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빛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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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로 뛰는 윤빛가람

윤빛가람 (1990년 5월 7일 - 현재)은 2010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드필더다.



프로필[편집]

  • 본명 : 윤빛가람 (Yoon Bit-Garam)
  • 출생일 : 1990년 5월 7일
  • 신체조건 : 178cm / 70kg
  • 국가대표 경력 : (통산 A매치 13경기 출장 2골 기록중)
  • 등번호 :
  • 수상기록 
대회명 소속 수상 기록
K리그 컵대회 경남 FC 3위 (2011)
K리그 신인왕 경남 FC 2010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 경남 FC 2010, 2011
AFC 아시안컵 대한민국 A팀 3위 (2011)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A팀 3위 (2010)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경남 FC 2010 29 5 9 7 1 0
2011 32 9 8 7 10 0
성남 일화 천마 2012 31 20 1 3 5 1
SK 유나이티드 2013 31 14 1 2 5 0
2014 0 0 0 0 0 0
통산 (K리그) - 123 48 19 19 21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윤빛가람은 창원시 의창구 출생으로, 의창구에 있는 창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토월중학교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토월중학교 코치의 지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윤빛가람의 아버지는 윤빛가람을 김해시에 위치한 김해중학교로 전학시켰다. 그 뒤 윤빛가람은 부경고등학교에 입학, 대한민국 U-17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이 때 부터 FM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그는 한국에서 U-17 월드컵이 열렸을 때 열린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K리그는 느려서 안 본다. 나치개랑FC GS의 경기가 그나마 낫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축구팬들에게 폭풍 까임을 당했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그는 U-17 월드컵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였고, 팬들에게 거품뿐인 선수, 입으로 축구하는 선수라는 혹평을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2009시즌을 앞두고 중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하자마자 발목을 심하게 다쳐 4개월 가까이 쉬었던 그는 대학때는 그렇게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경남 FC 생활[편집]

2010년이 되면서, 대학 2학년이 된 윤빛가람은 프로 입단을 타진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비하발언과 함께 부상 후 좋지 못한 경기력 때문에 그를 지명하려는 클럽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경남 FC 감독이던 조광래는 미드필더진의 강화를 위해 과감히 윤빛가람을 지명했다. 고향 팀에 입단하며 K리그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K리그 깎아내리더니 결국 뛰는건 K리그냐는 식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그는 그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이용래, 김태욱과 함께 경남 역사상 최고의 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라인을 형성했다. 그는 2010시즌 29경기에 나서 9골 7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신인왕 상을 당당하게 거머쥔다. 조광래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떠나고, 김귀화 대행 체제를 거쳐 최진한 감독 체제로 돌아선 뒤에도 그는 경남 미드필더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이적 논란[편집]

2011시즌에도 경남의 핵심으로 좋은 활약을 펼친 그는, 시즌 종료 후 리그에 태풍을 몰고 왔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에 차출되어 외국에 나가 있는 상태였고, 그도 알지 못한 채 성남 일화 천마와의 이적 협상이 진행되었던 것. 그 후 K리그와 윤빛가람의 이적을 빠르게 발표한 경남은 리그 팬뿐만 아니라 해외축구 팬들에게도 맹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이영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순간만큼은 K리그가 부끄럽습니다 라고 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였고, 이에 대한 논란이 너무 극심해 이적이 취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남 입장에선 1년 임대 후 이적을 제시한 레인저스 FC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적료도 성남으로 보내는 것에 비해 상당히 적은 액수여서 레인저스의 제의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성남은 원래 윤빛가람에게 현금만 주려고 했으나, 경남 측에서 조재철을 함께 주지 않으면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고심하던 성남은 결국 현금 20억 원에 조재철 이적을 포함한 초대형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그 뒤 조용히 지내던 윤빛가람은 2012년 1월, 성남과 계약을 마무리짓고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뛰기로 합의하였다.[1] 결과적으론 윤빛가람으로써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적 논란당시 영입을 추진했던 레인저스는 구단주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구단 재정에 위기가 왔고, 결국 레인저스에서 뛰던 사커루 출신 미드필더 매트 맥케이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기까지 했다. 윤빛가람으로써는 레인저스에 갔다면 위기를 맞을 뻔했지만, 성남으로 이적하면서 돈 걱정은 안하면서 뛰니 오히려 잘된 입장일듯?


성남 이적 이후[편집]

이처럼 성남 입장에서는 천신만고 끝에 데려온게 윤빛가람인데.. 2012시즌, 윤빛가람은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성남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설상가상 성남의 성적도 최악인 상태. 특히 6월 말 對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0:3 참패를 당한 경기에서 백태클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해 팀의 캐미스트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특히 퇴장받은뒤 실실 웃으면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 성남 팬들의 격노의 대상이 되었다. 실력이 안되서 못하면 욕이라도 덜 먹었을꺼다. 뛰는것도 대충 설렁설렁 뛰고 아예 축구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결국 2013시즌 내내 팬들에게 비판을 당하던 윤빛가람은 2013시즌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SK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성남은 경남에서 데려올 당시 지불했던 20억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SK에 윤을 팔았다는듯..;

SK의 박경훈 감독은 U-17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윤빛가람을 조련해왔던터라 윤을 부활시킬 수 있을것이라 장담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2013시즌 SK에서 주전급으로 대우받으며 경기에 나섰으나 기대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는 평이 많다.. 14시즌에는 작년보다는 나아졌다는 평을 듣고있으며, K리그 올스타 후보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짧은 드리블로 상대를 제친 후 좌우로 낮게 뿌려주는 패스를 즐긴다. 나이답지 않게 시야도 넓은 선수.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떠난 이후 구심점을 잃었는지 11시즌엔 경고가 무려 10배나 증가하였다. 여기에 윤일록과 함께 최진한 감독이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기고만장해 있다는 팬들의 의견도 있을 정도.. 전반적으로 데뷔시즌과 비교해 2년차에는 공격 포인트는 하나 줄었고, 팀 플레이 측면에서는 오히려 저하된 모습을 보여 그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생겨났다. 단 루시오와의 콤비 플레이는 일품이었다는 평. 그리고 성남 시절부터는 단점은 부각되고, 장점은 거론되지 못하며 호된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비판보다는 장점을 칭찬해주고 보듬어주었을 때 자기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는 선수인지라 이런 팬들의 비판은 오히려 윤선수의 부진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평도 있다.


에피소드[편집]

  • 프로 입단 당시 중앙대는 윤빛가람을 보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는 기어이 프로행을 감행, 그 뒤 대학교 재학생은 드래프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소위 윤빛가람룰.
  • 성남으로 이적 과정에서, 성남의 궁전에서 지시한 이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 리그를 좀 본 사람이라면 20억에 조재철을 얹어 주는 트레이드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알 수 있을 듯. 그리고 시원하게 망했다.


별명[편집]

귀엽고, 뽀로로를 닮았다고 하여 소녀팬들이 윤뽀로로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던바 있으며, 국가대표팀 경기에 처음 나섰을 때, 유니폼 등에 새겨진 영문 철자가 BITGARAM이어서 생긴 윤비트라는 별명도 있다. 대체로 후자의 별명이 즐겨 쓰인다.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성남 입단과 관련해 난 유럽으로 가고싶다! 라고 징징댄 윤빛가람에 대해서 성남팬 및 스탭진도 가히 기분이 좋지는않은듯.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때 김도훈 코치는 (윤빛가람이) 성남에 오면 각오해야할 것이라는 농을 던졌고, 아마 이 농은 현실이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