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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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절 한재웅

한재웅 (1984년 9월 28일~)은 전직 축구 선수로 2003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하였다.

청소년대표 및 부산 아이파크 소속 시절까지는 공격수로 활약했으나, 대전 시티즌에 입단한 이후부터는 윙백으로 뛰었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한재웅
  • 등록명 : 한재웅
  • 생년월일 : 1984년 9월 28일생
  • 신체조건 : 178cm / 73kg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
200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2003 K리그 1 1 0 0 0 0
2004 4 4 0 0 0 0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2005 13 11 2 0 1 0
2006 0 - - - - -
2007 1 1 0 0 0 1
2008 2 2 0 0 0 0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2008 13 13 1 1 3 0
2009 19 15 3 1 2 0
2010 23 8 3 1 3 0
2011 24 12 3 1 6 0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2012 24 12 0 1 4 0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유나이티드 2013 3 3 0 0 0 0
2014 0 - - - - -
울산 현대 울산 현대 2014 7 7 0 1 0 0
대구 FC 대구 FC 2016 챌린지 15 - 0 0 2 0
2017 클래식 0 - - - - -
통산 (K리그) - 클래식 134 89 12 6 19 1
- 챌린지 15 - 0 0 2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8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인천 만수중 및 부평고등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만수중 재학 시절, 팀을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어 당시 주니어 국가대표을 총괄하던 아브라함 브람 감독의 눈에 띄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2000년 AFC U-16 챔피언십 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1] 당대 축구 명문 부평고등학교에 진학 후에는 프로팀 스카우터의 주목을 받게된다. 2002년 이근호, 김태영 등과 함께 에이젼트 '지쎈'과 계약을 맺은 한재웅 선수는, 동년 6월 부산 아이콘스와 프로팀 입단 계약을 맺었고[2] 네덜란드 축구 유학도 구단의 지원으로 다녀오는등 유망주로 대접받았다.

이후 2002년 U-20 세계 청소년 월드컵 대표로 일찌감치 발탁되었으나, 2002년 큰 부상을 당해 낙마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세계 청소년 월드컵이 2002년에서 2003년으로 한 해 연기됨에 따라, 한재웅 선수는 부상 회복 후, 본선 대표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FIFA 청소년 월드컵 조별 예선 3차전 (對 미국전)에서 오른쪽 윙 포워드로 선발 출장하였으나,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남궁웅 선수와 교체당하고 말았다.[3] 결국 미국전을 0:2로 패배한 한국 청소년 대표팀은 1승 2패, 조 3위를 기록했으나 골득실에서 다른 조 3위팀들을 제치고 가까스로 16강전에 진출했고 16강전에서 일본 U-20 대표팀에게 연장 끝에 1:2 패배를 당하며 대회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당시 한재웅 선수는 16강전에서 후반 15분께 교체 투입되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하였고, 그것이 한선수의 마지막 국가대표 기록이 되고 말았다.


부산 시절[편집]

청소년대표에서 각광을 받았던 것과 달리 소속팀에서는 통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2003, 2004 부산에서 간간히 교체 출장에 그쳤기 때문. 그러다 2005시즌을 앞두고 안효연 선수의 이적과 루시오등, 외국인 선수의 부진하자 한재웅 선수는 주전 공격수로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된다. 2005년 부산의 중앙 공격수로 박성배 선수의 서브로 나오거나, 투톱으로 루시아노와 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골 결정력은 어느 정도 있었으나, 드리블이나 몸싸움이 좋질 않아, 공격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살 이란 어린 나이의 강점과 스피드와 득점 본능이 탁월하다는점 등에서 부산 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유망주로 분류되며 기대의 시선을 받고 있었는데.. 2006시즌 직전 연습경기 울산 현대 전에서 박동혁 선수의 거친 태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한재웅 선수의 발목이 직각으로 꺽여나갔으니.) 로 말미암아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된다. 끔찍한 부상 이후, 2006년 전부와 2007년 대부분의 시간을 2차례에 걸친 수술과 재활로 보낸 한재웅 선수는 과거 보여줬던 스피드라는 강점도 사라진 상태로 부산에 복귀하였다. 결국 황선홍 감독을 한재웅 선수를, 주 포지션인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 훈련을 시키는데, 수비적 센스가 없었던 한재웅 선수는 상당한 고생을 하게된다. 결국 2008년 중간 이적 시장에서, 김호 감독의 요청으로 한재웅 선수는 주승진 선수와 트레이드 되며 부산에서의 기억을 마무리 지었다.



