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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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의 주장이다.

프로필

이름 : 박진섭

생년월일 : 77년 3월 11일생 (34세)

포지션 : DF (오른쪽 풀백)

소속팀 변천사 : 고려대 -> 상무 -> 울산 현대 -> 성남 일화 천마 -> 부산 아이파크

국가대표 경력 : 35경기 5골 (98년 11월 A매치 데뷔, 2000년 2004년 AFC 아시안컵 대표)

K리그 경력 : 259경기 3골 25도움

설명

현재 부산 아이파크의 주장 겸 오른쪽 풀백를 맡고 있는 선수.

1. 청소년대표시절

배재고 재학 시절, 일찌감치 청소년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개인 기량이 뛰어났다.

96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스위퍼로 출전. 세트피스에서 공격 가담 능력이 뛰어났고 활동량도 좋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96 아시아청소년선수권이 한국에서 치루어졌고 이 대회를 한국 청소년대표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전승 18득 3실)하면서, 박진섭을 비롯해 77년 78년 생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았다.

(참고 : 이관우 양현정 안효연 정유석 서기복 심재원 등이 이 때 스타가 된 선수들이다.)

2. 세계 대회에서의 좌절

곧바로 이어진 97년 말레이시아 세계청소년월드컵. 여기서도 박진섭은 본선 3경기 모두 출장하게 된다.

결과는 알다시피 대참패 지금도 쿠칭 쇼크로 회자되는 그 대회다. 그나마 박진섭 선수는 프랑스 전에서 2골을
몰아쳐 체면치레했고 덕분에 심재원과 함께 98년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었다.

(참고: 기대를 모았던 서기복 정유석 김도균 안효연 등은 97 쿠칭 쇼크로 인해 아시안게임 엔트리서 제외되었다.)

(참고 2 : 이즈음에, 박진섭 선수는 스위퍼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 체인징을 하게된다. 포지션 이해도가 높았고 개인기가
뛰어났던 박진섭 선수였기에 포지션 체인징은 성공적이었고, 덕분에 송종국 등장 이전까지 오른쪽 풀백에서 박진섭만큼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없었다. 그만큼 박진섭의 가치가 높아졌음은 물론이고.)

3. 유럽진출 선언과 상무 입대

98년 아시안게임에서 첫 A매치 출장한 이후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던 박진섭은 당시만 해도 고려대 재학생이었다.
많은 K리그 팀들이 드래프트에서 박진섭을 최우선 지명 대상으로 놓았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K리그 보다 유럽행을 원했던 박진섭은 당시 김도균 최용수 웨스트햄 입단 떡밥이 터졌을때, 덩달아 해외진출을 선언했었다.
당연하게도 박진섭 선수는 A매치 출전 경력이 모자랐으므로 워크퍼밋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김도균도 마찬가지)

결국 유럽행 선언은 없던 일이 되었고 당시는 실업축구에서 뛰고 있었던 상무에 입대하게 된다.

4. 울산 입단 후

상무 시절에도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로 불려다니며 꾸준히 A매치를 소화하던 박진섭은
(히딩크로 넘어오면서 박진섭은 팽당하긴 했으나 한 때 좌영표 우진섭 ㅎㄷㄷ은 한국축구의 트렌드였다.)
2002년 제대와 함께 울산 현대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했다.

당시 울산은 박진섭에게 계약금만 3억을 책정하면서,화제가 되었다.
(참고 : 이천수 현영민 전재운 등 2002년 울산이 지른 신인의 퀼리티가 워낙 좋았다.)

기대를 모은대로 울산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 2004년 아시안컵 대표로 발탁, 선발로 활약하기도 했다.

(참고 : 이 대회에서 박진섭은 네팔전에 출전. 대한민국 축구 A매치 사상 1경기 최다골 (15골) 득점중
5골을 혼자 집어넣으며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5. 성남 시절

2005년 시즌 도중 박진섭의 성남 행이 확정되었다. 이적료는 계약금 포함 10억.
연달아 터졌던 김두현 성남행과 함께 K리그 판도를 뒤흔드는 이적이었다.

(참고: 2005년 당시에는 문선명의 지름신 강림 정도로 풀이되었으나, 이 둘은 06 시즌부터 성남의 황금기를 열어젖혀버렸다.)

성남에 입단하자마자 성남 플랫 4의 한축을 차지해버린 박진섭 선수는 그후 4년동안
성남의 영광을 지탱하며 수많은 영예와 호사는 다 얻었다.

6. 부산 입단 후

2008년 시즌이 끝나고 신태용 감독 대행이 들어서면서,
박진섭 김상식 김영철은 개혁의 철퇴를 맞고 뿔뿔이 흩어졌다.

박진섭은 본래 대구행에 관심을 보였으나, 막판에 부산이 거액을 제시하면서 부산에 입단하였다

부산에서 리그 경기 대부분을 소화했으나, 활동량은 성남 시절에 비해 많이 처지는 편이었다.
그래도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무난한 활약을 보여줬고

2010시즌 새 주장으로 선임되면서 여전히 황감독 플랜에 핵심 선수임을 입증했다.

7. 향후 전망

어차피 박진섭 선수를 대체할 오른쪽 풀백 자원도 없다.

있다고 한다면 김창수 뿐인데 김창수 선수는 왼쪽에서 뛰는게 더 급하다.
아마 올시즌도 상당 경기를 소화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덧 34세.
현재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아보이나 내년 시즌이 오기전까지 대체자를 찾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