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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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변병주.jpg
국가대표 시절의 변병주

변병주(1959년 4월 12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3년부터 1992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 후, 은퇴한 수비수이다. 은퇴 후 1993년부터 현재까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고, 현재 전북 현대 모터스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프로필

  • 이름 : 최강희
  • 등록명 : 최강희
  • 출생일 : 1959년 4월 12일
  • 유스클럽 : 우신고등학교
  • 신체 : 174cm / 68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88년 국가대표 데뷔
1988년 서울 올림픽 본선 대표
1988년 아시안컵 대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대표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제철 돌고래 1983 3 0 0 0 0 0
현대 호랑이 1984 26 0 0 2 1 0
현대 호랑이 1985 21 0 0 2 0 0
현대 호랑이 1986 31 0 0 3 1 0
현대 호랑이 1987 25 0 3 6 3 0
현대 호랑이 1988 20 0 0 2 1 0
현대 호랑이 1989 9 0 0 0 1 0
현대 호랑이 1990 13 0 2 3 2 1
현대 호랑이 1991 37 0 5 4 2 0
현대 호랑이 1992 20 0 0 0 1 0
통산 (K리그) - 205 0 10 22 12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9월 23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

  • 주요 경력
- 1995년 ~ 1997년 : 수원 삼성 블루윙즈 트레이너
- 1998년 ~ 2001년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 2003년 ~ 2004년 :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
- 2005년 ~ 현재 :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 주요 수상 경력
2005년 FA컵 우승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09년 K리그 우승
2009년 K리그 대상 올해의 감독상

유소년 생활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 중학교때 축구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축구를 3년간 쉬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국 대회도 우승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프로 생활

1979년 실업팀인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여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군 복무를 위해 육군 충의팀에 3년간 복무하게 된다. 전역 후 1983년 한일은행 축구단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김호를 만나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에 눈을 뜨게 된다.[1] 그리고 1984년 신생 프로팀인 현대 호랑이에 창단 멤버로 참가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언제나 노력하고 성실한 플레이 덕분인지 현대 호랑이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게 된다. 현대에서 9시즌 동안 활약하며 1986년 프로선수권대회 최우수 선수 수상, 프로축구 베스트 11에 4회 선정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청소년대표 경력 하나 없는 그에게 늦은 나이인 28세에 국가대표팀으로 처음 선발되는 기회가 주어졌고, 88 서울 올림픽, 90 이탈리아 월드컵 등 큰 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1992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2]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

스피드가 빠른데다 활동량도 엄청나고 게다가 체력까지 좋았다고 한다. 직접 본 입장이 아니라.. 그의 플레이를 보신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90분 동안 쉬지않고 찰거머리처럼 수비하러 뛰어다니는 선수였다고 한다. 얼마나 끈질기게 수비를 했던지 최강희 선수가 막고 있는 측면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은퇴 이후

은퇴 후 독일, 잉글랜드 등으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였다. 선수 시절의 스승이었던 김호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트레이너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호 감독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원의 성공시대를 이끌어 간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복귀하였다.[3] 그 후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2005년 여름 조윤환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전격 선임되었다. 몇년간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전북이었기 때문에 그의 감독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2005년 '팀도 아니었던' 전북을 이끌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더니, 2006년에는 얇은 선수층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러번의 역전승을 통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들을 데려다가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찾게 해주는 재활공장장의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축구 외적으로도 많은 일을 했는데,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를 설득해 지원을 받아내기도 하고 팬들과의 소통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노력들이 합쳐져 현재 전북을 우승을 다투는 강팀으로 만들어냈다.


감독 스타일

  • 닥치고 공격. 수비불안의 리스크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격전술로 일관. 3장의 교체카드는 거의 모든경기에 늘 3명의 공격수로 이루어져있다. 사실 지금처럼 스쿼드가 좋지 않은 시절에는 전형적인 카운터 전술이 많았다. 빠른 윙백이나 윙포를 이용해서 카운터를 노리는 경기가 많았다. 뭐 지금은 미들장악부터 시작하고 닥공하지만;;
  • 선수시절 측면에서 뛰어서 그런지 측면에서의 플레이를 상당히 중시 하는듯.


에피소드

  • 선수시절 취미는 놀랍게도 만화 그리기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고 있는지는 불명.
  • 2006년 놀라운 역전승으로 아시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한 최강희 감독을 두고 중국 언론에서는 강희대제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 또다른 별명은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연습구장과 숙소가 있는 완주군 봉동읍의 이름을 딴 봉동이장이다. 이유는 선수들이나 팬들에게 스스럼 없이 대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 여서 그런듯 하다. 글 쓸때 본인을 이장이라고 자꾸 하는걸보면 이 별명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다.
  • 경기장에서는 골을 넣든 먹든 언제나 똑같은 표정.[4] 선수들 긴장시키려고 그런다는데 과연. 하지만 경기장에서의 언제나 굳은 표정과 달리 인터뷰 등에서는 상당히 재치있는 달변가이다.
  • 박원재 양아들 설의 진실은???


경력

  • 1980 ~ 1982 : 충의 (육군) / 실업


같이 보기

참고

  1. 1983년에 기록된 포항제철에서의 3경기 출장은 임대 형식으로 잠깐 뛴 것이라고 한다.
  2. 사실 이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3. 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았는데 대표팀 코치 생활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듯, 이후에도 수차례 인터뷰에서 국대는 성격상 안맡는다고 밝힘.
  4. 차봉남. 가운 자(?).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