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 유공 코끼리 축구단의 선수였다. 선수 생활 은퇴 후, 현재는 광운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프로필
이름 : 오승인
생년월일 : 1965년 12월 20일 생
포지션 : DF
소속팀 변천사 : 광운대학교 -> 포항 제철 -> 유공 코끼리
K리그 경력
|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파울 | 경고 | 퇴장 |
|---|---|---|---|---|---|---|---|---|
| 포항 제철 | 1988 | 1 | 1 | 0 | 0 | 0 | 0 | 0 |
| 포항 제철 | 1989 | 0 | - | - | - | - | - | - |
| 포항 제철 | 1990 | 0 | - | - | - | - | - | - |
| 유공 코끼리 | 1991 | 4 | 4 | 0 | 0 | 8 | 0 | 0 |
| 유공 코끼리 | 1992 | 27 | 18 | 2 | 0 | 14 | 1 | 0 |
| 유공 코끼리 | 1993 | 14 | 5 | 0 | 0 | 11 | 1 | 0 |
| 유공 코끼리 | 1993 | 15 | 3 | 0 | 0 | 12 | 1 | 0 |
| 통산 | - | 61 | 31 | 2 | 0 | 45 | 3 | 0 |
설명
선수 시절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으로, 광운대를 졸업하고 1988년 드래프트에서 포항 제철에 2순위로 지명되었다.
오승인 선수의 프로 데뷔전은 88년 4월 치루어졌는데, 데뷔전 상대는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이었다. 당시 럭키금성에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바로 앞 시즌(87시즌)까지 포항 제철 소속으로 활약했던 최순호 선수가 뛰고 있었는데, 최순호는 자신을 박대하며 내보낸 포항 제철과 이회택 감독에게 복수를 벼르고 있었다. (당시 이회택은 최순호와 포철간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최순호는 움직임이 더디고 활동량이 부족해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며 연봉을 삭감하여 재계약할 것을 요구했었고, 이에 반발한 최순호는 럭키금성으로 이적하였었다.)
이회택의 평가를 뒤집으려는듯,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최순호 선수의 폭발적인 움직임이 이어졌고, 최순호 선수의 전담 마크맨이었던 포철의 남기영 선수는 쩔쩔 매다, 결국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이 때 남기영 선수와 교체되어 최순호를 맡게 된 선수가 오승인이었고, 이것이 오선수의 데뷔전이었다. 여러가지 악조건에서 몸이 굳어버린 오승인 선수는 2:1로 포항 제철이 럭키금성에 앞선채 경기가 종료되기 약 30초 전, 최순호 선수를 완전히 놓쳤고 최순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태식 선수의 자책골을 유도하며, 2:2 무승부를 이끌었다.
최순호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이회택 감독에게 찾아가 인사를 청하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했고, 이 날의 수훈 선수이자 팀을 구한 영웅으로 언론의 스폿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반면 이 일로 인해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오승인 쪽이었다. 가히 기분이 좋을리 없었던 이회택 감독에게 오승인 선수는 함량 미달로 낙인 찍혀 이후 3년동안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게된 것이다.
3년이 지나고, 계약 만료로 포항 제철에서 방출된 오승인은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며 절치부심, 결국 기회를 잡게 되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동안 유공에서 60경기를 출장하였는데, 주 포지션인 사이드 풀백 외에도 센터백, 센터 포워드도 소화하며 멀티 포지셔닝을 자랑했다고 한다.
감독 시절
1994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오승인 선수는 이후, 모교인 광운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하여, 설기현, 여동원, 여승원 등을 조련하였고, 2007년 1월부터 광운대학교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팀을 전국체전 우승 등, 전국대회 2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U리그에도 참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