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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시절 ==
 
== 잉글랜드 시절 ==
 
2004년 8월 설기현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안정된 활약을 해 왔고, 팀 통산 7000호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하지만 울버햄프턴은 05-06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승격이 좌절되었다. 2006년 7월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이 확정된 레딩FC에 당시 역사상 최고 이적료로 이적하였다. 레딩으로 이적 후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온 설기현은 당시 감독이던 스티븐 코펠 감독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아왔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때는 설기현에게 패스하라."는 말까지 하기도 했으니...
 
2004년 8월 설기현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안정된 활약을 해 왔고, 팀 통산 7000호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하지만 울버햄프턴은 05-06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승격이 좌절되었다. 2006년 7월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이 확정된 레딩FC에 당시 역사상 최고 이적료로 이적하였다. 레딩으로 이적 후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온 설기현은 당시 감독이던 스티븐 코펠 감독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아왔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때는 설기현에게 패스하라."는 말까지 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시즌 중반으로 갈수록 설기현 특유의 부진으로(...) 감독과의 마찰이 잦아진 설기현은 풀럼FC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초 나름 선발로 활약하였지만 시즌 중반 새로 팀에 부임한 로이 호지슨 감독에게 설기현 선수는 전력 구상에 없었고, 2009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알 힐랄로 임대이적하였다.<ref>국내 최초의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경우. </ref> 사우디에서 활약한  2009년에는 팀의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과 2008-09시즌 팀의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임대 복귀 후 풀럼에서는 여전히 설기현 선수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2010년 1월 풀럼과의 계약을 상호해지하고 포항으로 입단하게 되면서 프로생활 10년만에 국내 무대에서 처음 활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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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즌 중반으로 갈수록 설기현 특유의 부진<ref>벨기에 시절 허리쪽에 부상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겨울만 되면 부진의 늪에 빠진다..</ref>으로(...) 감독과의 마찰이 잦아진 설기현은 풀럼FC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초 나름 선발로 활약하였지만 시즌 중반 새로 팀에 부임한 로이 호지슨 감독에게 설기현 선수는 전력 구상에 없었고, 2009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알 힐랄로 임대이적하였다.<ref>국내 최초의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경우. </ref> 사우디에서 활약한  2009년에는 팀의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과 2008-09시즌 팀의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임대 복귀 후 풀럼에서는 여전히 설기현 선수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2010년 1월 풀럼과의 계약을 상호해지하고 포항으로 입단하게 되면서 프로생활 10년만에 국내 무대에서 처음 활약하게 되었다.
  
 
== K리그 ==
 
== K리그 ==

2014년 6월 3일 (화) 17:10 판

파일:설기현.jpg
2001년 국가대표 시절 설기현

설기현(1979년 1월 8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10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중인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설기현
  • 출생일 : 1979년 1월 8일
  • 유스클럽 : 광운대학교 중퇴
  • 신체 : 187cm / 82kg
  • 국가대표 경력
1999년 U-20 월드컵 대표
2000년 북중미 골드컵 대표
2000년 아시안컵 대표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표
2004년 아시안컵 대표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
(A매치 통산 83경기 출장 19골)
  • 별명 : 설바우도, 설거북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 스틸러스 2010 16 4 7 3 0 0
울산 현대 2011 41 16 7 10 8 0
인천 유나이티드 2012 40 14 7 3 4 0
인천 유나이티드 2013 26 19 4 4 2 0
통산 (K리그) - 123 53 25 20 14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3년 시즌 종료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

강원도 정선군 출신인 설기현은, 강릉 성덕초등학교, 주문진중학교,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를 거쳐 광운대학교로 진학하였다. 광운대 시절 이동국, 김은중에 밀려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장신의 공격수로 청소년대표에 발탁되었던바 있다. 이후 1998년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시드니 올림픽대표로 차출되었으며,[1] 이후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오르내리며 활약하게 된다.


