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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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대 시절 조재진

조재진(曺宰溱, 1981년 7월 9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0년부터 2004년, 그리고 2008년에 K리그에서 활동했던 공격수였다. 2011년 3월 은퇴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조재진
  • 별명 : 3J (쓰리제이,트리플제이), 리틀황새
  • 출생일 : 1981년 7월 9일
  • 신체 : 185cm / 80kg
  • 국가대표 경력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표
2003년 ~ 2009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40경기 출장 10골)
  • 현 소속팀 : 은퇴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 5 4 0 0 0 0
2001 3 3 0 0 0 0
광주 상무 불사조 광주 상무 불사조 2003 31 8 3 3 5 0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4 8 7 1 0 0 0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2008 31 7 10 3 4 0
통산(K리그) - 78 29 14 6 9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10월 21일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경기도 파주시 출신으로 대성중학교, 대신고등학교를 거쳤다. 대신고 시절부터 각광을 받은 유망한 공격수였다.


프로 생활[편집]

수원과 상무 시절[편집]

2000년 드래프트에서 고등학교 지명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게 된다. 입단 당시 수원의 김호의 아이들로 불리는 유망주들 중의 한명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당시 강력한 공격진을 보유한 수원에서 고졸의 젊은 공격수가 출장할 기회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2001년까지 2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조재진은 어린 나이에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그저그런 유망주에 불과했던 조재진은 2002년 상무에 입대한 후로부터는 주전 공격수로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2002년에는 상무가 K2리그에 소속되어있었지만 FA컵과 같은 대회에서 활약을 보여주면서 주목을 받아 올림픽 대표팀에도 처음으로 선발 되기도 했다. 2003년 시즌에는 광주 상무로 K리그에 참가하게 되어 프로무대로 복귀하여 뛰게 되었는데 광주 상무에서는 이동국과 함께 투톱으로 출장하게 되었다.[1] 그렇습니다. 이동국은 조재진 후임이었습니다. -_-;; 그 때 쯤 올림픽 예선을 전승으로 통과하고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루는 등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그를 차세대 공격수로 기대하게 만들었다. 특히 0-3으로 뒤지고 있던 말리와의 경기에서 리플레이를 틀어놓은 듯한 헤딩으로 2골을 기록했던 때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듯. 이렇게 올림픽이 끝나고. 한편 2004년 수원에서는 차범근 감독이 부임했는데 포화 상태인 공격진에서 어울리지 않는 자리인 측면 공격수 등의 포지션을 주문 받았고 그에따라 출장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조재진은 이적을 모색하게 되었고 2004년 여름 이적료 1억엔을 기록하며 J리그의 시미즈 S-펄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J리그 시절[편집]

2004년 여름 J리그로 옮기자마자 붙박이 주전공격수로 기용되게 된 조재진은 한차원 높은 하드웨어와 기술로 골 폭풍을 몰아치게 된다. 아무래도 K리그의 강력한 수비진에서 벗어나 조금 헐렁했던 J리그의 수비진을 상대로 대놓고 수비수&골키퍼 관광, 절묘한 헤딩 기술, 중거리 슛(!), 드리블 돌파(!!!)까지 선보이면서 꾸준히 득점 랭킹에 이름을 올리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한편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팀에서 주전 공격수를 맡고 있던 이동국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대표팀에서는 급하게 대체 공격수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조재진과 정조국 등이 테스트 받게 되었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정조국에 비해 무난한 활약을 보여준 조재진의 주전 공격수로 낙점 받게 되었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프랑스, 스위스 등의 강팀의 수비진을 상대로 공중볼을 상당히 많이 따낸데다가 헤딩으로 박지성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며 월드컵에서 주목 받은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2007년까지 시미즈에서 득점력을 과시하던 조재진은 유럽 진출을 모색하게 된다. 물론 그를 원하는 팀이 많이 있었고 거의 확정적이라는 기사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며 입단에 실패하게 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었지만 하지정맥류로 알려진 조재진의 부상은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라는 증상으로 관절이 어긋나 통증을 계속 유발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 증상때문에 메디컬 테스트에서 문제가 있던 것이었다. 아무튼 팀을 찾지 못하던 그에게 수원시절부터 그를 지켜보고 있던 최강희 감독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2008년 2월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게 된다.


