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19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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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1923년 ~ 1982년 11월 12일)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유소년 시절

서울 영등포 출신으로 연희전문을 졸업하였다. 연희전문 시절 포지션은 래프트 윙어셨다고 하며, 김성간주영광최영근장경환김삼락박경화정병탁 등으로 이어지는 선수들과 함께 활약하였다고 한다.


성인 선수 시절

연세대 시절부터 명망이 높았던 김선수는, 졸업 후 조선전업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6.25 동란을 거치면서 특무대에 입단해, 1954년 스위스 월드컵1956년 AFC 아시안컵 등에 참가한 뒤 1958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연세대학교 코치로 부임한 그는, 1982년 사망 직전까지 장장 24년동안 연세대학교 축구부를 진두 지휘하였다. 또한 연세대 지휘봉을 맡고 있는 와중에도 1962년 FIFA 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트레이너 역할을 담당하거나, 한국대학축구연맹대한축구협회 이사직을 수행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던바 있다. 이후 1977년 무렵 총감독으로 영전하였으며,[1] 1981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1982년 폐암 진단을 받은 뒤부터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결국 동년 11월 12일 오전 7시 30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하였다. 향년 59세.


에피소드

  • 연세대학교 감독 시절 별명이 '알카포네'였다고 한다. 알카포네와 비슷하게 체격도 좋았고,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호령하는 카리스마 때문에 붙은 별명이라고. 특히 연세대 축구부 선수를 스카우트 할 때 동원하는 인맥이 대단했기 때문에, 알카포네라는 별명이 더욱 잘 어울렸다고 한다. 이회택, 차범근 등 당대의 선수들을 놓고 고려대학교와 유일하게 스카우트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김지성 감독의 공이었다 할 정도.


참고

  1. 이 때 김지성 감독을 대신해 연세대학교 축구부를 지휘했던 인물이 장운수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