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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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신이 좌중을 압도하고 계시다

백민철(1977년 7월 28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0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광주 FC에서 활약하고 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백민철
  • 별명 : 민철신
  • 출생일 : 1977년 7월 28일
  • 신체 : 184cm / 77kg
  • K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실점 도움 경고 퇴장
안양 LG 치타스 K리그 2000 0 - - - - -
2001 0 - - - - -
2002 0 - - - - -
광주 상무 2003 5 0 8 0 0 0
2004 6 0 5 0 0 0
GS 2005 0 - - - - -
대구 FC K리그 2006 23 0 26 0 1 0
2007 33 0 51 1 2 0
2008 36 0 77 0 2 0
2009 20 1 22 0 0 0
2010 33 0 68 0 3 0
2011 10 0 18 0 1 0
경남 FC 2012 8 1 16 0 0 0
클래식 2013 21 0 20 0 1 0
광주 FC 챌린지 2014 0 - - - - -
통산 (K리그) 클래식 - 195 2 311 1 10 0
챌린지 - 0 - - - -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3시즌 종료시점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동대부고를 졸업하고, 동국대에 입학할때까지만 해도 철저히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하지만 1998년, 동국대가 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거머쥘 당시 백선수가 동국대 주전 골리로 나서 동국대의 평균 실점을 1점 이하로 틀어막아내는데 성공해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다.


K리그[편집]

안양 시절[편집]

2000년 드래프트에서 백민철 선수는 5순위로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안양은 GK 코치로 데려왔던 샤리체프가 은퇴를 번복하고 주전 골키퍼로 뛰어야 했을 정도로 골키퍼 스쿼드가 열악했는데, 때문에 안양은 2000년 드래프트 당시 원종덕 (4순위) 선수와 백민철 (5순위) 선수를 잇달아 지명하는 등 골리 유망주 확보에 주력했었다. 그러나, 샤리체프가 41세의 나이로 왕년의 선방 퍼포먼스를 재연하며 안양의 붙박이 1선발을 차지했고, 2선발 골리는 원종덕에게 돌아간 상황이었기에 백민철 선수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다. 결국 안양 2군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낸후, 백선수는 상무 입대를 결심하게된다.


상무 시절과 대구에 오기까지[편집]

상무에서 박호진 선수, 이광석 선수와 함께 로테이션 멤버로 1군 무대를 뛴 백민철 선수는 2004년 광주 상무에서 프로 입단 4년차만에 1군 데뷔전을 치루었고, 군복무 2년동안 11경기 출장 13실점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전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역 후 돌아온 소속팀은 FC GS였고, GS에는 원종덕, 박동석 등이 이미 1선발과 2선발을 차지하고 김호준 등 유망주 골키퍼들이 즐비한 골리 포화상태였던지라 백민철 선수가 주전을 잡을 기회가 요원했다. 결국, 2005년 시즌 종료후, 자유계약 대상자가 된 백민철 선수는 대구 FC에 입단하며 그의 축구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맡는다.


민철신 도약[편집]

당시 대구 FC는 2003년 이래 1선발을 도맡아온, 김태진 이외에 골리가 마뜩치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백민철을 2선발 정도의 지위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전혀 딴판. 김태진 선수는 2006년 5월까지는 붙박이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으나, 2006년 5월 14일 對 경남 FC 경기와 17일 對 부산 아이파크 경기에서 잇달아 3실점, 5실점을 헌납해 주전에서 제외되었고, 이때부터 백민철 선수가 붙박이로 출장하며 그 해가 끝날때까지 1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잔여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고만 것이다. 처음으로 1시즌을 통으로 뛴 백민철 선수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매경기마다 서넛차례 선방 퍼레이드를 펼치는 등, 놀라운 활약으로 대구 FC 경기당 평균 실점을 1.1점으로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태진 선수가 2006년 남긴 평균 실점은 1.8점이었다.) 이에 대구 팬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듯한 복덩이 백민철 선수를 민철신이라 이름붙이며 찬양하기에 이른다.


