다.
  3. 1973년 6월 10일부터 17일까지 효창/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되었으며, 총 31개 고교팀이 참가하였다. 결승전에서는 하만욱, 유영빈이 골을 터뜨린 한양공고가 김대우 선수의 1골 만회에 그친 경희고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4. 대회 초반, 광운공고청구고진주고 등 고교축구계의 강호들이 잇달아 탈락해 이변이 속출했던 대회로 결승전은 동대부고숭실고가 격돌, 최문식과 김영철의 연속골에 힘입어 동대부고가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동대부고의 주장이자 대회 기간동안 7골을 몰아친 최문식 선수는 대통령금배 고교축구대회 역사상 첫번째 MVPㆍ대회 득점왕 석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트로피[편집]

우승컵은 순금으로 제작되었다. 원래 매 대회 우승 팀이 1년씩 보관하기로 했으나, 학교들이 보관에 난색을 보였던바 현재는 모조품을 수상하고 있다. 진품 금배 트로피는 금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대회 기간에만 전시된다고. (여담으로 원래는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금배 트로피를 영구히 가져가게 되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줄리메컵??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2회 연속 우승팀은 있었어도,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팀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고 해당 규정도 유야무야 없어진듯 하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