전북 시절[편집]

전북으로 이적하게 된 조재진은 전북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하여 전북 구단은 많은 팬의 증가와 언론 노출 등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고 성실한 훈련태도와 함께 구단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프로선수로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최강희 감독은 전반기 좋지 않은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조재진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며 믿음을 보여주었다. 후반기에 다소 페이스가 떨어졌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10골 3도움의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어 전북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큰 기여를했다. 아무튼 1년 내내 전북에 큰 보탬이 된건 사실. 그리고 2008년 12월 약 40억에 달하는 이적료를 기록하여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게 된다.


감바 시절과 은퇴[편집]

2009년 감바 오사카로 이적한 조재진은 활약을 계속 이어갔다. 특히 국내 팬들은 GS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GS 수비진을 철저히 분쇄시킨 경기를 인상깊게 생각할 듯. J리그에서도 25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훈련 중 생긴 부상과 전부터 앓아왔던 증상[2]으로 인해 2010년에는 급격히 몸상태가 나빠지게 되었다. 결국 2010년 감바와의 계약이 끝난 후 2011년 초 정밀 진단을 받고 선수생활을 더 지속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자 미련없이 30세의 나이로 축구선수로서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헤딩 기술과 몸싸움 능력이 탁월하고 의외로 킥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볼 키핑과 결정력이 조금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북에서는 이 점에 착안 조재진을 미드필더 쪽으로 자주 끌어내리는 움직임을 통해 사이드를 뻥뻥 뚫을 수 있었다고.


에피소드[편집]

