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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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복(1938년 2월 17일 ~ 2022년 10월 15일 )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오인복
  • 출생일 : 1938년 2월 17일
  • 사망일 : 2022년 10월 17일
  • 신체 : 170cm / 67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6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68년 AFC 아시안컵 예선 대표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64년 ~ 197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2경기 출장 18실점)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80년대 주택은행 축구단 감독


유소년 시절[편집]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으로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 1.4 후퇴 당시 월남, 이후 인천에 정착하였다. 인천 선인중학교 시절부터 축구 선수로 활동하였으며, 그 활약을 눈여겨본 우상권 씨의 추천으로 한양중학교로 전학을 가며 본격적으로 축구계에 이름을 알린다. 이후 당시 고교 최강 팀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한양공고에 진학해 대활약하였으며, 그의 활약을 눈여겨본 공군사관학교의 스카우트로 사관 생도의 길을 걷게 된다.[1] 이후 공사 골키퍼 임에도 대학선발에 발탁되는 등 국내 정상급 골리로 활약하고 있던 오선수에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제의도 들어왔는데, 당시 사관 생도는 국가대표에 발탁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던터라 오씨는 고민 끝에 공사 자퇴를 선택하게 된다.

성인 선수 시절[편집]

공사를 자퇴한 오씨에게 곧바로 날아든 것은 입대 영장이었다. 당시 국내 최강 축구팀이었던 CIC가 재빠르게 오인복 선수에게 제의를 넣은 것. 이후 CIC 소속으로 군복무를 마친 오씨는 전역 후 금성방직에 입사해서는 김용식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며 착실하게 기량을 쌓아갔다. 그리고 1964년 AFC 아시안컵에 발탁되며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나 이 때는 양우식 선수에게 밀려 본선 출전을 기록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후로는 국가대표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메르데카컵에 단골로 발탁되었으며[2], 서울시경 소속으로 차태성, 박승옥 등과 함께 국내 무대를 호령하기도 하였다. 이에 1970년 구성된 청룡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고 주택은행 축구단 창단 멤버로 발탁되기도 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다, 1972년 주택은행 축구단의 전국 대회 4관왕 달성에 주역으로 공헌한 뒤 은퇴하였다.


지도자 시절[편집]

선수 생활 정리 후, 주택은행 복권과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던 오씨는 1980년께 김재한 코치와 함께 주택은행 축구단 감독으로 활동하며 축구계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얼마안가 다시 주택은행 사원 신분으로 돌아가 지점장까지 역임하다가 정년퇴임 하였다고 한다. 이후로는 제2의 고향 격인 인천 축구계의 원로 축구인으로 활동 중이시라고.


에피소드[편집]

  • 국가대표 운이 없는 선수로 통한다. 기량이 한창 물오르던 시절에는 함흥철 선수에게 밀려서 국가대표 부름을 받지 못했고, 메르데카컵에 불박이로 발탁되며 국가대표 1군에 올라서는듯 했으나, 이세연이라는 벽에 막혔다.
  • 금성방직 시절 김용식 선생이 오인복 씨에게 골키퍼로써 갖춰야할 소양으로 '팀을 리드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골키퍼하면 순발력과 공중볼을 따낼 체격 등 하드웨어만 강조하는 터였는데, 수비 리딩과 커뮤니케이션 역할 등을 강조한 김용식 선생의 혜안이 돋보이는 부분.
  • 골키퍼 뿐만 아니라 필드 플레이어도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자원이었다. 스트라이커하프백,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번은 실업축구대회에서 스트라이커로 출전해 골을 집어넣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 오인복 씨의 형인 오인건 씨도 축구 선수 출신으로 전매청과 조선전업 소속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조선전업 시절 김용식 선생과 인연을 맺어 동생인 오인복 씨의 금성방직 입단을 주선하였다고..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당시 공사와 해사는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수들을 의욕적으로 스카우트 하고 있었다. 이 때 오인복 씨 뿐만 아니라 동갑내기인 박승옥 씨도 해사에 스카우트 되었으나, 종국에는 오씨와 비슷하게 자퇴하게 된다.
  2. 8회 대회부터 15회 대회까지 무려 7회나 참가하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