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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0시즌에도 [[2년차 징크스]]도 없이 22골을 성공시키며 [[K리그 득점왕]] 수상하였으며 국가대표에도 승선하는 등, 유병수 선수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10년 4월 18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혼자 4골을 쓸어넣는 활약을 보였는데, 이는 2003시즌 [[성남 일화 천마]]의 [[두두]] 선수가 [[광주 상무]]를 상대로 4골을 기록한 이래 7년만의 기록이다. 인천 선수로서 한경기 첫 4골을 기록한 선수도 유병수가 처음이다. 역대 5번째 20골 득점왕, 역대 최연소 20골 득점, 최연소 토종 득점왕, 역대 최고 경기당 득점왕 (0.79골) 등 K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중. 또한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이 진행한 '2010 선수들의 선택, Player's Choice' 설문조사에서 광주를 제외한 K리그 14팀의 선수들로부터 26.6%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2010시즌에도 [[2년차 징크스]]도 없이 22골을 성공시키며 [[K리그 득점왕]] 수상하였으며 국가대표에도 승선하는 등, 유병수 선수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10년 4월 18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혼자 4골을 쓸어넣는 활약을 보였는데, 이는 2003시즌 [[성남 일화 천마]]의 [[두두]] 선수가 [[광주 상무]]를 상대로 4골을 기록한 이래 7년만의 기록이다. 인천 선수로서 한경기 첫 4골을 기록한 선수도 유병수가 처음이다. 역대 5번째 20골 득점왕, 역대 최연소 20골 득점, 최연소 토종 득점왕, 역대 최고 경기당 득점왕 (0.79골) 등 K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중. 또한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이 진행한 '2010 선수들의 선택, Player's Choice' 설문조사에서 광주를 제외한 K리그 14팀의 선수들로부터 26.6%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였다.
  
워낙 지난 2년간 활약도가 출중했기 때문에 2011시즌, 약간 득점 페이스가 주춤하자 언론으로부터 [[슬럼프]]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있다. 문제는 저런 기자들의 개드립에 선수 본인이 압박감을 느낄수록 플레이가 망가질 수 있다는것. 여기에 2011년 터진 승부조작에 유병수도 연관된것 아니냐는 괴소문이 돌아 유선수를 마인드적으로 더욱 괴롭게 압박했다. 결국 유선수는 해외진출을 모색끝에 2011년 7월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FC와 3년계약을 맺고 중동행을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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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지난 2년간 활약도가 출중했기 때문에 2011시즌, 약간 득점 페이스가 주춤하자 언론으로부터 [[슬럼프]]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있다. 문제는 저런 기자들의 개드립에 선수 본인이 압박감을 느낄수록 플레이가 망가질 수 있다는것. 여기에 2011년 터진 승부조작에 유병수도 연관된것 아니냐는 괴소문이 돌아 유선수를 마인드적으로 더욱 괴롭게 압박했다. 결국 유선수는 해외진출을 모색끝에 2011년 7월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FC와 3년계약을 맺고 중동행을 결정지었다.<ref>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적료 30억, 연봉 20억에 이적했다고 알려져 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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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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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즌 K리그에서 맹활약을 보였던 유병수의 국가대표 발탁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병수는 아시안컵을 대비하는 [[조광래]]호에서 살아남아 아시안컵을 참가하게 되었다. 친선 경기에서 교체출장하며 [[지동원]]의 A매치 데뷔골을 어시스트 했던 유병수는 [[박주영]]의 부상으로 비어있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자리에 중용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호주전에서 [[조광래]]감독은 후반 20분 [[지동원]] 대신 유병수를 투입하였으나 24분 뒤인 후반 44분 다시 유병수를 빼고 [[윤빛가람]]을 투입시키는 굴욕을 선사했다.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였던 유병수와 국가대표에서 쓰였던 제로톱과 상성이 맞지 않았던 것. 이후 싸이월드에 올린 글이 본의 아니게 커져버리면서 '항명파동'이 되어버렸고, 조광래 감독은 이후 유병수를 더이상 쓰지 않았다.<ref>2011년 10월 현재, 유병수와 비슷하게 국대에서 부름을 받지 못한 [[이동국]]이 다시 국가대표로 불렸지만, 성공이랑 거리가 먼 결과를 가져온 탓에 조광래 감독 체제 하에서 유병수가 다시 부름을 받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del>유병수 얼빠로서 아쉽다.</de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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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힐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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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시즌에서 절정의 골감각을 선보이며 활약한 유병수는 현재 알힐랄에서 투톱으로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알 아흘리와의 경기에서 혼자 1골 2AS를 기록하며 맹활약하면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 플레이 스타일 ==
 
== 플레이 스타일 ==

2011년 10월 14일 (금) 08:26 판

파일:유병수.jpg
인천 시절의 유병수

유병수(1988년 3월 26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유병수
  • 등록명 : 유병수
  • 출생일 : 1988년 3월 26일
  • 학력 : 언남고 -> 홍익대학교 중퇴
  • 수상경력
2010년 K리그 득점왕
  • 국가대표 경력
2009년, 201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1경기 출장
  • K리그 기록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인천 유나이티드 2009 34 19 14 4 7 0
인천 유나이티드 2010 31 9 22 0 4 0
인천 유나이티드 2011 13 6 4 2 3 0
통산 (K리그) - 78 34 40 6 14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8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홍익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었으나,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겪었던 무릎 부상으로 인해 프로 스카우터들에게는 대학 최대어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능력은 좋은데 부상 위험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 덕분에(?) 강원 FC는 우선지명 16명 보유권을 가졌음에도 유병수 선수를 지명하지 않았다.


