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혁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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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일 (금) 22:27 판
서혁수(1973년 10월 01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 1998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 및 A-리그에서 활동했던 수비수이다. 덧붙여 A-리그 시절 오스트레일리아 영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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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프로필
유소년 생활제천동중, 청주상고(현 청주대성고),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프로생활한일은행 시절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6년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2년동안 실업축구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곧바로 닥쳐온 IMF한파에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결국 프로무대로 옮기지 않으면 축구화를 벗을 위기에 쳐했고 드래프트를 신청하기로 결심하였다.
K리그 시절우여곡절 끝에 신청한 1998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지명되어 전북 현대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2] 당시 전북 감독이었던 최만희 감독은 서혁수 선수에게 스위퍼로서 3백 수비진의 중심을 잡아줄 역할을 맡길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입단 후 실시한 훈련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어 데뷔시즌부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99년 시즌부터는 공격적인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이 변화에 맞추어 맹활약하며 많은 공격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이후 붙박이 수비수로 경기마다 빠지지 않고 출장하는 선수가 되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A-리그 시절서혁수 선수는 선수생활을 이어가고자 했던 마음이 강했고 2004시즌 종료 후 퀸즐랜드 로어에 진출했던 신태용 선수가 A-리그 진출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자, 이 제의를 수락하면서 호주 A-리그 퀸즐랜드 로어(현 브리즈번 로어)와 계약할 수 있었다. 선콥에 입성한 서혁수는 이적 첫 해 부터 리그 전 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핵심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수비와 빠른 공수 전환 능력은 A-리그 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풀백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그는 첫 시즌, 팀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와 브리즈번 로어 팀 내 최고 명예인 개리 윌킨스 메달을 수상하며 일약 팀의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크레이그 무어와 왼쪽 풀백 파커와의 호흡은 상당히 좋았다. 당시 다른 팀이 넘사벽의 스쿼드만 갖추고 있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상위권을 노릴 수도 있는 수비라인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08/09시즌을 앞두고 영주권을 획득하며 팀의 외국인 쿼터도 줄여 주는 듯 여러모로 기여한 그였지만, 2009/10시즌 부임한 에인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스쿼드 개혁을 피해갈 수 없었고, 결국 재계약이 불발되어 선콥을 떠나게 된다. 이후 지역 리그인 브리즈번 프리미어 리그의 브리즈번 올림픽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서혁수는 안정된 플레이를 통해 팬들의 인정을 받았고, 꾸준히 좋은 플레이를 펼치며 2010년까지 활동하였다.
은퇴 후2010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한 서혁수는, 지도자 과정을 거쳐 2012년 울산 현대의 트레이너로 부임하였다. 2013년부터는 울산의 스카우터로 선임되어 활동 중이다.
플레이 스타일K리그에서의 주 포지션은 윙백이었고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한 안정된 수비를 펼치는 스타일이며, 수비적 재능 못지않게 심심치 않게 중거리슛을 성공시키기거나 전담 키커로도 기용되는 등 공격적인 재능도 상당한 편이다. A-리그 진출 후 로어 시절엔 주로 풀백으로 나섰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으로 기용되어 매트 맥케이와 마시모 머도카의 공격 작업을 보조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에피소드
경력
업적 및 수상클럽개인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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