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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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시절의 변병주

변병주(1961년 4월 26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3년부터 1991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 후, 은퇴한 공격수이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나, 대구 FC 외국인 스카우트 비리에 주모자로 연루되어 불명예 경질되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변병주
  • 출생일 : 1961년 4월 26일
  • 유스클럽 : 연세대학교 졸업
  • 신체 : 174cm / 69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84년 LA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8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대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표
1988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대표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81년 ~ 199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77경기 출장 1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대우 로얄즈 1983 4 0 1 1 0 0
1984 19 9 4 1 1 0
1985 4 1 1 2 0 0
1986 12 5 2 3 0 0
1987 30 15 5 4 0 0
1988 11 6 2 3 0 0
1989 19 5 7 1 0 0
현대 호랑이 1990 10 3 3 0 1 0
1991 22 15 3 1 1 0
통산 (K리그) - 131 59 28 16 4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93 - 1996 인천 현대제철 여자 축구단 감독
1997 ~ 1999 용인대학교 축구부
2000 부산 아이콘스 수석 코치
2000 ~ 2006 청구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2007 ~ 2009 대구 FC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아챔
대구 FC 2007 10 7 19 12위 조별예선 탈락 16강 진출권 없음
2008 11 4 21 11위 4강
2009 7 9 17 15위 8강
통산 (K리그) - 28 20 57 승률 26.6%


유소년 생활[편집]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중학교 때 대구 청구중학교에 스카우트되어 축구인생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청구중, 청구고 시절 변병주 선수와 관련된 전설적인 일화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변선수 중 3시절, 청구중 상위 축구부였던 청구고등학교 주전 윙어가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자 청구고 감독은 경기 구경하는 겸 해서 와있던 변선수를 교체투입 시켰고, 변선수는 교체투입 후 3골을 쏟아넣으며 대활약해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 고교팀 감독이 청구고가 부정선수를 기용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국 우승기를 반납해야 했다고..


프로 생활[편집]

국가대표 경력[편집]

은퇴 이후[편집]

2009년 12월, 대구 FC 감독에서 자진 사임 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다. 2010년 현재,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태이다. 이후 2011년 초, 상주 상무의 전력분석관으로 변병주 씨가 선임되었다는 소식에 김현회 기자를 비롯 (아래 외부링크 기사 참조) 축구팬들이 성토하였고, 상주 상무는 변씨의 선임을 취소한바 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2년 여름 서귀포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변씨가 선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윙어로 일세를 풍미하였으며, 100m를 11초 전후로 주파하는 당시 국내에서 가장 빠른 축구 선수였다고 한다.


감독 스타일[편집]

대구 FC에서 보여준 축구는 '닥치고 공격 (닥공) 축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구의 공격 상황시, 대구 양 사이드 풀백은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와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대체로 센터백 2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공격 상황에 가담해 어떻게든 골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습을 허용한 상황에서는, 상대팀을 막을 수단이 없다시피 하는 단점이 두드러졌다. 결국 2007시즌 리그에서 36경기 62실점, 2008시즌 36경기 62득 77실점[1]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작성하고 만다. 이후 2009시즌부터는 에닝요, 이근호 등이 대구를 빠져나가면서 닥공축구는 구심점을 잃게 되었고, 변감독은 수비축구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수비도 공격도 안되는 상황을 연출하며 2009시즌 대구의 리그 최하위 행을 막지 못하였다.


에피소드[편집]

  • 1984년 LA 올림픽 아시아 1차예선 출전을 앞두고 박종환 당시 국가대표 감독의 훈련 방식에 불만을 품고있던 변병주는, 이태호, 최순호, 최인영, 박경훈과 함께 태능선수촌을 이탈한 적이 있었다. 일종의 태업이었던 셈.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변병주를 비롯해 5명의 선수에게 무기한 국가대표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으나, 여론이 저들 없이는 올림픽 본선 진출 불가능 으로 거세게 반발하였고, 실제로 이들 없이 치루어진 LA 올림픽 아시아 1차예선에서 국가대표팀이 가까스로 예선 통과에 성공하자,[2] 대한축구협회는 위의 징계를 철회하였다. 결국 위 4명의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복귀하였으나, 박종환 감독은 이태호ㆍ최순호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선수들을 중용하지 않았다. 일종의 괘씸죄였던듯. 후에 박종환 감독이 국가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야, 변병주는 국가대표 붙박이로 활약하게 된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참고로 이 해 리그 우승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시즌 득점이 65득점이었고, 대구의 62득점은 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또한 대구 77실점의 뒤를 이어 리그 최다 실점 2위을 기록한 팀은 광주 상무였으며, 총 63실점을 기록하며 대구와 14실점이나 차이나는 모습을 보였다.
  2. 당시 박종환 감독은 위 4명의 선수들을 대신하기 위해 이승희, 이문영, 김판근, 김종부1983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자신이 총애하였던 선수들을 대거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ㆍ출장시켰으나, 이들은 경험 부족 등으로 (당시 만 17세에서 18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들이었다.) 고전을 면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