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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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표 시절의 전재운

전재운 (1981년 3월 18일~ )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축구선수였다. 2011년 승부조작 사건에서 브로커 노릇을 한것이 적발되어 복귀 허용 절대 불가, 전원 선수 및 지도자 자격 영구 박탈 징계를 받고 K리그에서 퇴출되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전재운
  • 출생일 : 1981년 3월 18일
  • 신체 : 178cm / 70kg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 대표
  • 현 소속팀 : 축구계 영구제명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울산 현대 호랑이 2002 22 14 3 3 2 0
2003 26 23 2 4 3 0
2004 20 16 1 2 4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 10 9 1 2 1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5 10 6 0 1 1 0
2006 4 3 1 0 2 0
SK 유나이티드 2007 23 11 3 2 4 0
2008 26 18 2 2 6 0
2009 17 17 0 0 1 0
통산 (K리그) - 158 66 13 16 24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시즌 종료시점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시절[편집]

강릉상업고등학교 시절, 전재운은 1999년 금강대기 전국 축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MVP에 선정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재운은 울산대학교에 입학하였고, U-20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히는 등 승승장구 하였다.


K리그 시절[편집]

전재운은 2002년 울산대학교를 후원하는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입단 첫해부터 전재운은 주전자리를 꿰찼고[1], 2002년 22경기에 출전한데 이어 2003년 26경기를 출전하였다. 비록 공격포인트를 많이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탁월한 축구 시야를 바탕으로 동료들에게 정확히 볼을 배급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전재운은 이런 활약을 발판삼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에도 뽑히는등 꾸준한 발전을 이루었다.[2] 그러다 2005년 시즌을 앞두고 K리그 2연패에 이어 아시아 정복의 야망을 가지고 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영입제의로 수원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당시 울산은 전재운을 넘기는 댓가로 이종민 선수를 받아왔다.


  • 이종민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전재운 (울산 현대 호랑이)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수원에 입단한 전재운이었지만, 부상으로 컵대회 두 경기만 소화한 채 장기간 결장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어찌어찌하여 부상에서 회복되었지만, 당시 김남일, 김대의 등이 버티고 있던 수원의 허리라인에 전재운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던듯. 결국 간간히 로테이션 자원으로만 경기에 출전하며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나마 전재운이 수원에서 이름값을 한 경기는 6월 14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원정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전재운은 프리킥으로 시즌 첫 골을 기록했고, 도움 2개를 추가하면서 팀의 4-3 승리를 이끌며[3] 붕괴된 미들진의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자리잡는 듯 했다. 그런데... 여기서 엄청난(?) 사건이 터진다.


  • 전재운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손정탁 (전북 현대 모터스)


바로 전설의 트레이드가 터진 것이었다. 당시 전북은 최강희 감독의 부임 후, 리빌딩을 시작하면서 전재운 영입을 천명하였고 차범근은 장신의 타겟 스트라이커를 원했다. 결국 양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트레이드가 성립되었는데 하필 트레이드 상대가 손정탁 이었다. 하필이라니 이런 불충한.. 전북으로 트레이드된 전재운은 주전자리를 꿰찼고, 후반기 10경기에 출전하여 1도움을 기록하였다. 반면 손정탁은 입단하자마자 전설적인 몸놀림과 골 결정력을 보여주어 수원팬들에게 레전드 칭호를 받았....[4] 하지만, 이듬해 전재운은 시즌 초 다리 근육 부상을 당해 또다시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마침 기량이 올라갈 무렵에 얻은 부상이라 더욱 아쉬웠던듯. 여기다 기껏 재활하고 돌아왔더니 전북 미드필더진에는 염기훈, 김형범, 권집이 버티고 있었고, 전재운은 이들과의 주전경쟁에서 낙오하고 말았다. 결국 2007년 전재운은 SK 유나이티드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SK 입단 후, 전재운은 즉시 전력감으로 분류되었다. 전선수와 함께 데려온 추운기가 잉여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안 전재운은 허리에서 볼배급을 맡으면서 SK의 선전을 이끌었다. 2007년 23경기 3골 2도움을 기록한 전재운은 2008년 26경기 2골 2도움, 2009년에는 부상으로 신음했음에도 불구하고 17경기에 출전하며 출장 기록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하지만, 2009년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이 떠나고 박경훈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력외 판정을 받았고, 이에 발끈한 전재운은 홀연히 SK 유나이티드를 퇴단, 안효연과 함께 싱가폴로 건너갔다. 2010년 싱가폴 리그의 홈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전재운은 올스타에도 뽑히는 등 선전하였으나, 2010년 시즌 종료후 방출되었다.

이렇게까지만 봐도 평범하지 않는 축구선수 생활인데, 말년에 사고를 아주 제대로 쳤다. 2011년 승부조작의 소용돌이가 K리그를 휘감았고, 전재운은 여기에서 선수가 아닌 승부조작 브로커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결국 K리그 연맹대한축구협회는 전재운에게 복귀 허용 절대 불가, 전원 선수 및 지도자 자격 영구 박탈 징계를 내렸고, 전재운은 K리그에서 영구퇴출되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탁월한 경기 시야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패스센스가 많이 뛰어났다. SK시절에는 홀딩 능력에도 재능을 보여주었던 선수였는데.... 조작때문에 그냥 망했어요


에피소드[편집]

  • 손정탁의 트레이드 상대로 회자가 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 2009년 전재운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혐의로 불구속 입건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역시 될성부를 떡잎이었다.. 어째 모선수가 떠오르기도.. 결국 이로 인해서 박경훈 감독의 눈밖에 났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조[편집]

  1. 당시 울산 김정남 감독은 "영리하고 슛과 드리볼이 뛰어나다. 대담성만 있다면 대성할 것." 이란 평가를 내렸었다.
  2. 말레이지아 최고의 골키퍼 삼수리를 뚫고 골도 넣은 기록도 있다. 그러나 아테네 올림픽 본선 최종 명단에는 탈락.
  3. 0-2로 지고 있다가 뒤집은 경기라서 전재운의 활약이 더욱 빛을 발했다.
  4. 2005년 후반기 수원이 GS와의 홈경기에서 0:3으로 완패하자, 차범근 감독의 청문회를 열었고, 여기에서 이 트레이드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