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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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절 유병수

유병수(1988년 3월 26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공격수이다.


프로필[편집]

  • 성명: 유병수
  • 출생일 : 1988년 3월 26일
  • 국가대표 경력
2009년 ~ 2011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 대표
(통산 A매치 3경기 출장)
  • 신체 : 183cm / 75kg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2009 34 19 14 4 7 0
2010 31 9 22 0 4 0
2011 13 6 4 2 3 0
통산 (K리그) - 78 34 40 6 14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1년 8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대구신암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한 유병수는 이후 대구청구중학교, 수서중학교에 이어 서울둔천중학교에 입학,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매경기 1골씩 넣는 공격 재능을 과시하였다. 둔천중 3학년이었던 2003년, 1992년 K리그 득점왕 출신이자 당시 대신고등학교 코치였던 임근재 감독이 유병수를 유심히 지켜보고 대신고로 스카우트하여 골 넣는 노하우를 전수하였고, 발리슛으로 골을 적게 넣는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사는 '아이스크림 내기' 등을 통해 유병수의 골감각을 키워주는데 일조하였다. 이후 임근재 코치가 대신고를 떠나 보인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하자, 유선수는 정종선 감독이 지휘하는 언남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리고 언남고에서 유병수는 자신의 기량을 대폭발 시킨다. 2005년 백록기고교축구대회에 출전해 해트트릭 2회 포함 무려 12골을 쏟아부으면서 득점왕과 대회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하는 활약을 보였다.[1] 이듬해인 2006년 다시 백록기에 서게된 유병수는 6골을 기록하면서 2년 연속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도움왕에도 오르며 2관왕을 석권하였다. 또한 백록기대회에서만 개인통산 18골을 기록하며, 대회 사상 개인 최다 득점자에 오르는 기록도 세웠다. 이런 활약을 눈여겨 본 U-20 대표팀에 몇번 불려가면서 이청용, 기성용, 이상호 등과 한솥밥을 먹기도 하였다.

언남고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로 진학한 유병수는 2차례 피로골절로 인해 청소년대표에서도 낙마하고 긴 재활 기간을 거치다 2학년이던 2008년 9월 추계1,2학년대학축구대회에서 도움왕에 오르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대학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2골을 넣는 등 맹활약, 6골을 기록해 대회 득점왕에 오른 뒤, 2009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2] 하지만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 겪었던 무릎 부상으로 인해 프로팀 스카우터들은 유선수를 대학 최대어로 평가하지 않았다. 능력은 좋은데 부상 위험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 덕분에(?) 당시 강원 FC는 드래프트장에서 16명을 우선지명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에도 유병수 선수를 지명하지 않았다.[3]


K리그[편집]

2009년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2009년 K리그 개막 경기에서 對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자신의 리그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터뜨린 유병수 선수는, 데뷔 시즌에만 14골을 쓸어담으며 K리그 판도를 발칵 뒤집었다. 예년같으면 이견의 여지없는 K리그 신인왕 수상자였을 것이나, 유독 대어급 신인(?)이 즐비했던 2009시즌 괴물 김영후 선수에게 밀리며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2010시즌에도 2년차 징크스도 없이 22골을 성공시키며 K리그 득점왕 수상하였으며 국가대표에도 승선하는 등, 유병수 선수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10년 4월 18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혼자 4골을 쓸어넣는 활약을 보였는데, 이는 2003시즌 울산 현대도도 선수가 광주 상무를 상대로 4골을 기록한 이래 7년만의 기록이다. 인천 선수로서 한경기 첫 4골을 기록한 선수도 유병수가 처음이다. 역대 5번째 20골 득점왕, 역대 최연소 20골 득점, 최연소 토종 득점왕, 역대 최고 경기당 득점왕 (0.79골) 등 K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중. 또한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이 진행한 '2010 선수들의 선택, Player's Choice' 설문조사에서 광주를 제외한 K리그 14팀의 선수들로부터 26.6%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였다.