대전ㆍ전남 시절[편집]

대전 시티즌에 입단한 한재웅 선수는, 조커로 나서 데뷔 2경기 만에 골을 신고하는 등 공격수로서 부활을 점치기도 했으나, 2010년께 들어서면서 사이드 풀백으로 포지션을 정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의 2년에 걸친 포지션 체인지 시도였던 셈인데 결국 성공, 한선수는 다소 부족한 수비 능력을 공격 능력으로 커버하면서 좋은 활약을 이어갔으며, 사실상 2011시즌 김창훈, 김성준 선수 등과 더불어 대전에서 몇안되는 믿음직한 선수였다는 평을 들었다. 2011시즌 종료 후 타 팀 이적설이 흘러 나오더니, 결국 전남의 황도연의 1년 임대와 김재훈의 완전 이적의 조건 상대로 전남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위 트레이드 이후, 대전팬들은 대전의 핵심 선수를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전남으로 내보냈다고 분노를 쏟아내기도..


인천ㆍ울산 시절[편집]

2012시즌 전남에서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시즌 종료 후 안재준과 함께 인천 유나이티드로 트레이드되었다. 아무래도 부평고 시절 감독이었던 김봉길 감독과도 관련이 있을듯.



하지만 2013 시즌 개막 후 공개된 등록 선수 명단에서, 인천과 전남 어디에도 한재웅 선수의 이름이 등록되어있지 않아 팬들의 의문을 자아냈고, 2월경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3시즌 ACL에 부리람이 출전한다는 점, 연봉도 상당 수준 보장하기로 했다는 점 등에서 한선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고.. 그러나 한선수는 부리람에서 6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7월 상호 계약해지로 부리람을 떠나 5개월여 만에 인천 유나이티드에 복귀하게 되었다. 이후 인천에서는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4년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으나 울산에서 7경기 교체 출장에 그친 뒤 퇴단하였다.


해외 진출과 복귀[편집]

울산에서도 퇴단한 한선수는, 2015년 3월 홍콩 프리미어리그 팀인 Hong Kong Rangers FC에서 입단하여 2014/15시즌 후반기 5경기 출장 1골을 기록하였으며, 2015/16시즌을 앞두고 Eastern Sports Club으로 이적하여 여기서는 3경기 출장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홍콩에서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한선수는, 2016년 1월 대구 FC에 영입되어 한국 무대로 복귀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탁월한 체력과 돌파 능력이 압권이다. 발도 상당히 빨라 야생마라는 별명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이드 - 박치기 드리블이라는 특유의 장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골 결정력이 부족해서 공격수로는 무리라는 평가가 지배적. 윙어로서도 크로스 능력이 부족하여 그냥 차두리 스타일의 전투형 풀백이 어울린다.


에피소드[편집]

  • 어릴땐 나름 아이돌(?) 스러운 외모를 가졌었는데 2010시즌부터 별안간 머리를 빡빡 밀더니 아예 삭발 스타일로 가는 모양. 그러다 홍콩 시절 무렵부터 파마 머리로 또 한번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경력[편집]

  • 2015.7 ~ 2015.12 : Eastern Sports Club / 홍콩 프리미어리그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당시 한국 대표팀은 중국, 브루나이, 몽골과 예선 7조를 이뤘는데 브루나이와 몽골을 상대로 28골을 쏟아놓었으며 그 중심에 한재웅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공할 골세례에도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는데, 중국과 2:2로 비겨서 승점이 동률이 된 상황이었는데, 중국이 브루나이, 몽골을 상대로 31골을 쓸어담았기 때문이었다...
  2. 당시 계약금 1억 5천만원, 계약기간 5년의 조건이었다.
  3. 한재웅 선수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UAE의 풍토와 음식이 몸에 맞질 않아,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