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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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시절 신병호

신병호 (1977년 4월 26일~)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스트라이커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신병호
  • 출생일 : 1977년 4월 26일
  • 신체 : 177cm / 75kg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98년 ~ 200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경기 출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 14경기 출전 4득점)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2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7 6 1 0 1 0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26 8 8 1 0 0
2003 42 22 16 4 3 0
2004 21 14 3 2 3 0
2005 8 7 0 0 0 0
2006 경남 FC 경남 FC 26 21 5 0 3 0
2007 Teamlogo sk.png SK 유나이티드 14 12 0 0 1 0
2008 6 6 2 0 0 0
통산 K리그 150 96 35 7 1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8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9 대한민국 제주중학교 코치
2010 ~ 현재 감독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제주서초등학교, 제주중학교, 대기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주 출신의 프렌차이즈 스타이다. 대기고 시절, 전국체전에서 제주고교선발팀의 사상 첫 금메달 획득에 공헌한바 있다. 이 때의 활약을 계기로 건국대학교에 진학하였으며, 건국대 시절에는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에 참가하여 이동국 등과 함께 올대 스트라이커로 활동하였다. 특히 1999년 10월에는,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 對 중국 U-23 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올대 스타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는데..


해외진출 시도[편집]

올림픽대표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신선수를 두고, K리그 각 구단들의 제의가 이어졌으나 신선수는 2000년 드래프트 참가 거부를 선언하고 해외진출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J리그,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중국 갑리그까지 두드렸지만 해외진출은 여의치않았고 결국 요코하마 마리노스, 브라질 그레미우 등지를 떠돌며 연습생으로만 활동하다 1년 넘는 시간을 '무적 선수'로 허비해야 했다. 결국 2001년 6월 J2리그의 미토 홀리호크에 입단하여 29경기 출장 11골을 기록한 뒤 국내 복귀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울산과 전남 시절[편집]

2002년 자유계약으로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는데, 당시 울산은 신병호 선수와 계약금 3억원, 계약기간 5년, 연봉 4800만원 등 총 5억4000만원에 달하는 호조건으로 신선수를 영입하였다. 하지만 당시 신선수는 불어난 체중과 컨디션 저하 등으로 경기력 유지에 애를 먹는 상황이었고, 결국 6개월여만에 울산 현대를 떠나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이후 전남에서는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부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적 후 8골을 넣어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알렸다. 활약은 이듬해 2003년에도 이어졌는데, 신입 외국인 선수 이따마르의 맹활약과 더불어 신 선수도 이회택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에서 기량을 만개하였고, 42경기에 출전해 16득점 4도움을 올려 K리그 정상급 공격 자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2004년, 전남이 브라질 특급 모따를 영입하고, 이장수 신임 감독이 전남의 사령탑에 오르자 점차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이따마르는 방출 대상으로 여겨지면서도 기회마다 득점을 곧잘 성공시켜 시즌 11득점을 올리는 모습에 신 선수는 이들의 백업 자원 수준으로 밀려나게 되고 말았다. 이후 2005년까지 부진을 이어가고 말았다.


경남 시절과 현역 은퇴[편집]

결국, 2005년 부상과 부진으로 한 해 동안 불과 8경기 출전에 그치고 득점이나 도움도 올리지 못하는 미진한 모습에 전남에서 방출 대상자로 점차 여겨지게 되었고, 시즌 종료와 함께 전남을 퇴단하고 삼성 하우젠 K-리그 2006에 참가하는 신생팀 경남 FC의 창단 멤버로 박항서 감독을 따라[1] 산토스김도근 등의 선수와 함께 입단하였다.[2] 여기에 경남 측은 프로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이러한 기대는 신 선수에게도 이어져 창원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중국 슈퍼리그충칭 리판과의 친선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켜 이에 보답하기도 하였다.[3] 그러나 시즌 개막 후에는 신예 김진용의 쾌조의 컨디션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말았고, 신 선수는 경기력 측면에서 노련함을 더해준 모습으로 조연에 머물러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후 시즌 종료와 함께 연고이전 후 제주도 출신 선수 수집에 나선 SK 유나이티드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고 강민혁 선수와 함께 경남을 떠나 SK 유나이티드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8년까지 SK에 머물러 있었으나 급격히 기량 저하가 찾아와 2007년에는 무득점에 그쳤으며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2008년 시즌 초반 대구 FC와 경기에서 멀티골을 성공시켜 잠시 주목받기도 했으나, 이후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말았으며, 시즌 종료와 함께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문전 앞에서 번뜩이는 모습과 탄력이 좋아 신장에 비해 헤딩 능력도 준수한 편이었다. 여기에 측면 공격수까지 활용 가능한 장점이 있었으나, 경기력에 있어서 기복이 크다는 문제점과 꾸준함이 부족했던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지도자 생활[편집]

현역 은퇴 후, 2009년부터 제주중학교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2010년에는 감독으로 승격하였다고 한다.


에피소드[편집]

  • 2년 가까운 시간을 해외진출 시도로 낭비했음에도 불구, K리그로 돌아와 정상급 기량을 발휘하였던 선수이다. 여타 해외진출 시도 후 국내무대로 리턴했던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신선수의 기량이 얼마나 탁월했던 것인가 짐작이 가능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2000년 드래프트 거부를 하지않고 K리그로 곧바로 진출했다면 더 좋은 기량을 바탕으로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승선, 해외진출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짙게 남는 선수이기도 하다.
  • 신병호 선수에게도 나름의 흑역사가 있는데, 전남 소속이었던 2002년 9월 11일 對 전북 현대 모터스 전에서 혼전 상황 중 손으로 골을 넣고도 태연하게 골 세레머니를 펼친바 있다. 이후 전북 측의 항의로 비디오 판독 결과, 신선수의 손을 맞고 골이 들어가는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더욱 과열되었는데.. K리그 연맹 측은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유야무야 넘어가버려 욕을 득뿍 먹었던바 있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1.06 ~ 2001.12 일본 미토 홀리호크 J리그 디비전2
2002.01 ~ 2002.06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2002.07 ~ 2005.12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K리그
2006 경남 FC 경남 FC K리그
2007 ~ 2008 Teamlogo sk.png SK 유나이티드 K리그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