워낙 지난 2년간 활약도가 출중했기 때문인지 2011시즌에는 약간 득점 페이스가 주춤하자, 언론으로부터 슬럼프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했다. 문제는 저런 기자들의 개드립에 선수 본인이 압박감을 느낄수록 플레이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것. 여기에 2011년 터진 K리그 승부조작에 유병수도 연관된것 아니냐는 괴소문이 돌아 유선수를 마인드적으로 더욱 괴롭혔다. 결국 유선수는 해외 진출을 모색한 끝에 2011년 7월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FC와 3년계약을 맺고 이적료 150만 유로 (한화 약 23억원)에 중동행을 결정지었다.


국가대표[편집]

2010시즌 K리그에서 맹활약을 보였던 유병수 선수였기에, 국가대표 발탁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병수는 아시안컵을 대비하는 조광래호에서 발탁, 아시안컵 예선전 엔트리에 참가하게 되었다. 친선 경기에서 교체출장하며, 지동원의 A매치 데뷔골을 어시스트 했던 유병수는 박주영의 부상으로 비어있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자리에 중용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對 호주전에서 조광래감독은 후반 20분 지동원 대신 유병수를 투입하였으나 24분 뒤인 후반 44분 다시 유병수를 빼고 윤빛가람을 투입시키며 교체해 들어간 선수를 교체로 빼버리는 굴욕을 선사했다.[4]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였던 유병수와 조광래호의 제로톱 전술은 상성이 맞지 않았던 것. 이후 싸이월드에 올린 글이 본의 아니게 커져버리면서 '항명파동'이 되어버렸고, 조광래 감독은 이후 유병수를 더이상 쓰지 않았다.[5]


알힐랄 입단 후 행보[편집]

오프 시즌에 절정의 골감각을 선보이며 활약한 유병수는 리그 초반 알 힐랄에서 투톱으로 활약하였으나, 부상 이후 모로코 국가대표인 유스프 엘 아라피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기며 다소 주춤했었다. 하지만 사우디 크라운 프린스컵에서 활약하면서 차츰 출전 시간을 늘렸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유스프 엘 아라피가 차출된 사이 원톱으로서 주전자리를 되찾으며 활약하였다. 결국 사우디 크라운 프린스컵에서 알 힐랄의 5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자신도 4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2012년 4월 5일 UAE의 알 샤밥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ACL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ACL 16강전에서 혼자 4골 1AS를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팀을 8강에 올려놓았으며, 33경기 16골 8AS라는 기록으로 사우디 진출 첫 해를 마감하였다.

2012/13시즌에는 야세르 알 카타니가 UAE의 알 아인에서 임대 복귀하고 새로 영입된 웨슬리가 맹 활약하면서 선발 출전 기회가 많이 줄어들고 교체로 출전하는 빈도가 늘었음에도 꾸준히 골을 기록하며 리그 중반을 지난 현재 리그에서 17경기 10골을 기록하며 사우디 리그 첫 두자리 득점을 기록하였다. 또한 리그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면서 인천에서 세웠던 자신의 리그 연속 골 기록과 타이를 기록했다. 또한 사우디 왕세자컵에서 1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6년 연속 우승을 도왔다. 시즌 종료 후 약 90만 유로의 이적료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FK 로스토프로 이적하였다.


로스토프 이적과 그 이후[편집]

로스토프 입단 이후 연습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를 받았지만, 부상과 동일 포지션 경쟁자의 맹활약으로 인해 출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3년 8월 20일, 리그 5라운드 FK 볼가와의 경기에서 81분경 교체 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렀고, 투입 7분 뒤인 88분 득점에 성공하며 데뷔골까지 기록하였다. 하지만 13/14시즌 조커로 출장하며 17경기 출장 2골을 기록한 것을 끝으로, 2군으로 추락하며 겉잡을 수 없는 하락세를 보였으며 결국 3시즌동안 로스토프에서 28경기 출장 3골에 그친채 퇴단하였다. 로스토프를 떠난 뒤에는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K3 어드밴스 팀인 김포 시민축구단에 입단한 뒤 공익근무요원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상 및 업적[편집]