  • 체격도 좋고 꽤 잘생긴 외모로 아디다스 및 리바이스 청바지 광고모델로도 활동하였다. 당시 수많은 얼빠들을 몰고다녔고 때문에 현재에도 국가대표에서 뛰는걸 다시보고 싶은 선수로 순위권에 오르기도 하였다.
  • 이름의 세 글자 초성이 모두 'ㅈ'이라 '트리플제이(Jo Jae Jin)'라고 불리기도 했으며[3]
  • 광주 상무 시절인 2003년, 전설적인 공격수인 손정탁이 4골을 넣을동안 조재진은 3골밖에 못넣었다고 국내축구갤러리 등지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전설적인 손정탁 느님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다니.. 조재진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다.
  • 2006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2007년 겨울 유럽 진출을 모색하였다. 그러던중인 2007년 12월 25일, 최원창 기자등이 조재진 뉴캐슬 입단 확정 기사[4]를 터뜨렸고, 이에 전 축구 커뮤니티가 난리가 났다. 영국 언론까지 한국에서 조재진 영입 확정기사가 떳더라 라고 특전을 타진했을 정도..;; 근데 결과적으로는 초대형 낚시 기사였다. 언론의 지나친 떡밥 경쟁이 불러온 참극. 세계를 낚은 한국 찌라시 우왕 굳 ㅋ 이후 '최원창 기자 = 뉴캐슬 조재진 낚시 기자' 로 가루가 되도록 씹히다가 기자 생활을 관두고 수원 삼성 프론트로 들어갔다.
  • 하지만 은퇴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실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뉴캐슬 메디컬테스트에서 선수로서 뛰기 힘든 장애를 가진 것이 드러나 입단이 취소된 것이었다.이 것이 알려진다면 조재진 선수 커리어에 지장이 갈 수 있다고 판단한 최원창 기자가 자신이 욕을 대신 먹기로 한거였다고 한다...
  • 수원 팬들에게 있어서 조재진이라는 이름은 조성환과 더불어서 금기해야할 이름중 하나다. 그 이유는 2004년 5월 23일 FC GS와의 원정경기에서 조재진은 절친한 친구 김동진을 엄청나게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경기 후에도 포옹을 나눈 반면, 수원 선수들에게는 눈길한번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수원팬들은 조재진 퇴출운동을 벌일 정도로 항의하였고, 조재진은 쫒기듯 일본의 시미즈 S 펄스로 떠나고 말았다. 사실 수원 입장에서는 이적료를 1억엔이나 안겨줬으니 나쁠건 없었는데, 다음과 같은 사건으로 수원팬들과 사이가 멀어진 감이 크다. 2008년 전북으로 옮긴 조재진은 수원팬들에게 악몽같은 기억을 선물했는데, 2008년 5월 5일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조재진은 후반 29분 동점골을 성공하고 수원팬들을 향해 주먹감자 세레모니를 해 수원팬들의 분노를 샀다. 조재진은 경기후 인터뷰에서 수원 선수들이 선제골을 넣고 전북팬들에게 도발을 해 참을 수 없었다라는 인터뷰[5]를 하였고, 가뜩이나 사이가 안좋았던 수원팬들은 확실한 조재진 안티로 돌아서게 하였다. 이런 조재진의 도발로 인해 그랑블루는 수원 홈경기에서 조재진을 향해 조재진의 옛 애인이었던 백지영의 이름을 부르고 '사랑안해'를 부르는 등 도발을 했다.[6] 그리고 그 결과 조재진은 1골 1AS를 작성, 5-2로 수원을 박살냈다.
  • 조재진이 국대에서 안티를 양성한 것은 그의 아시안컵에서의 대활약이 크다. 조별예선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선 '하프라인 오버헤드킥 슛'이라는 신개념 플레이를 선보여서 모두를 벙찌게 만들기도.[7] 하여간 07 아시안컵에서의 조재진의 플레이는 두 눈 멀쩡히 뜨고 보기 참 힘들었다. 오죽하면 그 얌전한 이용수 해설위원이 이동국을 계속 찾았을까. 그와 비슷한 시점에 나온 아디다스 광고문구에 '나는 공을 차는게 아니야. 90분간 리듬을 타는 거지.' 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못할땐 리듬탄타고 가열차게 까였다.
  • 전북 팬들에게 있어서 조재진은 영웅과 같은 존재였으니.. 2008년 유럽진출 실패로 갑작스럽게 입단했지만 언론의 조명을 받는 인기선수(?)가 없던 전북에 전과는 다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후원의 집 행사, 오지 초등학교 어린이 초청행사 등 이벤트에도 열심히 참가하였으니 이는 급격한 관중 증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10골 3도움의 활약으로 8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한 몫을 담당했으니 2008년 한해 동안 조재진으로 인해 성적과 인기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물론 5월 5일 전주성에서 선취골을 넣은 수원의 서동현선수가 전북 서포터 앞에서 도발 세레모니를 하자 이에 대응했던 사건은 전북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감바 오사카로 이적할 때 상당한 이적료를 기록했으니 [8] 조재진이 전북에 있던 1년은 전북 팬들에게는 좋은 일만 기억에 남았을 일이었다.
  • 2011년 이른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게 된 조재진의 은퇴식을 전북 구단이 직접 나서서 치뤄주기도 했다.


경력[편집]

  • 2002  : 상무 / 실업축구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상무 시절, 이동국의 수많은 어시를 조재진, 손정탁 두 분이서 날려먹었다고 한다. ㅠㅠ
  2.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과 허리부상을 달고 살았다. 진통제를 먹고 뛰었을 정도라니 그 고통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을지..;
  3. 실제 조재진은 영문명을 Cho Jae jin을 사용했으므로 실제로는 3j가 아니다.
  4. 당시 입단 확정 기사는 삭제된 상태지만 후속 기사가 남아있다. : [1]
  5. 당시 선제골을 넣은 서동현이 한 세레모니는 평소 홈편향이 강하기로 소문난 전주성에서 3만관중을 열받게 만들었는데...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닥터피쉬'의 춤을 따라한 것이었다고.
  6. 관련영상 : [2]
  7. 참고자료:http://blog.naver.com/tentama/130020205055 고도의 블로그 홍보
  8. 이 자금을 운용 해 데려온 선수가 하대성, 에닝요 등등 09 우승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