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환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파일:윤정환.jpg
부천 시절 윤정환

윤정환(1973년 2월 16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미드필더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플레이메이커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던 선수. 오오 윤느님 오오[1]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윤정환
  • 출생일 : 1973년 2월 16일
  • 신체 : 173cm / 68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96년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02년 FIFA 월드컵 대표
(통산 A매치 38경기 출장 3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별명 : 제리
  • 특기 사항
K리그 역대 선수별 통산 도움 순위 5위
역대 최다 K리그 컵대회 도움왕 수상자 (3회)


  • 리그 기록
시즌 클럽 리그명 리그 FA컵 리그컵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출장 득점 도움
1995 유공 코끼리 유공 코끼리 K리그 19 3 2 미개최 5 0 3
1996 부천 유공 코끼리 부천 유공 코끼리 15 0 5 ? ? 7 2 3
1997 부천 SK 부천 SK 7 2 2 ? ? 9 1 1
1998 16 1 3 ? ? 12 3 5
1999 11 2 3 ? ? 7 1 1
2000 세레소 오사카 J리그 29 3 -[3] 3 3 3 0 -
2001 26 4 5 6 1 0
2002 J2 26 2 3 0 -[4]
2003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30 1 3 0 0 미개최
2004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23 2 4 2 0 11 0 4
2005 19 1 4 5 0 12 1 1
2006 사간 도스 J2 41 2 - 2 0 -
2007 26 1 0 0 -
통산 (K리그) 140 12 26 7 0 63 8 18
통산 (J리그) 148 12 - 13 9 4 0 -
통산 (합산) 288 24 26 20 9 67 8 18
리그컵 기록은 한국의 컵대회와 일본의 컵대회를 일괄하여 리그컵 기록에 합산.
FA컵 기록은 한국의 대한민국 FA컵과 일본의 일왕배를 일괄하여 FA컵 기록에 합산.


지도자 프로필[편집]

파일:윤정환 감독.jpg
지도자 윤정환

주요 지도자 경력[편집]

연도 경력
2008 사간 도스 유소년 코치
2009 코치 → 감독 대행
2011 ~ 2014.8 감독
2015 ~ 현재 울산 현대 울산 현대 감독

감독 기록[편집]

소속팀 연도 리그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ACL
사간 도스 2011 J2 19 12 7 준우승 - 2라운드 참가자격
없음
2012 J1 15 8 11 5위 조별예선 2라운드
2013 13 7 14 12위 4강
2014 12 1 5 중도해임 3라운드
울산 현대 울산 현대 2015 K클 13 14 11 7위 미개최 4강 참가자격
없음
2016
통산 J리그 J1 40 16 30 -
J2 19 12 7 J2 준우승 1회 기록
K리그 클래식 13 14 11 -

승ㆍ무ㆍ패는 J리그K리그 기록만, 각국 컵대회FA컵 등은 성적만 기록한다.

유소년 생활[편집]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출생으로, 광주 광림초등학교, 북성중학교, 금호고등학교를 거쳐 부산 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프로 입단 이전부터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동아대 시절인 1993년 월드컵 대표로 발탁된 이래 동아대 시절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로 곧잘 부름을 받곤 하였다. 참고로 고종수 선수가 윤선수의 금호고 후배다.


프로 생활[편집]

유공 입단, 그리고 니폼니쉬[편집]

J리그 시절[편집]

유공에서 성공적인 프로 생활을 이어가던 윤정환을 탐낸 것은 일본이었다. J리그는 세밀한 패스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축구색을 도드라지는바, 뛰어난 패싱 능력을 가진 윤정환은 탐날 수 밖에 없는 자원이었던 것. 이 때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 팀은 세레소 오사카였고, 윤정환은 이적료 약 11억원을 기록하며 J리그 최고급 대우로 세레소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오사카 유니폼을 입은 윤선수는 뛰어난 패싱 플레이를 바탕으로 세레소의 운영진을 흡족케했다. 2000년 35경기에 나와 6골을 기록한 윤정환은 2001년 32경기에 나와 10골을 기록, 첫 두자리수 득점을 올렸지만 2000년 후반기부터 시작 된 답이 없는 자동문 수비 때문에.. 팀의 2부 J2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2001시즌 종료 후 타팀으로 이적하는듯 했으나, J2리그로 강등 된 세레소가 윤선수를 붙잡는데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잔류를 선택하였다. J2리그에서 2002 시즌을 맞은 윤정환은 29경기 2골을 기록하면서 활약하며, 소속팀을 J1리그로 승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K리그 복귀[편집]

