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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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감독 김경래

김경래(1964년 3월 18일생 ~)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1988년부터 199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바 있는 선수이다. 현 명지대학교 축구부 감독.



프로필[편집]

  • 이름 : 김경래
  • 출생일 : 1964년 3월 18일생
  • 신체 : 173cm / 64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대우 로얄즈 1988 11 9 0 0 0 0
1989 10 9 0 0 0 0
1990 5 5 0 0 0 0
1991 16 7 0 0 0 0
1992 11 8 0 1 1 0
1993 8 8 0 0 0 0
전북 버팔로 1994 35 1 11 3 4 0
전북 다이노스 1995 29 4 1 0 1 0
1996 19 8 2 1 2 0
1997 24 15 0 0 3 0
통산(K리그) - 168 74 14 5 1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3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 1998년 ~ 현재 : 명지대학교 축구부 트레이너, 코치, 감독 역임.


유소년 생활[편집]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 출신으로 곤양초등학교, 진주중학교, 진주고등학교, 명지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조광래 감독의 진주고 후배이자, 김학범, 최진한 감독의 명지대 후배이기도 한 선수. 어릴적에는 몸이 약해 집안에서 축구하는걸 완강히 반대하였다고 하며 진주고 시절 체력 회복을 위해 1년 유급을 택한바 있다. 진주고 졸업 후, 지금은 고인이 된 유판순 감독이 지휘하는 명지대 축구부에 들어가 크게 성장하였다. 특히 1987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당대 실업 최강팀인 국민은행 축구단을 꺽고 명지대가 우승을 거머쥐는데 김경래 선수가 대활약하였다.


프로 생활[편집]

명지대 시절 좋은 활약을 발판으로 1988년 드래프트에서 대우 로얄즈에 1차선발되었다. 계약금은 4천만원, 연봉은 1천 8백만원. 좋은 대우속에 대우 로얄즈에 입단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당대 대우 로얄즈는 한국판 레알 마드리드로 통할 정도로 화려한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당장에 김경래 선수가 주전 경쟁을 벌어야할 공격진 자리에는 이태호, 정해원, 변병주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쟁쟁한 상황. 결국 김경래 선수는 입단 후 상당기간을 2군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발목 부상과 군문제가 계속 김경래 선수의 주전 등극을 가로막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 결국 김선수는 6년동안 대우에 몸담으면서 60경기 남짓 출장에 그쳤다. 그나마도 대부분 교체출장에 불과했다.

1993시즌 종료 후, 대우는 김경래 선수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해왔다. 사실상의 방출이었던셈. 다행히 1994시즌 참가를 준비중이던 전북 버팔로가 재빨리 김경래 선수를 불렀고, 김선수는 전북 버팔로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게된다. 당시 전북 버팔로 감독이었던 김기복 씨는 버팔로 선수단 중 가장 프로 경력이 많았던 김선수를 플레이메이커 이자 프리롤로 맡겼고, 김경래는 버팔로에서 시즌 전경기를 풀타임 활약하며 11골 3도움을 몰아쳐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1] 특히 김선수는 친정팀인 대우 로얄즈와의 경기에서 매우 강해 대우를 상대로만 3골 1도움을 뽑아내며 2승을 거두었다. 버팔로가 94시즌 전경기에 걸쳐 고작 3승을 거두는데 그쳤는데 그중 2승이 대우 로얄즈를 상대로 한것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여기다 버팔로에 덜미를 잡히던 대우는 그 해 버팔로에 이어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최악의 한해를 보내고만다. 김경래 선수는 자신을 박대했던 대우를 상대로 제대로 (?) 복수를 한셈.

1994시즌 종료 후 버팔로는 해체되었지만, 현대자동차가 전북 지역에 재창단한 전북 현대 다이노스는 김경래 선수를 재영입하였고,[2] 김선수는 전북 다이노스에서 1997시즌까지 활약하였다.


은퇴 이후[편집]

1997시즌 종료 후, 프로팀 등에서 코치직 제의가 왔지만 김경래는 자신의 모교인 명지대학교 축구부로 돌아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명지대에서만 10년 넘게 몸담으며 2003년부터 김희태 전임 감독을 이어, 명지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승격. 현재까지 팀을 이끄는 중이다.


에피소드[편집]

  • 원래 1994시즌 잔여 경기를 7경기 남짓 남기고 11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2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이때 김경래는 득점왕 욕심에 조바심 나는 플레이를 펼쳤고, 되레 이런 욕심이 독이 되어 잔여 경기에서 한골도 기록하지 못해 최종적으로 득점 4위로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대신 버팔로에서의 분전의 공으로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1994시즌 버팔로의 시즌 총득점이 30점인걸 생각해보면 김경래 선수 한명이 팀 득점의 절반을 책임졌음을 알 수 있다.
  2. 계약금 4천만원, 연봉 3720만원의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