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거나 타 구단으로 이적해 버리며 24명의 선수단이 존재했지만 팀은 대학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그나마 팀이 안 엎어지고 K리그에 참가한데 감지덕지하며 [[김기복]] 감독의 지휘아래 [[1994년 K리그]]에 참가하였지만 팀 지원은 완산 푸마 때보다 별반 나아진게 없었다. 김기복 감독은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시간보다 돈빌리러 다니느라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고, 전북 버팔로 형편을 취재하러 간 기자에게 김기복 감독이 통사정해 돈을 꾸어서 선수단 밥값을 해결(?)하는 등 전설같은 일화를 남겼다. 결국 문수기 구단주는 힘에 부치면서 1994년 8월31일 버팔로 운영을 포기를 선언했고<ref>전북버팔로, 정규리그 참여 재확인 (1994년 08월 31일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19940831162600579?f=o]</ref><ref>1994년 보배소주는 4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구단주의 사재로 반년만에 5억여원이 들었으니 큰 부담이 아닐수가 없었다.</ref> 1994년 9월6일 이사회에서 팀 해체를 전제로 한 연맹의 한시적 직영운영이 결정되며,<ref>프로축구聯,전북팀 연말까지 지원키로 (1994년 09월 06일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19940906185900862?f=o]</ref> 구단 사무실은 폐쇄된다. 1994년 11월12일 [[일화 천마]]와의 경기를 치룬 뒤 11월23일 승인이 취소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은퇴하거나 타 구단으로 이적해 버리며 24명의 선수단이 존재했지만 팀은 대학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그나마 팀이 안 엎어지고 K리그에 참가한데 감지덕지하며 [[김기복]] 감독의 지휘아래 [[1994년 K리그]]에 참가하였지만 팀 지원은 완산 푸마 때보다 별반 나아진게 없었다. 김기복 감독은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시간보다 돈빌리러 다니느라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고, 전북 버팔로 형편을 취재하러 간 기자에게 김기복 감독이 통사정해 돈을 꾸어서 선수단 밥값을 해결(?)하는 등 전설같은 일화를 남겼다. 결국 문수기 구단주는 힘에 부치면서 1994년 8월31일 버팔로 운영을 포기를 선언했고<ref>전북버팔로, 정규리그 참여 재확인 (1994년 08월 31일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19940831162600579?f=o]</ref><ref>1994년 보배소주는 4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구단주의 사재로 반년만에 5억여원이 들었으니 큰 부담이 아닐수가 없었다.</ref> 1994년 9월6일 이사회에서 팀 해체를 전제로 한 연맹의 한시적 직영운영이 결정되며,<ref>프로축구聯,전북팀 연말까지 지원키로 (1994년 09월 06일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19940906185900862?f=o]</ref> 구단 사무실은 폐쇄된다. 1994년 11월12일 [[일화 천마]]와의 경기를 치룬 뒤 11월23일 승인이 취소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