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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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화 (1955년 5월 7일 ~ 현재)는 대한민국수비수 출신 감독이다.

동명이인의 존재로 풋케위키 문서명은 박성화1로 한다.

프로필

선수 프로필

  • 성명 : 박성화
  • 등록명 : 박성화
  • 출생일 : 1955년 5월 7일
  • 신체조건 : 178cm / 72kg[1]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국가대표 기록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8년 FIFA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80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82년 FIFA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8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75년 ~ 198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A매치 103경기 출장 26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할렐루야 축구단 1983 14 2 3 1 0 0
1984 23 2 6 2 0 0
포항제철 아톰즈 1986 29 3 0 1 0 0
1987 16 10 0 0 0 0
통산 (K리그) - 82 17 9 4 0 0
K리그 기록은 리그컵 포함. 2014년 12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

  • 지도자 경력
연도 경력
1988 ~ 1989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감독
1989 ~ 1991 현대 호랑이 코치
1992 ~ 1994 유공 코끼리
1996 ~ 2000 포항 스틸러스 감독
2001 ~ 2005 대한민국 20세 이하 대표팀
2003 ~ 200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코치
2007.7 ~ 2007.8 부산 아이파크 [2] 감독
2007 ~ 2008 대한민국 23세 이하 대표팀
2010 ~ 2011 다롄 스더
2011 ~ 2013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
2015 경남 FC
  • 감독 기록



선수 시절

유소년 생활

울산광역시 출신으로 부산 동래고등학교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고려대학교에서는 최종덕, 김강남, 김성남 선수와 동기 생활을 하며 4선수가 나란히 국가대표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한바 있다.


성인 무대

1978년 당시 실업축구단이었던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성인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80년에는 육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다. K리그 창설 원년인 1983년 할렐루야 독수리 소속으로 리그 원년 우승에 크게 공헌한 뒤 1987년까지 활약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힘이 좋은데다 제공권 장악에 능했기 때문에, 수비는 물론 공격 면에서도 많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선수이다. 이로 인해 때때로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되기도 하였을 정도.[3] 더군다나 잔부상이 없는 체질과 기복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활약하였다. 선수 시절만 놓고보면 197,8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정도. 그런데..


지도자 시절

포철공고 시절

현대 호랑이, 유공 코끼리 시절

포항 스틸러스 시절

대표팀 코치

부산 아이파크 시절

2007년 7월 18일, 부산 아이파크의 다른 의미로 전설적인 앤디 에글리 감독이 성적 부진의 이유로 사퇴한 뒤 공석으로 놓였된 부산 아이파크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보름도 채 되지 않아 2007년 8월 3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직을 사임하고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버렸다! 이에 부산 서포터즈들은 항의 성명을 내었고, 축구팬들도 K리그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비판에 동조하였지만 이 사태는 유야무야 잊혀져버렸다. 박성화 씨가 부산 감독으로 선임된 기간은 약 17일이었으며, 실상 활동한 기간은 2주도 채우지 못했다.[4]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그 이후

경남 FC

지도 스타일

에피소드

  • 선수 시절, 동계 전지훈련지 훈련 숙소 근처 쌀집 아저씨와 차림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쌀장수'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쌀집 아저씨랑 비슷하다는 이유 뿐만 아니라, 워낙 힘이 좋은 선수였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은 거였다고..


업적 및 수상

국가대표팀

클럽

개인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1. 선수 시절 측정 기록이다.
  2. 경력으로 기록하기도 민망하다....
  3. 최전방 공격수 플레이는 오늘날로 치면 타겟 스트라이커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동료 선수들에게 볼을 떨궈주는 능력이 좋았다고..
  4. 하지만 그 짧은 재임 기간동안 FA컵에서 대전 시티즌을 2:0으로 잡아내는데 성공해, 부산에서의 감독 전적은 통산 1경기 1승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승률 100% 감독이라는 조롱섞인 별명이 생기기도..대전 시티즌김호감독도 이 경기가 부임후 첫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