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나디
겐나디 스툐푸시킨(Gennadi Styopushkin, 1964년 6월 20일 ~ )는 러시아 국적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5년부터 199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스위퍼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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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입단 이전[편집]
구소련 2부리그에서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던 선수로 1994시즌 이스라엘의 마카이 야파 FC와 독일 2부리그의 빌레벨트 AC를 거쳐 1995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였었다. 당시 러시아의 노장 수비수로 그다지 기대를 모으진 못했으나, 박종환 감독은 겐나디 선수를 두고 당시 일화 천마의 주전 스위퍼였던 이종화 선수보다 낫다고 높이 평가했었다.
K리그[편집]
그렇게 박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입단한 겐나디 선수는 이종화 선수와 번갈아가며 또는 함께 호흡을 맞추며 한국 축구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터프한 몸싸움과 태클이 주를 이루던 한국 축구 스타일에 금새 적응하며 일화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특히 1995년 12월,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격인 제 15회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에서는 일화 천마를 우승으로 이끄는데 공헌하며 수비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후 2년차가 된 1996년 시즌에는 경쟁상대였던 이종화 선수를 주전경쟁에서 밀어내고 붙박이 일화 스위퍼로 활약하게 되는데, 당시 안익수 - 이영진 - 겐나디로 이어지는 플랫 3 라인은 K리그 역대를 통틀어도 맟수가 거의 없는 철벽같은 수비진이었다. 그걸 이겨내도 그 다음으로 k리그의 전설적인 골키퍼 발레리 샤리체프가 막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 득점 할 수 없는 최고의 수비진이었다.
그러나, 1996년 시즌 도중 겐나디를 총애하던 박종환 감독이 사임하고 이장수 감독을 거쳐 레네 드자이에르가 1997년 시즌을 앞두고 부임하면서 겐나디 선수의 운명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게 된다. 레네는 겐나디 선수를 자신과 맞지 않는 선수라고 생각해 결국 그를 안양 LG 치타스로 현금 트레이드했다. 겐나디를 쫒아낸 레네는 아프리카 국적의 선수를 영입했지만 모두 부진에 빠졌고 그는 그 당시 시즌을 망친 뒤에 경질되었다. 일화에서 쫒겨난 겐나디도 자신의 2번째 K리그 팀이었던 안양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방출되고 말았다. 박감독의 수비전술에 특화된 선수였던 겐나디에게 당시 안양의 수비는 꿈도 희망도 없는 수준이었고, 당시 겐나디의 나이도 32세로 기량 저하가 시작되던터라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할 요령도 부족했었던듯. 결국 3년여만에 한국과의 인연을 정리하였다.
근황[편집]
현재는 러시아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으며, 러시아 3부리그격인 Russian Second Division에서 FC Metallurg Lipetsk 란 팀의 감독직을 2011년까지 수행하였다. 2012년부터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팀인 FC 로스토프[1] 스카우터로 활동 중이다.
플레이스타일[편집]
일화 시절, 스위퍼로 최후방을 지킨 선수이다. 안정감이 뛰어나고 피지컬 능력이 좋기에 대인방어에서도 강점을 보였다고. 그러나 일화에 첫 입단했을 당시에도 서른을 넘긴 노장이라 체력적 문제와 스피드 면에서 약점을 노출하면서 위험 지역에서 파울 또한 잦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장난스런 성격답게 기행(?)에도 일가견이 있는지 1995-96시즌 아시안클럽챔피언십 결승전 알나스르와 경기에서는 수비 지역에서 라보나 킥을 하는 대범함을 선보였다 한다.[2] 경기는 1-0 일화의 우승.
에피소드[편집]
- 장난기가 심했다고 한다. 특히 구소련시절 군인팀에서 뛴 경력이 있는 양반이라 그런지 박종환 감독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박감독이 열받으면 근엄하게 분위기가 좋으면 가장 크게 웃는등 박감독에게 재롱(?)을 잘부렸다. 그런 재롱둥이(??) 겐나디가 싫지않았던 박종환 감독은 겐나디를 꽤 애착을 갖고 중용했다고 한다.
- 근데 같은 러시아어를 쓰는 동료 사이인 샤리체프는 성격이 근엄, 엄숙 그 자체라 겐나디의 가벼운 성격을 싫어했다고 한다. 때문에 티격태격했다는 후문.
K리그 경력[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