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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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moksu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9월 26일 (월) 19:1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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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의 저주 는 역대 K-리그 신인왕 수상자 중 상당수가 생각보다(?) 성공적인 프로 생활을 보내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용어이다.

대표적인 신인왕의 저주 케이스

빠른 연도 순으로

데뷔시즌 17골을 몰아치며 K-리그 신인왕K-리그 득점왕을 동시에 거머쥔 함현기 선수였으나 이후, 컨디션 난조와 잦은 부상, 현대 호랑이차범근 감독 부임 이후의 전술 부조화 등으로 다시는 데뷔 시즌의 커리어를 되찾지 못하고 7년만에 은퇴했다. 통산 31골 13도움 기록.[1]

나름 준수한 활약도를 보이며 울산 현대에서만 10년을 뛴 베테랑이었지만 어찌된게 항상 울산 현대 레젼드하면 김현석만 기억되고 송주석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2]

정광석 선수와 더불어 몇안되는 수비수 신인왕이었으나, 이후 안익수, 박광현, 이영진, 겐나디 등 빼곡했던 일화 천마 수비진의 주전경쟁에서 밀려 로테이션 멤버로만 활약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는 등, 많은 기대를 받던 선수였으나 K-리그 드래프트 거부 등으로 진통을 겪은 뒤 간신히 대우 로얄즈에 입단해 전성기 때의 기량을 되찾는데는 실패했다. 1993년 신인왕 수상 이후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1995년 군입대를 결정 전역 후 2년을 더 뛰고 4시즌만에 은퇴하였다.

1997년 대전 시티즌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으나, 1998년 12월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후 사고 휴유증으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빨간머리를 휘날리며 스피드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공격수. 부천 SK의 황금 미드필더진이 만들어준 신인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스피드와 적극성 외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게 없었다. 부천 미드필더 진의 붕괴 이후, 이성재 선수도 쓸쓸히 사라져갔다.

이영표 선수와 신인왕 경쟁을 했던 선수로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신인 시절의 무리한 주전 기용이 2년차 징크스와 부상 악재로 이어졌고, 결국 그 여파를 극복하지 못한채 세간의 기대에서 멀어졌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신인왕의 저주의 원인 (?)

참고

  1. 즉, 데뷔 시즌에 자신의 통산골의 60% 가까이를 득점했다는 이야기..
  2. 김현석 선수도 1990년 데뷔해 신인왕 후보로 막판까지 송주석 선수와 경합을 벌였으나 신인왕 투표에서 6표차로 고배를 마셨다. 비록 신인왕은 뺏겼지만, 나머지 부문에서는 모두 김현석 선수가 송주석을 압도하고 있으니 나름 복수한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