벨기에 시절

2000년 광운대학교 중퇴 후 대한축구협회의 유망주 해외이적 프로젝트의 대상자로 선정되어 유럽무대에 진출을 모색하였으며[2] 벨기에 주필러리그 팀이던 로얄 앤트워프에 입단테스트 끝에 정식계약을 맺는데 성공하였다. 비슷한 시기 앤트워프를 비롯해 벨기에, 독일 등에 진출 했던 이상일, 남궁도, 신영록 등이 부진을 면치못하다 고국으로 돌아간 것과 달리, 설기현은 악착같이 유럽무대에 적응해내며 첫시즌부터 6경기 연속골 등을 기록하며 00/01시즌 11골을 기록하며 대활약하였다.[3] 이러한 설선수의 활약에 관심을 보인팀은 벨기에리그 최강팀인 RSC 안더레흐트. 결국 안더레흐트는 01/02시즌을 앞두고 이적료 160만 달러, 연봉 30만 달러에 설선수를 영입했다. 안더레흐트에 입성한 설기현은, 벨기에 수퍼컵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데 이어, 팀의 주필러리그 우승에도 기여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당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했던 유일한 선수가 바로 설기현이었다.[4]


잉글랜드 시절

2004년 8월 설기현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안정된 활약을 해 왔고, 팀 통산 7000호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하지만 울버햄프턴은 05-06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승격이 좌절되었다. 2006년 7월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이 확정된 레딩FC에 당시 역사상 최고 이적료로 이적하였다. 레딩으로 이적 후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온 설기현은 당시 감독이던 스티븐 코펠 감독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아왔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때는 설기현에게 패스하라."는 말까지 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시즌 중반으로 갈수록 설기현 특유의 부진[5]으로(...) 감독과의 마찰이 잦아진 설기현은 풀럼FC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초 나름 선발로 활약하였지만 시즌 중반 새로 팀에 부임한 로이 호지슨 감독에게 설기현 선수는 전력 구상에 없었고, 2009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알 힐랄로 임대이적하였다.[6] 사우디에서 활약한 2009년에는 팀의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과 2008-09시즌 팀의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임대 복귀 후 풀럼에서는 여전히 설기현 선수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2010년 1월 풀럼과의 계약을 상호해지하고 포항으로 입단하게 되면서 프로생활 10년만에 국내 무대에서 처음 활약하게 되었다.

K리그

2010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며 프로데뷔 10년만에 K리그에서 뛰게되었다. 하지만 2010시즌 종료 후, 포항과 연봉협상 진통끝에 2011시즌 개막직전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으며, 2011년 울산을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후, 다시 자유계약대상자로 울산을 떠났고, 연고선수를 영입하려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의를 받고 계약에 합의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에 연봉은 3억 5천만원 정도. 설기현과 함께 인천에 입단한 2002년 월드컵 스타 김남일과 함께 인천을 강등권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경기를 선발 출장했으며, 그야말로 클래스 ㄷㄷㄷ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이 뛰는 인천 선수들이 설기현의 플레이를 따라가지 못해서 안타까울 지경이었으니. 다만 2013시즌에는 허리 부상으로 말미암아 작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있다.


국가대표 경력

광운대 2학년 시절이던 98년 U-20 대표팀에 발탁된 설기현 선수는, AFC U-19 챔피언십 조별예선에서 5골을 터뜨리며 주목을 받았고 곧바로 시드니 올림픽대표로 차출되며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다만 이 시절에는 약체팀과의 경기에서는 잘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득점포를 침묵해 새가슴이란 악평을 듣기도했다. 여기에 2000년 8월 척추뼈 골절상을 당해 시드니올림픽 본선무대에 참가하지 못했고, 2001년까지 국가대표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 설기현이란 이름이 잊혀지는듯도 했다. 하지만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에서 설기현 선수는 그야말로 날아올랐다.


플레이 스타일

A매치만 83경기를 소화한 베테랑 선수로 주 포지션은 윙 포워드다. 정확한 크로스와 날카로운 중거리슛이 강점인 선수. K리그로 온 이후에는 기복있는 플레이를 보여줘 기대치에 비해서는 활약도가 낮은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기대치에 비해서'이며 2시즌간 12골 13도움을 기록했다. ㄷㄷㄷ 이 정도면 리그 최정상급 윙 포워드. 다만 연봉도 국내에서 최정상급으로 받고있다. 인천 이적후에는 원톱에서 스트라이커, 주로 타겟맨 역할을 하여 직접 골을 노리기 보다 공중볼을 받아서 다른 선수에게 연결해 주는 역할 또는 측면으로 빠져서 크로스를 올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때문인지 생각보다 득점은 많지 않은 편.


