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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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통 (토론 | 기여)님의 2013년 8월 18일 (일) 20:0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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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축구단(京城蹴球團)은 1933년 창단된 경성을 대표하는 축구단이다. 평양축구단과의 경평 대항축구전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던 팀으로도 익히 알려져있다.


역사

창단

일제강점기 1933년 경성축구단 창단 이전까지 경성 축구계를 대표하는 축구단은 조선축구단이었다. 191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불교청년회가 1926년 재정난으로 해산되자, 그 소속 선수들을 규합하여 만든 축구단이었다. 경성조선축구단평양무오축구단과 함께 조선 축구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구도는 양 도시의 전통적 라이벌 의식을 바탕으로, 경평대항축구전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1933년 1월 평양지역 축구계가 기존의 무오단마저 흡수하여 평양을 대표하는 평양축구단을 창단하면서 이에 자극받아 경성에서도 경성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단 설립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3월 28일 경성의 체육계 인사 및 축구관계자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4월 6일에는 평양축구단 초청으로 평양에서 열린 경평전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5월 11일 종로 백합원(百合園)에서 열린 회의에서 경성축구단 창단 성명을 발표하며 발족하게 되었다.[1]

당시 창단 멤버는 아래와 같다.

  • 이사장 : 여운형
  • 이사 : 유억겸, 이용설, 배석환, 현정주, 김상익
  • 간사 : 이영선, 이창진
  • 감독 : 현정주
  • 선수 :
이혜봉, 정용수, 이창룡, 강영필 (이상 연희전문), 이종만(연희전문OB), 박석연, 서형남 (이상 세브란스의전), 윤중호, 이용겸(세브란스의전OB),
김용식, 한우량, 하영득 (이상 보성전문), 송기우(보성전문OB), 이영민(조선식산은행), 백기주(진남포), 송기수(송도고 교사), 유약한(철도국)
채금석, 최성손(경신중OB)


경성축구단은 창단 후 경평 대항축구전에 참가하고, 1935년에는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와 명치신궁경기대회에 조선축구대표팀의 주축을 구성해 참가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다 1942년을 끝으로 일제의 체육활동 전면 중단 명령에 의해 강제 해산되고 말았다.


같이보기

참고

  1. 이동 평양축구단이 창단되면서 무오단은 완전히 흡수되었으나 조선축구단의 경우 재정상의 문제로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경성축구단 창단에 힘쓰던 김원겸 같은 사람들이 복귀하고 새로운 스폰서를 구하게 되면서 경성축구단과 병존하며 경성의 라이벌로 일정기간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