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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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칩을 먹는 권집

권집 (1984년 2월 13일생 ~ )은 독일 프로축구팀인 FC 쾰른에 유소년 선수로 입단했던 해외파 출신 유망주로, 김호의 아이들 중 한 명. 2003년 데뷔후 총 7팀을 거친 대표적인 저니맨 미드필더이다. 2011년 터진 승부조작 가담자로 축구계에서 제명되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권집
  • 생년월일 : 1984년 2월 13일
  • 신장 : 182cm / 75kg
  • 유소년 경력 : 동북중 → 동북고 → FC 쾰른 U-19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국가대표 경력
2001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
2002ㆍ2003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2004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
  • 현 소속팀 : 축구계 제명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파울 경고 퇴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 14 2 0 1 28 1 0
2004 3 1 0 0 5 0 0
전남 드래곤즈 2005 2 2 0 0 3 0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5 13 4 0 0 21 0 0
2006 18 4 2 1 36 5 0
2007 23 14 0 2 49 3 0
포항 스틸러스 2008 3 3 0 0 2 0 0
대전 시티즌 2008 13 4 0 0 15 4 0
2009 26 11 0 1 33 5 0
2010 25 11 1 3 36 4 0
통산 (K리그) - 140 56 3 8 228 22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2년 7월 1일 기준.


설명[편집]

해외 유소년 신드롬[편집]

FC 쾰른 유스시절 권집

동북중 재학시절부터 U-17 주니어 국가대표 주장을 소화하는등, 될성부른 떡잎이란 평가를 받았다. 당시 포지션은 플레이메이커로 또래들보다 한차원 높은 축구를 구사했다는 평가. 이미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프로팀 입단 제의를 받을 정도 였다고 한다. 그러다 동북고 재학 중이던 2002년, 발목 부상을 당하자 권집 선수를 눈여겨보던 김호 당시 수원 감독은 권집 선수의 독일행을 주선했고, 재활차 독일에 갔다가 FC 쾰른의 입단 테스트를 받은 끝에 쾰른 유소년 팀 입단에 성공했다. [1] 당시 FC 쾰른의 유망주였던 포돌스키와 같은 대우를 받았던 권집 선수는, 2002년 이산 선수의 아시아나 CF 촬영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던 해외파 유소년 선수들에 대한 기대를 덩달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2년간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포돌스키는 리저브 A 계약을 맺으며 성인팀에 입단한 반면 권집 선수는 계약에 실패, 팀 동료였던 윤원일 선수와 나란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수원 입단 이후[편집]

2003년 권집 선수가 수원 입단할 당시, FC 쾰른은 수원 측에 4만달러의 권집 선수 이적료를 요구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김호 감독은 수원 운영진에 조속한 처리를 부탁해, 이적료를 지불하면서까지 권집 선수를 데려오길 원했다. 그만큼 김호 감독이 권집 선수에게 거는 기대는 자못 컸던 것. 이후 권집 선수는 K리그 데뷔 시즌 14경기를 출장하며 그 기대에 보답하는듯 했다. [2] 그러나 2003시즌 종료 후, 김호에 이어 수원의 지휘봉을 잡은 차범근의 등장과 김남일 영입으로, 권집 선수는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여기에 부상까지 겹치면서 2004시즌은 전력 외로 분류되어 첫번째 고비를 맟는다.


4개월동안 5번 팀이 바뀌다[편집]

2004시즌 종료 후, 차범근은 2004년 겨울 부산 아이콘스FA컵 우승을 진두지휘했던 안효연 선수의 영입을 추진했고, 부산의 포터필드 감독은 안효연 선수의 이적을 대가로 선수 트레이드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수원은 권집 + 고창현안효연 2:1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는데, 이 때 권집 선수와 부산 간 계약 협상이 실패하면서 부산은 권집 선수 대신에 5억원 + 고창현을 받는 댓가로 안효연 선수의 트레이드를 합의하고 말았다.


  • 고창현 + 5억 (부산 아이파크) ↔ 안효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처럼 붕떠버린 권선수를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이었던 조윤환이 원했다. 그는 권집 선수를 영입해 윤정환의 후계자로 키울 요량으로 전북 훈련에 참가시킨다.[3]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맺고 싶어하였으나, 일은 또 꼬여서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었던 허정무가 권집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수원에 먼저 이적료를 지불했고 결국 전북은 다된 밥에 재빠뜨리는 심정으로 권집 선수를 전남에 넘기게 된다. 당시 허정무 감독은 권집 선수를 고종수의 대체 자원으로 강력히 원했던 것. 그러나 허정무 감독은 권집 선수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전환을 요구 및 전술 스타일 적응 등을 요구하다 부조화를 일으켰다. 결국 권선수는 전남 입단 3개월 만에 또다시 매물로 나오게 되었으며, 이 때 전북 조윤환 감독은 또다시 권집 선수의 이적을 재차 추진한다. 그리고 전북이 2001년부터 유망주로 한참 공을 들였던 남궁도 선수를 전남에 넘기는 조건으로 권집 ↔ 남궁도 트레이드를 합의시켰다. 그야말로 삼고초려가 따로없었던 셈.


  • 권집 (전북 현대 모터스) ↔ 남궁도 (전남 드래곤즈)


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던, 권집 선수의 유랑은 2005년 4월 전북에 안착하면서 끝을 맺었다. 즉, 불과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권선수의 소속팀은 '수원 → 부산 → 전북 → 전남 → 전북'을 거치며 5차례나 바뀌었던 것이다.