대구에서의 활약[편집]

2007년과 2008년 대구 FC는 소위 공격 축구를 모토로 센터백 2명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가 공격진에 가담하는 고교 축구에서나 볼법한 극단적인 득점 지향적 축구를 구사했는데, 이래서야 골키퍼가 경기 때마다 신기에 가까운 선방 능력을 보인다한들 대구의 실점을 막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천하의 민철신도 이러한 악조건에서는 별수 없었던지 2008년에는 36경기 출장 77실점[1]이라는 경기당 평균 실점율이 2점을 초과하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이후 이근호, 에닝요, 하대성 등 공격 축구를 이끌던 선수들이 모두 이적하고, 장남석의 부상 이후 대구의 공격 축구는 사라졌고 백민철 선수의 부담도 한층 덜었다. 2009년 백민철 선수와 로테이션 경쟁을 의도하고 영입했던 조준호 선수가 플레잉 코치로 전력 외가 된 상황이라 2010 시즌도 백민철 선수의 활약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0시즌 이후, 경남 FC에서 데려온 젊은 골키퍼 박준혁이 빠른 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백민철 선수와의 세대교체가 예상되고 있다. 2011년 8월 현재, 박준혁 선수는 14경기 출장 18실점, 백민철 선수는 10경기 출장 18실점의 기록을 보이고있다. 박준혁의 급성장으로 세대교체가 예견되던 와중, 백민철은 부상으로 박준혁에게 완전히 밀려버렸다....


대구 시절 이후[편집]

2012시즌 개막을 1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2012년 2월 27일, 경남이 백민철을 영입했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 언제든지 1선발로 활약할 수 있는 실력이라, 김병지와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칠 듯. 뒷 이야기지만 대구 FC는 백선수와의 재계약에 실패하자, 2005년 이전 계약자라 FA 이적료가 발생하지만 이적료 없이 자유계약으로 풀어주었다. 다른 팀에서 부담없이 뛸수있도록 배려한거라고. 경남에서 이적한 유망주에게 밀려 경남으로 이적하는 게 왠지 아이러니... 하지만 경남에 와서도 2012시즌은 김병지에게 밀렸고, 2013시즌 신인 박청효에게 시즌 초반 밀리며 후보 골키퍼로 내려 앉았다. 아아 신이시여.. 하지만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박청효 선수가 불안불안 모습을 보여주자 전격적으로 주전으로 재기용되어 0점대 실점율을 보여주며 골문을 틀어막아 호평을 얻었다.

이후 2014시즌을 앞두고 광주 FC로 이적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반사 신경 하나로 치면 K리그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골대에서의 중량감이나 수비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상대적으로 처지는 편이나, 반사신경 하나로 모든걸 커버한다. '이건 100% 골이다' 싶은 슈팅도 '백민철이라면 막아낼지도' 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유일한 선수일듯 싶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그런 모습도 많이 줄었다는 평이지만 여전히 중간 이상은 해준다. 특히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인다 ;;.. KNN 더비용 영입


에피소드[편집]

  • 2007년 골킥으로 도움을 기록한 바 있다.
  • 2009년 당시 변병주 감독은 백민철을 2선발로 내리고 조준호를 1선발로 쓸 생각이었으나, 백민철이 있는 경기와, 없는 경기의 차이가 너무 커서 결국 백민철을 다시 기용했다고 한다.
  • 민철신을 일반화시킨건 국내축구갤러리의 대구빠 Allez대구의 찬양질 덕분이었다. 2007년인가 백민철 선수가 자신을 민철신으로 부르는 곳이 국축갤이라는 소리를 듣고 직접 방문해서 국축갤에 감사글을 남긴바 있다. (그러나, 이게 진짜 백민철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진위여부 불명)


경력[편집]

  • 2005 : GS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는, 역대 K리그에서 1시즌 골키퍼 최다 실점 기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