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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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주 (1899년 ~1970년 6월 11일)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인이자 국회의원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편집]

서울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졸업한 뒤, 상해 호강대학(滬江大學)에 진학하였다. 중국 시절부터 축구ㆍ육상 등 체육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조선과 중국 양쪽을 오가며 업적을 남겼다. 특히 오늘날 대한축구협회의 모태가 된 조선축구심판협회 위원, 조선축구협회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1933년 경성축구단이 창단할 당시에도 이사로 재직하며, 한국축구의 뿌리를 다지는데 기여하였고, 1934년부터 1935년까지 2년여간은 연희전문 축구부 코치를 맡아 김성간, 이유형, 김덕준 등을 스카우트 해오는 한편 경평전 심판[1]을 맡고, 호강대학 출신인 점을 십분 이용해 연희전문 축구부의 상해 원정을 주선하기도 하는등 축구 지도자 겸 심판 겸 행정가 역할까지 떠안으며 팔방미인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편집]

1945년 상해교민협회장을 맡고 있었던 현정주 씨는, 광복과 함께 귀국해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ㆍ한국대학스포츠 상임위 부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55년에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2] 이처럼 50년대까지 체육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1963년 공화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해 정계에 진출하였으며 196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재임하다 1970년 6월 11일 새벽 5시, 지병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71세.


에피소드[편집]

  •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모두 능했다고 한다.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 한국체육 발전을 위해 공헌하였으며 각종 하계ㆍ동계 올림픽에도 단장으로 참가해 활동하였다.
  • 현정주 씨가 조선축구협회 이사에 재임하던 1935년, 일본축구협회는 제15회 일본축구선수권대회를 개최를 앞두고 조선에서도 축구선수권 참가팀을 구성하라는 통지를 해온다. 이에 조선축구협회는 조선축구대표 선발전을 실시하여 경성축구단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구성하고 감독으로 현정주 씨를 앉혔는데 이것이 조선축구협회대표팀 (이하, 조선축구대표팀) 였으며 오늘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신이자 한국 축구 최초의 축구협회가 구성한 국가대표라 할 수있다. 즉 현정주 씨는 한국축구 역사상 첫번째 대표팀 감독을 맡은 셈이다.[3]


참고[편집]

  1. 다만 김덕준 씨의 회고에 의하면, 경평전 심판을 맡던 도중, 평양축구단 선수들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아직 어린 나이였던 김덕준 씨는 구타를 당하면서도 판정을 번복하지 않는 현정주 주심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
  2. 하지만 특무대의 결승전 난동 사건을 계기로 사임한다. 자세한 내용은 특무대 문서 참고
  3. 여담으로 광복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초대 감독은 박정휘 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