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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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곤

김치곤(1983년 7월 29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2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치곤
  • 출생일 : 1983년 7월 29일
  • 신체 : 183cm / 76kg
  • 국가대표 경력
2002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200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 대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4년 ~ 2009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9경기 출장)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2002 14 3 1 0 3 1 0
2003 20 4 0 0 6 0 2
FC GS FC GS 2004 19 2 0 0 7 0 0
2005 20 4 0 2 8 0 0
2006 24 4 0 0 7 0 0
2007 33 4 1 0 4 0 0
2008 30 6 0 0 10 0 0
2009 22 5 0 0 7 0 0
Teamlogo uhfc.png 울산 현대 2010 33 5 0 0 4 0 0
Teamlogo sangju.png 상주 상무 2011 19 4 0 0 3 1 0
2012 23 1 1 0 3 0 0
Teamlogo uhfc.png 울산 현대 2012 13 3 0 0 0 0 0
2013 38 0 3 0 3 0 0
2014 34 2 2 0 3 1 0
2015 0 0 0 0 0 0 0
통산 (K리그) - 342 47 9 2 68 3 2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5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부산 덕천중학교와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각급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며, 동래고 졸업 후 대학 진학이 아닌 프로 진출을 모색해 안양 LG 치타스 행을 확정했다.


프로 생활[편집]

2002년 계약금 2억, 연봉 2천만원을 받고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초고교급 신인으로 평가받던 최태욱과 동액의 연봉과 계약금을 보장받으며 안양에 입단하였기에, 데뷔 시즌부터 준주전급으로 활약하며 조광래 감독의 총애를 받았다. 이후 안양이 해체되고 FC GS로 팀이 바뀌는 와중에도 꾸준히 살아남아 GS에서 활동하였으며, 2009시즌을 끝으로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다. 조건은 현영민 선수와의 1:1 트레이드


  • 김치곤 (FC GS) ↔ 현영민 (울산 현대)


당시 울산 팬들은 원클럽맨으로 많은 사랑을 주었던 현영민을 내주고 데려온 선수가 김치곤 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여기다 김치곤 선수도 FC GS 시절을 자꾸 그리워하는 제스쳐를 보여 울산팬들의 분노를 자초한 경향도 컸다. 결국 마인드 적으로 안정을 잡지 못한 김선수는 울산 입단 후 슬럼프에 허덕였고, 이후 군입대를 택해 2011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상주 상무에서 군복무를 수행했다. 이 때만 해도 울산 팬들 사이에서 김치곤 선수는 금지어 수준으로 까였지만.. 다행히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김호곤 감독의 신뢰 속에 꾸준히 출장 경력을 늘려갔으며, 팬들도 김치곤 선수의 성장에 호평을 보냈다. 그리고 2013년.. 김치곤은 환골탈태 수준으로 센스와 안정감을 갖추면서 울산의 철벽 수비라인에 한 축을 맡게 되었고, 김치곤과 박동혁 등의 활약 속에 울산은 정규리그 1위를 오랜시간 동안 수성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올림픽대표 시절까지만 해도 중앙 수비수치고는 빠른발에 영리한 수비를 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프로 무대에서는 스피드보다는 대인마크에 집중하는 듯 하다. 다만 한 번 흐름을 놓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마인드 문제인듯.. 그나마 군대 다녀온 이후로는 좀 나아졌다는 평을 얻었으며, 13시즌에는 드디어 멘탈 문제마저 걷어내며 정상급 수비수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얻기에 이르렀다. 특히 13시즌 김치곤 선수는 온몸을 던지는 허슬 수비를 많이 보였는데, 사실은 그의 단점인 느린 발을 커버하기 위한 수비 스타일 변화였다고 한다.


에피소드[편집]

김치곤의 흑역사1
  • 김치곤 선수가 FC GS 소속이던 2008년 5월 21일, FA컵 32강전에서 고양KB 국민은행를 맞이한 GS는 후반 8분 김치곤과 김병지 선수간 사인 미스를 틈탄 이정운 선수의 재치있는 쇄도로 선취골을 실점한 끝에 32강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당시 김치곤은 이정운 선수가 볼을 잡는 순간, 이미 골을 먹혔다는듯 지레 포기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고 이를 본 귀네슈는 불같이 화를 내며 프로로서 기본 자세가 안된 선수가 있다며 김치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김치곤 선수 입장에서는 잊고싶은 기억일듯.






  • 위의 일이 일어난 뒤 2009년 FC GS 주장으로 선임된 김치곤 선수는, 2009 K리그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가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상대팀에 걱정할만한 공격수는 없다. 오히려 상대팀들이 우리의 공격진을 걱정해야할 것 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멘트를 남겼지만, 위의 사건이 준 임펙트가 워낙 컸던지라 오히려 타팀 팬들에게 까임만 당했던바 있다.



김치곤의 흑역사2
  • 이후 2010년, 울산 현대로 이적한 김치곤 선수는 소속팀인 울산 현대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막지못한채 콧뼈 함몰로 수술까지 받았던바 있다. 그런데 수술 후 회복 중이던 김치곤 선수가, 친정팀인 FC GS의 결승전을 보러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달려갔다는 소식이 FC GS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오른쪽 짤 참조) 논란을 빚은바 있다. 안 그래도 현영민을 내주고 데려온 선수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시선이 곱지않았던 울산팬들은, 김선수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결국 울산팬들과 김치곤 선수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그나마 이 사건 직후 김치곤 선수가 상주 상무에 입대하며 위 사건은 잊혀져갔으며, 전역 후에는 울산으로 돌아와 울산의 철벽으로 재평가받으며 인생사 새옹지마를 몸소 실현해보였다.




  • 어째 에피소드가 다 까이는 얘기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미지 환골탈태에 성공했으니 외려 잘된 셈?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