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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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모터스 시절의 서혁수

서혁수(1973년 10월 01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 1998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A-리그에서 활동했던 수비수이다. 덧붙여 A-리그 시절 오스트레일리아 영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1]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서혁수
  • 출생일 : 1973년 10월 01일
  • 신장 : 178cm / 77kg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 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북 현대 다이노스 K리그 1998 26 4 0 1 5 0
1999 34 0 5 8 5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0 32 2 0 6 2 0
2001 34 1 0 2 3 0
2002 31 4 0 2 6 0
2003 31 9 2 4 4 0
성남 일화 천마 2004 28 4 0 0 5 0
브리즈번 로어 A-리그 2005/06 21 0 2 0 3 0
2006/07 21 0 0 0 2 0
2007/08 17 0 0 0 2 0
2008/09 13 2 0 0 0 0
통산 K리그 - 216 103 24 23 20 0
A-리그 - 72 70 2 0 7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A-리그 통산 기록은 챔피언십 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경력
2012년 울산 현대 트레이너
2013년 스카우터
2014년 코치


K리그 입단 이전까지[편집]

제천동중, 청주상고(현 청주대성고),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6년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2년동안 실업축구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곧바로 닥쳐온 IMF 한파에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결국 프로 무대로 옮기지 않으면 축구화를 벗을 위기에 쳐했고 드래프트를 신청하기로 결심하였다.


K리그 생활[편집]

우여곡절 끝에 신청한 1998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지명되어 전북 현대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2] 당시 전북 감독이었던 최만희 감독은 서혁수 선수에게 스위퍼로서 3백 수비진의 중심을 잡아줄 역할을 맡길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입단 후 실시한 훈련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어 데뷔시즌부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99년 시즌부터는 공격적인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이 변화에 맞추어 맹활약하며 많은 공격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이후 붙박이 수비수로 경기마다 빠지지 않고 출장하는 선수가 되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한편 2001년 전북에 부임한 조윤환 감독은 부천시절의 전술을 운용하기 위해 부천 시절 자신이 중용했던 선수들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도중 2003년 성남의 윤정환을 영입 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8~9억에 달하는 이적료를 맞추기 위해 서혁수와 4억을 얻어주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3]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한 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 팬들의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2004년 시즌 종료후 성남 구단 내 노장선수 정리 방침에 따라[4] 신태용 등과 마찬가지로 성남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A-리그 시절[편집]

서혁수 선수는 선수생활을 이어가고자 했던 마음이 강했고 2004시즌 종료 후 퀸즐랜드 로어에 진출했던 신태용 선수가 A-리그 진출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자, 이 제의를 수락하면서 호주 A-리그 퀸즐랜드 로어(현 브리즈번 로어)와 계약할 수 있었다. 선콥에 입성한 서혁수는 이적 첫 해 부터 리그 전 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핵심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수비와 빠른 공수 전환 능력은 A-리그 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풀백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그는 첫 시즌, 팀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와 브리즈번 로어 팀 내 최고 명예인 개리 윌킨스 메달을 수상하며 일약 팀의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크레이그 무어와 왼쪽 풀백 파커와의 호흡은 상당히 좋았다. 당시 다른 팀이 넘사벽의 스쿼드만 갖추고 있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상위권을 노릴 수도 있는 수비라인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08/09시즌을 앞두고 영주권을 획득하며 팀의 외국인 쿼터도 줄여 주는 듯 여러모로 기여한 그였지만, 2009/10시즌 부임한 에인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스쿼드 개혁을 피해갈 수 없었고, 결국 재계약이 불발되어 선콥을 떠나게 된다.

이후 지역 리그인 브리즈번 프리미어 리그브리즈번 올림픽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서혁수는 안정된 플레이를 통해 팬들의 인정을 받았고, 꾸준히 좋은 플레이를 펼치며 2010년까지 활동하였다.


은퇴 후[편집]

2010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한 서혁수는, 지도자 과정을 거쳐 2012년 울산 현대의 트레이너로 부임하였다. 2013년부터는 울산의 스카우터로 선임되어 활동하는 등, 울산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는듯 했는데.. 2014시즌 종료 후, 조민국 감독이 경질되면서 그 여파로 서혁수 씨도 울산을 떠난 것으로 보여진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K리그에서의 주 포지션은 윙백이었고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한 안정된 수비를 펼치는 스타일이며, 수비적 재능 못지않게 심심치 않게 중거리슛을 성공시키기거나 전담 키커로도 기용되는 등 공격적인 재능도 상당한 편이다. A-리그 진출 후 로어 시절엔 주로 풀백으로 나섰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으로 기용되어 매트 맥케이마시모 머도카의 공격 작업을 보조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에피소드[편집]

  • 로어의 A-리그 경기에서 서혁수로부터 시작된 패스가 머도카를 거쳐 세르지오 판 디이크의 득점으로 이어지자, 해설자가 공격이 한국에서 시작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네덜란드에서 끝났군요라고 코멘트하기도 하였다.
  • 로어와의 입단계약 체결 당시, 메디컬 테스트 결과 '심장이 너무 크다' 고 입단이 불발될 뻔한 적이 있었다. 결국 국내 의료진이 '심장이 큰거 별 문제없음' 으로 진단서를 끊어주면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경력[편집]


업적 및 수상[편집]

클럽[편집]

개인[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국적 변경이 아닌 영주권 비자를 발급받는 형식이며 A-리그에서 영주권을 취득할 경우 외국인쿼터에서 빠지기 때문에 취득하였다고 한다.
  2. 1997년 IMF한파로 인해 실업축구단 반 이상이 해체함에 따라 수준급 실업축구선수들이 대거 드래프트를 신청하였다.
  3. 당시 전북 팬들은 조윤환 감독이 서혁수와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이적시키는데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4. 정확하게는 김학범 감독의 리빌딩 의지로 말미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