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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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김기동(金基東, 1972년 1월 22일 ~ )은 1991년 K리그에 데뷔하여 2011년까지 21년동안 K리그에서 필드플레이어로 뛰었던 선수이다. 2011년 12월 12일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기동
  • 출생일 : 1972년 1월 22일
  • 신체 : 171cm / 68kg
  • 유스클럽 : 위덕대학교 졸업[1]
  • 국가대표 경력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A매치 통산 3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특기 사항
K리그 통산 최고령 필드플레이어 (한국 나이 41세)
K리그 통산 최고령 골 (만 39세 5개월 27일) - 2011년 7월 9일, 對 대전
K리그 통산 필드플레이어 최다 출장(501경기)
  • 별명 : 철인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제철 아톰즈 1991 - - - - - -
1992 - - - - - -
유공 코끼리 1993 7 4 0 0 0 0
1994 15 12 0 0 0 0
1995 29 2 0 1 3 0
부천 유공 1996 33 0 2 3 2 1
부천 SK 1997 14 1 5 0 2 0
1998 34 7 1 3 3 1
1999 36 19 3 3 2 0
2000 41 7 1 3 6 0
2001 30 0 1 2 1 0
2002 35 0 4 2 2 0
포항 스틸러스 2003 30 5 3 1 2 0
2004 25 12 1 0 0 0
2005 36 20 3 5 2 0
2006 25 12 0 7 3 0
2007 36 10 4 1 3 0
2008 19 1 3 0 0 0
2009 23 15 4 5 1 0
2010 13 11 0 0 2 0
2011 20 17 4 1 0 0
통산 (K리그) - 501 166 39 40 35 2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K리그[편집]

포항제철 시절[편집]

1991년 포항제철 축구단에 연습생으로 입단하였다. 1991년하면 약간 감이 안올듯하여 간단히 비유하면 아직 J리그가 출범하기도 전인, 최순호가 현역이던, 지동원 선수가 태어나던 시점이다. 포철에서는 2군에서만 활동하였으며,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체력테스트를 3위로 통과해 처음 이회택 당시 포철 감독의 눈에 드는데 성공하였던바 있다. 이후 1992년 겨울 당시, 유공 코끼리 감독이었던 박성화는 이회택 감독에게 '쓸만한 선수 있으면 유공으로 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넣었고, 이 때 이감독은 김기동 선수를 지목하며 유공으로 데려가길 권했다. 이를 계기로 김기동 선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공, 부천 시절[편집]

초기 유공 시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하며 주로 빠른발을 이용한 플레이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1994년 가을, 유공의 신임 감독으로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이 부임한 뒤로 김기동 선수의 전술적 역할은 변화하게 되는데.. 바로 조셉, 윤정환이 공격하러 올라간 중앙 미드필더의 공지(空地)를 상대 선수들에게 뺏기지 않도록 메우는 역할을 김기동 선수 홀로 떠앉은 것이다. 이는 90분 내내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전술 이해도가 겸비된 선수만이 할수있는 중임이었다. 김기동 선수는 이를 훌륭하게 소화했고, 김기동의 든든한 지원 아래 조셉과 윤정환 두 선수는 신나게 공격템포를 조절하며 상대 수비진들을 벗겨낼 수 있었다.


포항 입단과 현황[편집]

2002년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은 김선수는 포항행 제의를 받게된다. 당시 부천 SK 감독이었던 트나즈 트라판은 김기동을 반드시 잡아달라고 구단에 읍소했던터라 부천 측은 계약금 1억에 연봉 2억 5천만원, 2년계약을 제의했는데 포항 측이 3년 계약 총액 8억원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김선수는 포항행을 결정하였다.[2] 포항에서 2011시즌까지 활약하였으나, 2011년 12월 12일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밟겠다는 선언을 하였다.[3] 1골만 더 넣으면 40-40 클럽 가입인데 아쉬울따름. 김기동 선수 본인도 40-40 클럽에 도달하지 못한게 가장 아쉽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지도자 생활[편집]

2013년 12월,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2 대표팀에 코치로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로서 첫 출발을 알렸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부천 SK 시절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윤정환 등 공격 성향이 강했던 부천의 다른 미드필더들을 대신해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마당쇠 선수로 활약하였다. 그렇다고 공격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런건 아니었고, 순전히 전술적 움직임을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선수였다는게 정확한 표현일듯.[4][5] 포항 이적 이후에는 수비 지향적 플레이보다 공격 성향이 더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


에피소드[편집]

  • 부천SK 시절 트나즈 감독이 2002 시즌을 마친 후 김기동만은 잡아야 한다고 구단에 간청하였으나 끝내 포항으로 이적하였다.
  • 2012년 3월 17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김기동 선수의 은퇴식에서 김선수는 양복 아래 포항 유니폼을 입고 나와 포항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그의 마지막 선수 유니폼엔 '감사합니다' 가 적혀있었고, 김기동 선수는 은퇴식을 마친 후 그 유니폼을 포항 팬들에게 전달하며 감동적인 은퇴식을 마무리지었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원래 신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 선수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으나, 포항 스틸러스와 협력관계인 위덕대학교에서 2009년 사회체육학과 학사 졸업증을 수료하였다. 김기동 선수와 비슷한 예로 이동국 등이 고졸로 프로데뷔해 위덕대 졸업장을 받았다.
  2. 단순히 돈 문제를 떠나서 당시 부천은 노장 선수들이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팀 기여도와 상관없이 가차없이 방출시키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결국 재계약해도 미래가 불안하다 생각한 김기동 선수는 포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3. 참고링크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69404
  4. 당시 부천의 미드필더였던 조셉도 김기동 선수의 헌신적인 플레이 덕분에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던바 있다.
  5. 오늘날 상당수의 어린 선수들이 홀딩 포지션을 힘들기만 하고 재미없는 포지션이란 이유로 기피하는 점을 생각해볼때, 김기동 선수의 역할이 얼마나 해내기 어려운 역할인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