2003년 이적료 50만 달러를 기록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 K리그에 복귀하였다. 당시 50억원이 넘는 돈을 퍼부으며 역대급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던 성남이었기에, 윤정환 선수의 영입은 성남을 더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성남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던 신태용과 포지션이 겹치는데다 차경복 감독의 전술과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었던 윤정환은, 주로 교체 출장에 그치고 말았다. 차경복 감독은 수비 가담이 적고 개인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이유로 윤정환을 중용하지 않았다고..[5] 결국 성남에서는 1시즌만 활동한 뒤, 부천 시절 5년 동안 코치로서 함께했던 조윤환 감독의 적극적인 영입 제의를 받아 트레이드 형식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게 된다.



조윤환 감독은 부천 시절의 전술을 운용하기 위해 여러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주로 부천 시절 자신이 중용했던 선수들을 영입했다. 윤정환도 그 중 하나였던 셈.[6] 다행히 조윤환 감독은 니폼니쉬의 제자답게 윤정환을 활용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강력한 미드필드를 구성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그리고 2004년 시즌 시작을 알리는 대한민국 슈퍼컵에서 친정 팀인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윤정환은 완벽한 플레이로 성남의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대활약을 예고했다. 그리고 시작된 2004시즌.. 전반기 전북은 2위를 기록하며 우승 후보로 까지 거론되었지만, 후반기부터 잇따른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와 전체적인 선수단 부진으로 인해 성적이 급하강하며 시즌을 마무리 지었고, 2005년 여름 조윤환은 감독직에서 사퇴 후 부임한 신임 감독 최강희는 선수단 리빌딩 과정에서 FA로 풀린 윤정환을 굳이 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윤선수는 2006년 J리그 사간 도스로 이적하며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고 만다.


사간 도스[편집]

J2의 작은 클럽인 사간 도스에서는, 비록 노장이었지만 한차원 높은 클래스의 기술을 선보이며 팀을 이끌었다.[7] 그리고 선수 활동과 함께 틈틈이 지도자 과정을 착실히 준비, 2007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지도자 생활[편집]

일본 시절[편집]

2008년 은퇴 후에도 사간 도스에 남아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0년 수석 코치 겸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였다.[8] 드디어 JFA S급 라이센스를 따낸 윤정환은 2011년부터 사간 도스의 감독을 맡고 있다. 2011시즌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선수들을 혹독한 훈련으로 다스린 윤정환은 만년 2부팀이었던 도스를 J1으로 승격시킨데 이어 승격 첫해인 2012시즌, 팀을 J1 5위에 올리면서 일본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에 도스시는 훈련장과 클럽하우스를 지어주기로 약속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듯 했는데.. 2014년 8월, J1리그 1위에 사간 도스를 올려놓는 등 순항하던 윤감독이 돌연 해임되면서 논란 속에 일본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 짓고 말았다.


울산 시절[편집]

사간 도스에서의 해임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ㆍ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 감독 내정설 등 설왕설래만 오고가던 윤정환은 2014년 12월 조민국 감독의 뒤를 이어 울산 현대 감독에 부임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에 1년 연장 옵션이라고.. 울산 감독 부임 이후에는, 2015시즌 팀 리빌딩을 꾀하며 자기 색깔을 드러내려 했으나 성적이 뒷받침 되질 않아 고생했고, 2016시즌에는 김신욱을 내보내는 등 극약 처방까지 내리며 분투 중이나 김신욱에 대한 애정이 컸던 울산 팬들과의 갈등으로 고생 중이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그의 플레이를 논하자면 천재 플레이메이커로는 수식이 부족할 정도. 환상적인 터치, 간결한 동작, 그리고 이어지는 정확한 패스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이끌어내게 하였다. 몸싸움을 약간 꺼려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그만큼 지능적으로 해결하는 스타일. 다만 윤정환 선수를 논할때 단점으로 체력이 부족한 반쪽짜리 선수라고 평가하는게 일반적인데... 정확히는 뛸 때와 안뛸 때를 구별했을뿐, 체력적으로 부족한 선수는 절대 아니다. 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아니다 싶으면 안뛴다' 스타일이었고, 이러한 점은 근성을 강조하는 한국 축구 스타일과 어울릴 수 없었기에 부정적 꼬리표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9] 여기에 팀 전체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카리스마와 경기 전체를 보는 눈도 한차원 높았던 선수로 니폼니쉬는 윤정환 선수를 두고 자기가 해야할 일을 다 알고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굳이 내가 지시할 필요가 없다. 는 평을 남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축구만화 주인공의 현실판 ㅜ..

