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종
이광종 (李光鍾, 1964년 4월 1일 ~ 2016년 9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8년부터 199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2000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뛰어난 지도력으로 28년 만에 금메달을 안긴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2015년 1월부터 급성 백혈병으로 투병하였으며, 2016년 9월 26일 새벽, 병세가 악화되어 향년 5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선수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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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 소속팀 | 직책 |
---|---|---|
2000년 ~ 2015년 | ![]() |
유소년 전임지도자 |
2002년 ~ 2003년 | ![]() |
감독 |
2002년 ~ 2005년 | ![]() |
수석 코치 |
2004년 ~ 2007년 | ![]() |
유소년 전임지도 팀장 |
2007년 7월 ~ 2010년 | ![]() |
감독 |
2011년 ~ 2012년 | ![]() | |
2013년 ~ 2015년 1월 | ![]() |
유소년 시절[편집]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출신으로, 김포 통진종고, 서울 중앙대학교를 나왔다. 중앙대 시절, 88 올림픽대표팀에 포함되면서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하였으며 87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브라질, 일본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을 잇달아 완파하며 은메달을 차지하는 활약을 펼쳐보여 국가대표 팀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이 때의 활약을 계기로 프로행 논의가 오고갔다.
K리그[편집]
1988년 드래프트에서 유공 코끼리의 지명을 받은 이선수는, 입단 동기인 황보관과 함께 유공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활약하였다. 특히 포지션이 링커에 가까운 위치였음에도 곧잘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터뜨리곤해 유공의 알짜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94년부터 유공 축구단에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이 부임함에 따라, 이광종 선수의 포지션은 링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신하며 활약에 방점을 찍었다. 94시즌에만 9골을 몰아치며 팀내 득점 2위[1]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것. 이러한 이광종 선수의 대활약에 주목한건 96시즌 K리그 참가를 위해 선수단 구성에 매진하고 있던 수원 삼성의 김호 감독이었다. 김감독은 열렬한 구애 끝에, 이광종 선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96시즌 이광종 선수는 김호 감독의 기대대로 수원에서 공격의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로 바데아와 함께 대활약하였다. 이후 1997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지도자 생활[편집]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 지도자 수업을 받던 이씨는 2000년부터 대한축구협회가 출범시킨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시스템의 담당관을 맡아 1기 유소년 전임지도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2년 U-15 대표팀 감독, 2005년 U-18 대표팀 감독대행 및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 팀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2007년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09년 FIFA U-17 월드컵에서 8강의 성적을 일구어내는 등 유소년 축구계의 실력파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갔다.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홍명보 감독이 동메달을 획득한 후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승진함에 따라, 이광종 감독은 홍감독 이후 공석이 된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지휘하기에 이르렀고,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경기력과 선수 컨디션 문제 등 여러 악조건에 불구, 28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호평을 얻었다. 이대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도 활약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는데, 2015년 1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치료차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고 말았다.
별세[편집]
2015년 1월부터 병마와 싸우던 이광종 감독은 점차 병세가 호전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많은 팬들이 안도하게 만들기도 하였으나, 병세 악화로 2016년 9월 26일 새벽에 끝내 타계하고 말았다. 향년 52세. 많은 축구인들은 이 감독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으며, 그의 지도를 받아온 수많은 선수들도 포함되었는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결정지었던 임창우 선수는, "불과 이번 여름에 전화 드렸을때 까지만 해도 목소리가 많이 좋아지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디 하늘에선 편히 쉬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잠시나마 감독님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히기도 하였다.[2]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경력[편집]
시즌 | 소속팀 | 리그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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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1995 | ![]() |
K리그 | |
1996 ~ 1997 | ![]() |
K리그 | |
선수 생활 은퇴 |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 ↑ 1위는 15골을 넣은 황보관 이었다.
- ↑ 손흥민·임창우, 이광종 감독 별세 애도 "목소리 좋아져 다행이라 생각했는데…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