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유상철(柳想鐵, Yoo, Sang Chul, 1971년 10월 18일~)은 대한민국 서울 출생으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뛴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유비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K리그의 프랜차이즈 스타.
2011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대전 시티즌 제 6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바 있다.
선수 프로필
|
|
지도자 프로필
|
|
유소년 생활
어렸을 적 유상철은 유난히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아 키도 작고 비쩍 말라서 운동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며,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기 보단 허약체질을 개선해서 몸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 어머니의 권유였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된 유상철은 응암초등학교-경신중-경신고를 거쳐서 축구선수로써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의 작은 키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 때문에 경신고에 진학하고 나서 1학년 때 당시 감독이 축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을 정도였다. 이 권유가 충격요법으로 작용했던 것인지 그해 겨울 합숙훈련에 합류하는 대신에 두달간 보약을 보충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갔고 그 노력의 정성이 빛을 발했던 것인지 고2때부터 키가 자라 2년 사이에 20cm나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눈에 띌 정도로 부각되진 않았으나 팀플레이에 능했던 덕분에 유상철은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U-19 AFC대회 챔피언쉽에 한국대표팀으로 뽑혔으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나큰 활약을 펼쳤고, 한국은 1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진출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 단일 대표팀이 결성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유상철은 청소년대표팀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 그렇게 유상철은 경신고를 거쳐 건국대학교로 진학한 후에 1994년에 프로무대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그가 데뷔한 팀은 울산 현대였다.
K리그
국가대표 시절
1994년 비쇼베츠 감독에 의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었는데, 특히 8강전은 유상철 이름 석자를 대한민국에 처음 부각시켰던 경기였다. 당시 상대가 한일전이었고, 우리나라는 일본을 상대로 1대0으로 밀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정국의 힐패스를 이어받은 유상철은 오른발 발등으로 공을 골대로 밀어넣으면서 동점골을 뽑아냈고, 이것을 기점으로 한국은 일본을 계속 몰아치다가 결국 3대2 역전승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4강전에 진출했다. 이것이 유상철이 한일전의 사나이로 불리어지게 된 첫 계기였다. 그 이후 국가대표 부동의 선발 멤버로 뛰었으며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필드에서 활약하였다. 포지션을 가리지않고 기용되며, 투지넘치는 플레이와 공격 가담 능력으로 국가대표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활약하였는데 90년대 중반부터 가장 유럽축구 스타일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준다는 평을 들었던 선수이다.
지도자 생활
선수 생활 은퇴 후, 중국 광저우 등지에서 유상철 국제축구교실을 운영하다 2009년부터 춘천기계공고 초대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로 활약중이다. 2011년 7월 해임된 대전 시티즌의 왕선재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사령탑 물망에 올라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드디어 2011년 7월 17일, 대전 시티즌 제 6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과거 김대수 선수와의 충돌로 대전과 악연이 있었던 유상철 감독이 대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있다. 참고로 대전 시티즌 최고참 선수인 최은성과 동갑내기라 선수단 장악 여부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2012시즌을 앞두고, 최은성이 구단 사장과의 마찰로 팀을 나가자, 대전은 구심점을 잃은 듯 표류했다. 하지만 케빈과 김형범 등 경험 많은 공격진을 중심으로 팀의 무게가 잡혀가면서 분위기를 반등시키는 데 성공한듯. 하지만 한 때 강등권에서 허덕이는듯 성적은 좋지못했다. 결국 2012시즌 13위로 간신히 1부리그에 잔류하며 시즌을 마쳤으며, 대전은 유상철 감독의 지휘력 부족 등을 이유로 계약 연장 의사를 철회했고, 결국 유상철은 대전 시티즌에서 1년 5개월여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었다.
플레이 스타일
에피소드
- 국가대표로도 프로선수로도 많은 족적을 남긴 선수였지만, 2000년 이전까지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상을 당해 아쉬움을 남기는 선수이기도 했다. 일례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에 뽑혔으나 전지훈련 중 정강이 부상을 당해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바 있고, 2000년에는 네덜란드 팀인 비테세 아른험과의 계약이 성사 직전까지 갔었으나[3] 동년 4월 소속팀에서의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비테세로의 입단이 불발된바 있다.
- 2009년 이래로 그가 감독하는 곳에는 항상 오주포가 코치로 따라간다. 말하자면 유상철 사단.
경력
- 1999 ~ 2000 : 요코하마 F.마리노스 / J리그
- 2001 ~ 2002 : 가시와 레이솔 / J리그
- 2002 ~ 2003 : 울산 현대 / K리그
- 2003 ~ 2004 : 요코하마 F.마리노스 / J리그
- 2005 ~ 2006 : 울산 현대 / K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