또한, 윤정환 선수는 단순히 패스만 찔러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득점력도 갖춘 선수였지만, 기실 윤정환 선수는 득점 찬스가 엄청나게 많은 상황에서도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를 통해 어시스트 하는걸 즐겼다.[10] 다만 이게 좀 과해서 PA내 슈팅 찬스 상황에서도 부천 스트라이커 들에게 슈팅을 양보하곤 했는데.. 유독 득점 감각 있는 스트라이커가 부족했던 부천 SK였기에, 이러한 플레이 성향은 두고두고 약점으로 남았다.[11]


에피소드[편집]

파일:허당골.jpg
당시 윤정환의 패스로 실점을 허용한 김병지 선수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 1997년 4월 26일, 당시 부천 VS 울산 경기 도중, 부천의 윤정환이 필드에 쓰러진 선수가 치료 받는 상황이라 울산이 볼을 라인아웃 시켰던걸 관례대로 부천 볼이나 다시 울산에 넘겨준다는 것이 윤정환의 힘 조절 실패로 울산 GK 김병지 한테 패스한다는게 그만 그대로 골이 된적이 있었다. (옆의 사진이 그것) 이에 대해, 니폼니쉬 감독은 부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려 울산에게 1골을 내줄 것을 지시했으나, 부천 골리 샤샤 (공격수 샤샤가 아닌 골키퍼 샤샤다.) 만은 이 지시를 듣지 못해, 부천 선수들이 왜 수비를 안하냐고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울산의 슈팅들을 막아낸 일화가 있다. 결국 감독이 샤샤를 잠깐 불러 자초지종을 얘기한 이후에야 실점을 허용. 결국 1:1로 경기가 끝났다.


  • 신은 모든걸 주지 않는다고.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과 윤정환이라는 역대급 조합을 보유한 부천 SK였지만, 골을 넣을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그나마 밥값한 세르게이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윤정환 선수의 패스를 받아 두 세번의 기회안에 골을 성공시키는 선수가 없었다. ㅠㅠ 샤샤가 부천에 있었다면 윤정환 선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을텐데...[12]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문서 수정자는 윤정환빠다. 객관적인 문서가 아닐 수도(?) 있다.
  2. K리그 컵대회 도움왕만 3차례 차지하며, 역대 최다 수상자이기도 하다.
  3. J리그 공식 홈페이지 통계에는, 어시스트가 따로 기록되어있지 않다.
  4. 2002년부터 나비스코컵은 J1리그 팀만 참가하고 있다.
  5. 윤정환의 활약도와는 별개로 2003시즌 성남은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리그 우승을 가져가게 된다.
  6. 당시 8~9억원에 달하는 이적료를 맞추기 위해 서혁수에 4억을 얻어주었다. 당시 전북 팬들은 조윤환 감독이 김도훈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이적시키는데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때문에 윤정환 영입에 대해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7. 윤정환이 선수로 뛰던 시절, 사간 도스는 J2 4위를 기록하며 클럽 최고 순위를 기록한바 있다. 이후 윤정환이 지도자로 부임 한 뒤에는 J1 승격까지 성공한다.
  8. 사실상 2010시즌부터 사간 토스 감독직을 수행하였으나, JFA 공인 S급 라이센스만 감독 업무가 가능한 일본 축구 규정에 따라 A급 라이센스 소지자인 윤정환은 명목상 수석코치의 직위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9.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을 만난 것이 윤정환 선수에게 있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음이 여기에 있다. 다른 감독 같았으면 윤정환 선수의 재능의 반도 써먹질 못했을 것이라는게 중론. 당장 고 차경복 감독이 성남 시절 윤정환에 대해 내린 평가나 기용 방식만 봐도 이 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10. 때문에 K리그 통산 40도움이 넘는 선수 중, 강득수 선수와 함께 유일하게 40-40 클럽에 가입하지 못한 선수로 남았다.
  11. 이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1] 에서 홍차도둑님의 글을 보는 것이 좋다. 위 링크를 따라가 윤정환 시리즈의 일독을 권한다.
  12. 실제로 부산 대우 로얄즈샤샤를 매물로 내놓았을 당시, 부천과 수원이 경합을 벌인바 있다. 결국 샤샤는 수원행.. 이때 부천으로 샤샤가 이적했다면 K리그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