전북에서의 시련[편집]

그러나 전북도 권집 선수에게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그토록 권집을 원했던 조윤환 감독은 권선수 입단 2달여 만에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함에 따라, 권집의 최대 지지 기반이 일거에 날아가버렸던 것. 여기에 조윤환 감독 후임으로 전북의 새사령탑을 맡은 최강희 감독은 권집 선수에게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 포워드 등의 포지션을 맡겼으나,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하지만 위의 시련을 절치부심하며 반전의 계기로 삼은 권집 선수는, 수비와 공격을 넘나드는 활동량과 벌크업을 이룬 끝에, 2006시즌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돌아와 전북의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일조하였다. 이어 당시 핌 베어백이 이끌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도 선발되면서, 천재 미드필더의 귀환으로 화제가 될 뻔도 했으나, FIFA 클럽 월드컵 개막 직전 발목 부상으로 3개월 가량을 결장하면서 국대 발탁도 무산되었고 2007시즌을 준비하는데 차질을 빚는 시련을 겪는다.

이후 2007시즌 권선수는 주로 2군에도 내려가는 등 부진한 시간을 보내다 동년 가을, 당시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리그 6강 플레이오프로 이끄는등 화려하게 재등장한 김호에게 돌아가고픈 마음에 무단으로 대전 시티즌과의 이적 논의를 진행하고 전북 측에 자신을 이적 명단에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적 기간이 아닌 시점에 임의로 타 팀과 이적 협상을 꾀한 권집은, 자신이 원했던 대전이 아닌 포항 스틸러스와의 트레이드 매물 조건으로 내보내지게된다. 이로 인해 벌어진 트레이드가 권집과 김정겸을 포항에 보내고 전북이 최태욱 김성근을 받는 2:2 트레이드였다.



짧은 포항 생활과 김호의 품으로[편집]

하지만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권집은 그곳에서도 그다지 중용을 받진 못했다. 당시 포항이 원했던 자원은 조성환황재원이 이탈한 공백을 메워줄 수비의 영입이 시급했던 것. 이즈음 대전의 김호 감독이 권집 선수의 이적을 문의했고, 포항 측은 지리한 협상 끝에 권집 선수를 현금 수억원에 팔기로 합의했다. 이 때가 2008년 5월. 그러나 막상 2008년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자, 대전 시티즌에 권집 선수를 영입할 이적 자금이 없다었고 이미 계약이 합의된 마당에 번복할 수는 없었던 터라 포항 스틸러스 측은 현금이 아니면 선수라도 달라고 요구, 결국 김형일 선수와 1:1 트레이드가 합의되고 말았다. 포항 입장에서는 권집을 내보내면서 위에서도 언급한 수비 누수를 메워줄 완벽한 카드를 얻어낸 트레이드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 김형일 (포항 스틸러스) ↔ 권집 (대전 시티즌)


파국[편집]

5년여만에 스승의 품으로 돌아온 권집 선수의 기쁨과 별개로, 대전 수비의 핵심이자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기대받았던 김형일을 뺏긴 대전팬들은 권집의 영입을 결코 곱게 볼리 없었다. 이이 권집은 앞으로 유럽이 부르지 않는한, K리그 대전 외 다른 팀으로의 이적은 없을 것이다. 라고 선언하며 팬들의 불만을 무마시켰는데.. 이후 3년동안 대전에서 활동한 뒤 FA로 풀리자 해외 진출을 선언, 2011시즌부터 중국 슈퍼리그텐진 테다에서 뛰게 되었다.[4] 계약은 1년 계약이라는듯. 그런데 2011년 7월, K리그 승부조작의 소용돌이가 권집을 덮쳤다. 대전 시절 승부조작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의혹으로 창원지검으로 출두를 명받은 것. 결국 권집은 대전 시절 3300만원을 받고 승부조작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이후 최종적으로 K리그 선수 및 지도자 자격을 상실당했고 텐진에서도 퇴출되며 축구인으로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경력[편집]

  • 2002 ~ 2003 : FC 쾰른 U-19 / 독일


같이 보기[편집]

  • 이호진 (권집 선수가 2004 U-20 대표일때, 권집 선수의 어시를 받아 對 독일전 결승골을 터뜨렸던 선수)


참고[편집]

  1. 당시 FC 쾰른에는 권집 선수 외에도 윤원일 선수가 유스팀에서 소속되어 있었던 점 등을 미루어 볼때, 아시아권 선수들을 전략적으로 영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김호 감독은 권집 선수의 FC 쾰른 입단 소식을 듣고는, K리그에서 1~2년 뛰고 갔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던바 있다.
  2. 권집 선수가 활약하던 시기는, 소위 김호의 아이들 신드롬이 절정기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권집 선수와 한살 터울이었던 조병국, 김두현, 조성환 선수는 수원의 주전이었고, 바로 직전해인 2002년에는 박건하, 조현두, 이운재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20세 미만의 수원 선수들로만 구성된 선발대가 중동으로 날아가 아시아 슈퍼컵을 우승하기도 하는 등 K리그에 센세이션을 불러오고 있었기에, 권집 선수처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대의 선수가 주전으로 뛰는게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었다.
  3. 이미 2004년 4월에도 이적료 6억에 전북이 권집을 영입하려 했던 전례가 있었다. 조윤환이 어지간히도 권집에게 빠졌던 모양
  4. 일단 K리그 다른 팀으로 이적은 안했으니 약속은 어느 정도 지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