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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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윤상철(1965년 6월 14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88년부터 1997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공격수이다.

K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100골을 기록한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였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윤상철
  • 출생일 : 1965년 6월 14일
  • 신체 : 178cm / 73kg
  • 국가대표 기록
199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경기 출장)[1]
  • 현 소속팀 : 은퇴
  • 특이기록
K리그 대상 최초 3관왕 기록 (1993)
K리그 최초 개인통산 100골 돌파 선수
K리그 개인 통산 득점순위 7위 랭크
  • 수상기록 
대회명 수상 기록
K리그 우승 (1990)
K리그 컵대회 준우승 (1992, 1994)
K리그 감투상 1993
K리그 득점왕 1990, 1994
K리그 도움왕 1993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 1989, 1990, 1993, 1994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럭키금성 황소 럭키금성 황소 1988 18 6 4 1 0 0
1989 38 10 17 6 3 0
1990 30 4 12 2 0 0
LG 치타스 LG 치타스 1991 31 16 7 2 0 0
1992 34 22 7 2 2 0
1993 32 6 9 8 0 1
1994 34 6 24 1 3 0
1995 31 19 4 2 0 0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1996 33 21 14 4 1 0
1997 19 13 3 3 0 0
통산 (K리그) - 300 123 101 31 9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10월 1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 시절까지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윙어 였다고 한다.


프로 생활[편집]

1988년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권을 갖고있던 럭키금성 황소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당시 럭금 감독이었던 고재욱은 윤선수 주 포지션이 미드필더임에도, 대학시절 뛰어난 득점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기억하며 최전방으로 올려 전문적인 공격수 훈련을 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2년차인 1989년시즌부터는 17골을 기록하여 골잡이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득점왕에 올라 프로축구 최고의 공격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으며 10년동안 시즌 평균 10골을 넣는 괴물같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공격수로도 유명하다. 1990시즌 우승 후 LG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였기 때문. 야심차게 데려온 외국인 선수 영입이 전부 실패하였고, 핵심 선수들은 국가대표만 갔다오면 컨디션이 망가져서 돌아오곤해 LG 구단은 몇시즌간 최하위권을 맴돌며 좀처럼 순위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LG의 간판 공격수인 윤상철 선수는 늘 상대 수비수의 집중 견제를 받고 최전방에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은 잘만 넣었다. 문제는 윤상철 선수가 넣은 골 이상으로 LG가 먹히는 골이 더 많아서 으레 지거나 비겼다는거..

그후 1997년 시즌 9위로 최하위, 리그 총 18경기 중 팀 득점이 15점에 그치는 최악의 성적을 받아든 안양 LG 구단에서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하였다. 윤상철, 김판근 등의 노장선수들이 정리 대상이 되어 강제로 은퇴당했고, 게다가 구단에서 임의탈퇴까지 신청해 버려서 더이상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될 처지에 놓였다. 왜 임탈을 시켰냐하면, 팀내에서 괜히 딴 팀가서 안양에 비수꼽을까봐..[2] 이래놓고 FC GS는 레전드니 어쩌니하는걸 보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3] 임의탈퇴 신분이라 K리그에서 뛸수 없었지만, 선수생활을 더 하고싶었던 윤상철은 호주로 건너가 세미프로리그에서 2년간 뛰었고 이후 호주에서 선수생활을 정리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득점 감각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감각적인 스크린플레이 이후에 이어지는 날카로운 슈팅이 일품이었다. 체격이 큰편이 아니고 스피드도 빠른편이 아니었으나 문전앞에서의 골감각 하나는 최고였던 선수. 특히 원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로빙슛으로 득점을 성공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욕심을 너무 부리고 개인플레이가 과하다는 평도 많이 들었다. 어떻게든 자기가 해결하려 했던 습성탓에 날려먹은 기회도 많았던것. 하지만 당시 LG 팀사정이나 팀내 유일한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을 생각해보면 윤상철 선수의 골 욕심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에피소드[편집]

  •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동안 한팀에서만 뛰어온 K리그의 전설로 남을 선수. 하지만 K리그 암흑기였던 1990년대 초중반에 활약했고, 하필 K리그 르네상스기인 1998년 직전해에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정리한 탓에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지 않는 비운의 스타이기도 하다.
  • 윤상철 선수가 세간에 오르내리지 못한 이유는, 리그에서의 가공할만한 활약도에 비해 국가대표에서는 저조한 활약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소위 윤상철, 김현석, 신태용 등 리그에서는 환상적인 활약을 보이면서도 국대에서는 저조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을 가리켜 국내용 공격수라는 오명을 씌우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의 일이다.
  • 사실상 1990년대 초중반 LG 치타스와 안양을 먹여살린 선수였다. 당시 LG는 윤상철을 비롯해, 구상범, 이영진, 김판근, 서정원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93시즌 준우승을 제외하고는 늘 최하위를 맴돌았는데, 이는 윤선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밥먹듯 국가대표에 차출된 탓에 소속팀에 전념하기가 쉽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LG는 윤상철만 막으면 되는 팀 정도로 이미지가 박혔던 안습의 팀전력을 자랑했다..;
  • 1994년 11월 5일, 對 포항제철 아톰즈와의 경기에서 윤상철 선수는 해트트릭을 기록하지만, 하필 포철의 라데가 이날 4골을 집어넣은탓에 경기는 LG가 3:4로 패배하고 말았다. K리그 역사상 유이한 해트트릭을 성공하고도 소속팀이 패배한의 주인공이 바로 윤상철 선수이다. 나머지 한 명은 FC GS의 박주영. 2005시즌 광주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팀은 3:5로 패배했다.

선수 경력[편집]

  • 1998 : Marconi Stallions FC / 호주
  • 1999 : Newcastle Breakers / 호주


지도자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전까지는 윤상철 본인이 김현회 칼럼니스트의 요청으로 직접 회고한 A매치 기록인, 33경기 출장 2골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KFA 측이 공식 자료를 게재하면서 이렇게 A매치 출장 기록이 바뀌었다.
    참고링크 : [1]
  2. 사실 과거 LG 치타스는 딴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다가 연봉 문제등으로 쫒겨나는 선수들을 데려와 잘 써먹은 기억이 있다. 최순호가 대표적인 케이스. LG가 잘 써먹던 방법을 딴 팀들이 역으로 되갚아줄까봐 윤상철을 임의탈퇴로 내보내는 강수를 둔듯하다.
  3. 물론 신태용 등 다른 유수의 프렌차이즈 스타들이 선수 생활 황혼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당했던걸 생각해보면 난지도만 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신태용 등 다른 선수들은 임탈까지 당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신태용 등 유수의 선수들이 현재는 자기 소속팀으로 돌아가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지도자 생활을 착실히 밟아나가고 있는데 반해, 윤상철 씨는 아직도 고교 축구부 감독 신세를 못벗어나고 있으니 안타까움이 더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