K리그

2009년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2009년 K리그 개막경기에서 對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자신의 리그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터뜨린 유병수 선수는, 데뷔 시즌에만 14골을 쓸어담으며 K리그 판도를 발칵 뒤집었다. 예년같으면 이견의 여지없는 K리그 신인왕 수상자였을 것이나, 유독 대어급 신인(?)이 즐비했던 2009시즌 괴물 김영후 선수에게 밀리며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2010시즌에도 2년차 징크스도 없이 22골을 성공시키며 K리그 득점왕 수상하였으며 국가대표에도 승선하는 등, 유병수 선수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10년 4월 18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혼자 4골을 쓸어넣는 활약을 보였는데, 이는 2003시즌 성남 일화 천마두두 선수가 광주 상무를 상대로 4골을 기록한 이래 7년만의 기록이다. 인천 선수로서 한경기 첫 4골을 기록한 선수도 유병수가 처음이다. 역대 5번째 20골 득점왕, 역대 최연소 20골 득점, 최연소 토종 득점왕, 역대 최고 경기당 득점왕 (0.79골) 등 K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중. 또한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이 진행한 '2010 선수들의 선택, Player's Choice' 설문조사에서 광주를 제외한 K리그 14팀의 선수들로부터 26.6%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였다.

워낙 지난 2년간 활약도가 출중했기 때문에 2011시즌, 약간 득점 페이스가 주춤하자 언론으로부터 슬럼프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있다. 문제는 저런 기자들의 개드립에 선수 본인이 압박감을 느낄수록 플레이가 망가질 수 있다는것. 여기에 2011년 터진 승부조작에 유병수도 연관된것 아니냐는 괴소문이 돌아 유선수를 마인드적으로 더욱 괴롭게 압박했다. 결국 유선수는 해외진출을 모색끝에 2011년 7월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FC와 3년계약을 맺고 중동행을 결정지었다.[1]

국가대표

2010 시즌 K리그에서 맹활약을 보였던 유병수의 국가대표 발탁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병수는 아시안컵을 대비하는 조광래호에서 살아남아 아시안컵을 참가하게 되었다. 친선 경기에서 교체출장하며 지동원의 A매치 데뷔골을 어시스트 했던 유병수는 박주영의 부상으로 비어있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자리에 중용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호주전에서 조광래감독은 후반 20분 지동원 대신 유병수를 투입하였으나 24분 뒤인 후반 44분 다시 유병수를 빼고 윤빛가람을 투입시키는 굴욕을 선사했다.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였던 유병수와 국가대표에서 쓰였던 제로톱과 상성이 맞지 않았던 것. 이후 싸이월드에 올린 글이 본의 아니게 커져버리면서 '항명파동'이 되어버렸고, 조광래 감독은 이후 유병수를 더이상 쓰지 않았다.[2]

알힐랄

오프시즌에서 절정의 골감각을 선보이며 활약한 유병수는 현재 알힐랄에서 투톱으로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알 아흘리와의 경기에서 혼자 1골 2AS를 기록하며 맹활약하면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 상당히 터프하며 볼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하다. 자기에게 들어온 볼은 왠간해서는 자기가 해결을 보려는 스타일. 나쁘게 보면 오만한 플레이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공격수라면 응당 그 정도의 집착과 위압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K리그 플레이어 중 유병수 선수와 가장 비슷한 선수를 꼽으라면 노상래 선수를 개인적으로 꼽겠다.
  • 셋피스 상황에서 기민한 움직임으로 헤딩을 잘 따내는 스타일이다. 또한 왼발 오른발 모두 슈팅에 능하며, 프리킥 능력도 지니고 있다. 순간적인 드리볼 능력도 뛰어나고 움직임이 좋아 PK를 많이 얻어낸다. 다만 역습을 즐겨 하는 팀의 특성상 공격에서의 움직임이 무척 절제되어 있는 편이고, 수비가담이 부족하고 움직이는 폭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포지션은 원톱에서의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둘다 가능하다.
  • 인천 유나이티드가 얻는 PK는 거의다 유병수가 전담한다. 때문에, PK를 몰아주어 만들어진 득점왕이란 소리도 듣고 있으나, 올시즌 (2010시즌) PK 골이 3골이므로 (얻어낸 PK는 5개) 그 3골을 제외한다 해도 여전히 2010시즌 K리그 득점 1위다.


에피소드

  • 본래 2009년 9월,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해 對 오만과의 경기에 출전해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이 경기가 A매치로 인정되지 않아 비공식 데뷔전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후, 2010년 10월, 한일전에서 교체 투입되며 정식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다.
  • 자신이 데뷔한 09시즌 부산과의 첫경기에서 먼 프리킥 찬스에서 환상적인 무회전 프리킥을 시전한 이후 별명이 '월미도 호날두'가 되었다. 이 별명은 해외에서도 불리고 있어서 알 힐랄 경기때 해설자가 '월미도 호날두'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첫 별명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정말.

경력


같이 보기

참고

  1.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적료 30억, 연봉 20억에 이적했다고 알려져 있다.
  2. 2011년 10월 현재, 유병수와 비슷하게 국대에서 부름을 받지 못한 이동국이 다시 국가대표로 불렸지만, 성공이랑 거리가 먼 결과를 가져온 탓에 조광래 감독 체제 하에서 유병수가 다시 부름을 받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유병수 얼빠로서 아쉽다.

알 힐랄 팬들은 영어로도 좀 써달라고 아우성.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