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1964년 도쿄 올림픽이란, 1964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올림픽을 말한다. 아시아에서 열린 최초의 올림픽이었다.
축구위키인 풋케위키에서 1964년 도쿄 올림픽이란, 올림픽 축구 종목에 한정하여 다룬다.
진행 과정과 결과
지역예선을 거쳐 본선에는 16개국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본선 참가국 중, 이탈리아는 올림픽대표에 프로 출신 선수가 끼어있어 아마추어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참가자격이 박탈되었고, 북한도 아시아 예선을 통과했으나 IOC 가 참가금지한 신흥국 경기대회 (속칭 GANEFO : 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에 참가했음을 이유로 IOC가 태클을 걸자 선수단이 개막식에 참가했다 자진 철수해버려 본선에서는 14개국이 참가했다. 14개 국가는 A,B,C,D 4개조로 나뉘었으며 각조 1,2위가 8강에 진출하여 토너먼트를 치루는 방식이었다.
최종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 체코 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1] |
득점왕 : 페렌츠 베네 (헝가리) - 12골[2] |
한국의 참가
아시아예선 과정과 올림픽대표팀 최종 명단
1963년 겨울부터 1964년 봄까지, 1964년 도쿄 올림픽 아시아예선이 벌어졌다.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대만, 필리핀, 월남을 차례로 꺽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아시아 1차 예선은 대만과의 일전이었는데 한국 선수단은 1960년 로마 올림픽 아시아 예선 당시의 기억[3]때문에 절치부심하여 대만을 상대하였고 1차전 2:1로 승리. 2차전은 0:1로 패배 후, 승점 골득실 동률로 규정상 제3차전을 중립지역에서 치루어야 했으나, 대만의 갑작스런 올림픽 참가 포기로 한국이 2차 예선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2차 예선 상대는 필리핀이었으나, 필리핀이 자진 기권하면서 싱겁게 최종 예선에 한국이 진출했다.
최종 예선 상대는 월남이었는데 월남과의 올림픽 최종예선 1차전은 1964년 5월 30일 효창 운동장에서 벌어졌다. 1차전 결과는 3:0 대승. 2차전은 1달여후인 6월 28일에 벌어졌는데 여기서 한국은 2:2 무승부를 거두어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 진출 이후, 16년만의 본선 진출이었다. 덕분에 대한축구협회는 1964년 여타 국제축구대회를 모두 참가 포기하면서까지 올림픽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고, 1964년 올림픽대표팀 최종명단이 발표되었으니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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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에서의 대실패
올림픽 본선에서 한국은 브라질, 체코슬로바키아, 아랍연합공화국[4] 와 한조를 이루었고, 1964년 10월 12일 조별 예선 1차전을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가졌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는 동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할 정도로 강팀이었고, 이런 체코에 대해 한국팀은 그 어떤 정보는 갖지 못한채 정면승부로 도전했다. 결과는 1:6 대참패. 그나마 이이우 선수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1골을 얻어 영패는 모면했다.
2차전은 브라질과의 경기였는데 당시 정국진 감독은 수비수였던 차태성 선수를 공격으로 스위칭하면서까지 공격 일변도로 승점을 얻어내보려고 애썻지만, 세계최강 브라질의 적수는 못됐다. 결과는 0:4 패배. 2차전 결과로 한국의 조별예선 탈락은 확정되었다.
막장은 3차전인 아랍연합공화국과의 경기에서 벌어졌는데 이미 조별예선 탈락이 확정된 한국 선수단은 의욕이 떨어진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경기 도중 한국 선수단을 응원하러왔던 재일교포들이 한국 선수들의 조별예선 탈락 확정에 욕설을 퍼부어댐에 따라 선수들이 흥분, 하라는 경기는 안하고 응원단과 입씨름을 하는 진풍경이 경기 도중 연출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가 제대로 됐을리 만무, 결국 아랍연합공화국에 0:10 대패를 당한다. 이 스코어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경기결과였다.
당시 아랍연합공화국은 다득점시 8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을 상대로 골폭죽을 터뜨렸고, 한국의 자멸 덕분에 조별예선을 통과 8강을 거쳐 4강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어쨋거나 한국 축구역사상 가장 망신스러운 한페이지가 아닐수 없다.
결과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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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 이 대회에서 서독과 동독이 단일팀을 구성
- ↑ 올림픽 역사상 단일대회 최다 득점자이기도 하다
- ↑ 1960년 로마 올림픽 항목 참조
- ↑ 현재의 이집트. 범아랍주의를 추구하던 이집트 나세르에 의해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통합하여 수립된 나라이다. 그러나 1961년 시리아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해체되었다. 64년 당시에는 이미 이집트만의 공화국이었으나 향후 시리아의 복귀나 다른 국가의 가입을 염두에 두고 명칭을 계속 유지했다. 그러나 67년 이스라엘과의 6일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범아랍주의가 크게 훼손되고 1970년 나세르가 사망하자 이집트라는 명칭으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