  • 대한민국 대한민국
K리그 득점왕 (2010)
  •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 아라비아
사우디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 및 득점왕 수상 (2011/2012)
사우디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 (2012/2013)


플레이 스타일[편집]

  • 상당히 터프하며 볼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하다. 자기에게 들어온 볼은 왠간해서는 자기가 해결을 보려는 스타일. 나쁘게 보면 오만한 플레이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공격수라면 응당 그 정도의 집착과 위압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K리그 플레이어 중 유병수 선수와 가장 비슷한 선수를 꼽으라면 노상래 선수를 개인적으로 꼽겠다.
  • 셋피스 상황에서 기민한 움직임으로 헤딩을 잘 따내는 스타일이다. 또한 왼발 오른발 모두 슈팅에 능하며, 프리킥 능력도 지니고 있다. 순간적인 드리볼 능력도 뛰어나고 움직임이 좋아 PK를 많이 얻어낸다. 다만 역습을 즐겨 하는 팀의 특성상 공격에서의 움직임이 무척 절제되어 있는 편이고, 수비가담이 부족하고 움직이는 폭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포지션은 원톱에서의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둘다 가능하다.
  • 인천 유나이티드가 얻는 PK는 거의다 유병수가 전담한다. 때문에, PK를 몰아주어 만들어진 득점왕이란 소리도 듣고 있으나, 올시즌 (2010시즌) PK 골이 3골이므로 (얻어낸 PK는 5개) 그 3골을 제외한다 해도 여전히 2010시즌 K리그 득점 1위다.
  • 사우디에서는 원톱으로 뛰면서 강한 피지컬과 균형 감각을 무기로 삼아 수비와 경합하며 공중볼을 따내고, 순간적으로 치고나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거나 드리볼로 상대를 제치는 등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K리그에 있을 때보다 2선내지 3선까지 내려오는 빈도도 크게 늘어났고, 활동폭도 늘어난 편. 여기에 패스도 꽤 날카로워 졌다. 다만 유효 슈팅이 많이 줄어든 편이고, 가끔 날리는 슈팅도 골대를 자주 맞추는 등 아쉬움을 사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 본래 2009년 9월,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해 對 오만과의 경기에 출전해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이 경기가 A매치로 인정되지 않아 비공식 데뷔전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후, 2010년 10월, 한일전에서 교체 투입되며 정식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 자신이 데뷔한 09시즌 부산과의 첫경기에서 먼 프리킥 찬스에서 환상적인 무회전 프리킥을 시전한 이후 별명이 '월미도 호날두'가 되었다. 이 별명은 해외에서도 불리고 있으며, 알 힐랄 경기때 해설자가 '월미도 호날두'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첫 별명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정말. 맨시티와의 친선경기때도 영어 해설자가 '월미도 로날도'라고 소개했다. 세계에 월미도를 알리고 있는 진정한 월미도 홍보대사 유병수.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트위터 (2012년부터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참고[편집]

  1. 언남고는 이 대회에서 박현범이 이끄는 금호고등학교에게 4강에서 패배하여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유병수는 이 대회를 통해 강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2. 당시 홍익대학교에 유병수와 같이 재학 중이었던 선수는 한지호, 김성준, 김보경, 김원식 등이 있었다.
  3. 당시 최순호 감독은 자신의 애제자 격인 울산현대미포조선 출신 선수들을 지명하는데 4장을 사용했고, 나머지 12장은 대학 선수들을 뽑는데 사용했는데 모두 미드필더와 수비수, 골키퍼를 지명하는데 12장을 사용했다.
  4. 조광래와 더불어 박종환 감독이 이런일을 잘했다. 당연히 교체 IN했다 OUT 당한 선수는 여간해서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5. 2011년 10월 현재, 유병수와 비슷하게 국대에서 부름을 받지 못한 이동국이 다시 국가대표로 불렸지만, 성공이랑 거리가 먼 결과를 가져온 탓에 조광래 감독 체제 하에서 유병수가 다시 부름을 받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