에피소드

  • 2006년 5월 세네갈과의 A매치 경기 중 상대 미드필더의 강한 압박에 밀려 공을 내주지 않기 위해 수비진쪽으로 드리블하는 일이 있었는데, '설기현 역주행'으로 알려진 플레이다. 사실 주위에 패스를 받아줄 동료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미드필더들이 더 문제였던 상황이라고 생각됨.
  • 안더레흐트 시절, 그리고 레딩 시절 설기현은 팀에서도 에이스급에 속할 정도로 꽤 출중한 실력을 보여줬었지만, 조금만 부진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과도하게 내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안더레흐트에서는 계속 주전으로 나오다가 갑자기 벤치 대기만 하고, 레딩 시절에서는 골이나 어시를 기록해도 풀타임으로 뛰지 못하고 매번 교체되었었으니...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포항에서 울산으로 옮겨갈때 목적이 '스트라이커로 뛰고 싶었다'라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서 이적을 한다던가, 울산에서 1년 계약을 계속 요구해서 계약이 결렬되고 은사인 허정무 감독 품으로 간 것은, 오랜 유럽생활에서 좋은 활약을 해도 푸대접 당한 기억이 많았기에 안정적이고 자신을 좀 더 존중해 줄 수 있는 팀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돈은 많이 주지 못하지만 자신의 은사가 있고 자신에게 맞춰줄 수 있는 팀인 인천을 선택한 것은 아닐지.. [7]
  • 2012년 11월 18일 40라운드 대전과의 홈 경기에서 정당한 볼 경합 과정으로 보이는 장면에서 부심이 파울을 선언하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광고판을 맞추려고 찬 공이 하필 잘못 맞아 뜨면서 관중석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빈 관중석으로 날아가 피해는 없었지만 문제는 이 장면이 공중파(OBS)로 생중계 되었고 이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지면서 한바탕 제대로 욕을 먹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글 좀 올려봐라 냄비들아


경력

  • 2000.8 ~ 2001.7 : 로얄 앤트워프 / 벨기에 1부리그
  • 2001.8 ~ 2004.7 : RSC 안더레흐트 / 벨기에 1부리그
  • 2004.8 ~ 2006.7 : 울버햄튼 원더러스 / 잉글랜드 챔피언쉽리그(2부)
  • 2006.8 ~ 2007.8 : 레딩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 2007.9 ~ 2009 : 풀럼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 2009.1 ~ 2009.7 : 알 힐랄 리야드 / 사우디리그-(임대)


같이 보기

외부링크

참고

  1. 올대 시절 아시아예선에서 득점을 성공시키며 두각을 보였으나, 아쉽게도 부상으로 본선 무대는 밟지 못하였었다.
  2. 이 때 설선수를 비롯해 대부분의 유학 선수들을 주먹구구 식으로 유럽으로 보내버려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말 그대로 비행기표만 덜렁 주고 보낸 사례도 있었고 유럽팀이 지급한 계약금과 연봉 등은 유럽 에이전트들이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례까지 있었다;; 이 때의 교훈을 발판삼아 2002년 유소년 해외 축구 유학 프로젝트가 정식 출범하여 제대로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3. 당시 앤트워프 팀내 득점 2위에 랭크되는 활약이었다.
  4. 안정환은 주전이라 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5. 벨기에 시절 허리쪽에 부상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겨울만 되면 부진의 늪에 빠진다..
  6. 국내 최초의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경우.
  7. 이건 그냥 작성자(타마) 본인의 주관적인 추측입니다.
  8. 관련기사-그 이전 집계에서는 6998골 이였지만 집계상의 오류로 인하여 재집계 하였더니 7000번째골의 주인공이 설기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