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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생활
== 프로 생활 ==
== 프로 생활 ==
[[2000년 드래프트]]에서 [[전남 드래곤즈]]에 연고지명인 4순위로 지명되며 기대를 모은 김선수였지만, 전남 입단 직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으로 참가한 호주4개국대회와 뉴질랜드에서 가졌던 평가전을 마치고 호주에서 전지훈련중이었던 전남팀에 합류한 이후 훈련중 피로누적으로 부상을 당하며 시드니 올림픽대표팀에서도 낙마하였고 소속팀에서도 기회를 잡는데 실패하였다. 이후 2001년 4경기 출장에 그친 뒤, 2003년 [[광주 상무]]에 입대했지만 당시 광주의 공격 라인업은 [[이동국]], [[조재진]], [[손정탁]], [[박성배]] 등 지명도 높은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김선수에게 기회가 돌아오질 않았다. 2003년도 구미에서 벌어진 FA컵 대회에서는 용인대와의 경기에서 후반에만 4골을 넣으며 역대 FA컵 한 경기 최다골을 기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고 2004년도 전국체전에서 철도청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은것이 김선수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상무 제대 후, 전남과의 재계약을 했으나 일년여의 재활을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되었다.
[[2000년 드래프트]]에서 [[전남 드래곤즈]]에 연고지명인 4순위로 지명되며 기대를 모은 김선수였지만, 전남 입단 직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으로 참가한 호주4개국대회와 뉴질랜드에서 가졌던 평가전을 마치고 호주에서 전지훈련중이었던 전남팀에 합류한 이후 피로누적으로 부상을 당하며 시드니 올림픽대표팀에서도 낙마하였고 소속팀에서도 기회를 잡는데 실패하였다. 이후 2001년 4경기 출장에 그친 뒤, 2003년 [[광주 상무]]에 입대했지만 당시 광주의 공격 라인업은 [[이동국]], [[조재진]], [[손정탁]], [[박성배]] 등 지명도 높은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김선수에게 기회가 돌아오질 않았다. 2003년도 구미에서 벌어진 FA컵 대회에서는 용인대와의 경기에서 후반에만 4골을 넣으며 역대 FA컵 한 경기 최다골을 기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고 2004년도 전국체전에서 철도청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은것이 김선수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상무 제대 후, 전남과의 재계약을 했으나 일년여의 재활을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은퇴 이후에는 광양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하면서 틈틈히 전남대학교체육교육과에서 강사로서도 활동을하고있다.
은퇴 이후에는 광양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하면서 틈틈히 전남대학교체육교육과에서 강사로서도 활동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