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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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표 시절 최철우

최철우 (1977년 11월 30일 ~)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내셔널리그에서 활약했던 공격수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최철우
  • 출생일 : 1977년 11월 30일
  • 신체 : 185cm / 79kg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 본선 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통산 A매치 10경기 출장 2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2000 12 7 5 0 2 0
2001 8 8 0 0 0 0
포항 스틸러스 2002 27 21 4 1 0 0
2003 21 16 4 1 0 0
부천 SK 2004 5 5 0 1 0 0
2005 25 15 6 0 1 0
SK UTD 2006 24 13 4 1 3 0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2007 12 7 1 0 1 0
부산 아이파크 2008 9 7 0 0 2 0
울산현대미포조선 KNL 2009 21 18 7 1 0 0
통산 K리그 - 143 99 24 4 9 0
KNL - 21 18 7 1 0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2년 1월 1일 기준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12 ~ 2013 대동정산고 코치
2014 ~ 현재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 코치


유소년 생활[편집]

전라북도 부안군 출신으로, 전주 우전초등학교와 해성중학교, 전주공고를 거쳐 서울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려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99년, 시드니 올림픽대표에 발탁되었으며 99년 2월 시드니 올림픽대표의 기량 점검차 참가했던 베트남 던힐컵 결승전에서 최철우 선수가 중국 대표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시드니 올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이동국의 뒤를 받쳐주면서 대학권 최고 공격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프로 생활[편집]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0년 드래프트에 참가한 최선수를 두고, 이관우, 이영표 등과 함께 최대어로 꼽는 스카우터가 많았다. 결국 울산 현대 호랑이에 예상대로 1순위로 지명되며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데뷔 시즌인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아시안컵 차출 관계로 리그에서 많이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12경기 5골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다.[1] 하지만 프로 2년차를 맞이한 2001년, 2년차 징크스를 겪은데다 김정남 감독의 신임을 받지못하며 점점 출장기회가 줄어갔다. 결국 울산에서 자리가 없다고 판단한 최선수는 이적을 요구, 2002년 시즌을 앞두고 김상훈 선수와 함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포항 입단 후, 최순호 감독의 조련아래 다시금 예전의 기량을 찾나 싶었으나, 2002년 27경기를 나와 4골에 그쳤고 2003년 포항이 코난우성용을 영입함에 따라 최선수의 입지는 좁아져만 갔다. 특히 울산 시절부터 문제가 있던 발목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며, 장기 재활의 악령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장기 부상에서 돌아와 절치부심해 골을 좀 넣을만하면 또다시 부상이 최선수의 발목을 잡는 일이 매 시즌 반복된것도 이때부터 였다. 결국 포항측도 툭하면 부상으로 신음하던 최철우를 이적대상으로 올렸고 2004년 정해성 감독의 부름으로 부천 SK로 자리를 옮기게되었다. 시드니올대 시절 사제관계를 맺었던 정해성 품으로 돌아온 최선수는 발목 부상으로 망가졌던 몸상태를 끌어올리며 복귀할 준비를 마친뒤 2005년 부천의 주포로 발돋움하며[2] 6골을 쓸어담아 부천의 플레이오프 경쟁에 한몫을 거들었다. 특히 대전과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준 중거리 골은 부천 SK의 마지막 골로 기억에 남아있다.[3] 2006년 SK가 제주도로 연고이전을 감행한 후에도 SK에서 활동하던 최철우 선수는 2006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와 SK 사이의 2:3 대형 트레이드의 매물이 되어 전북으로 이적하였다. 당시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팀 리빌딩을 꾀하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될 나이많은 노장을 찾고있었고 그 대상으로 최철우 선수를 점찍었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최철우 선수의 전북 시절은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 제칼로, 스테보 등의 뛰어난 외국인공격수들 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린데다 2007시즌 막판에는 부상까지 당하며 전북 전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 결국 전북 측은 2007시즌 종료 후, 부산 아이파크의 김용희 선수 영입을 위해 최철우 선수와 최광희 선수 2명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제의했고, 부산은 이를 승낙. 최철우 선수는 전북 입단 1년만에 팀을 떠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천 시절 잠깐의 활약을 제외하고, 최철우 선수는 프로 데뷔이래 줄곧 하향세였고 올림픽대표 시절의 전성기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8년 부산은 최선수에게 마지막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부상의 악몽은 최선수를 놔주지 않았다. 2008시즌 초반 손바닥 부상으로 전력 이탈했던 최철우 선수는 무릎 부상까지 입으며 오랜시간을 재활로 보내다, 2008년 5월 24일 對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오랜만에 필드에 복귀를 하는듯 했다.. 하지만 교체출장 1분만에 볼경합 도중 허리와 무릎 부상을 크게 당하는 불상사를 겪었고, 결국 교체투입 3분만에 부상으로 다시 재교체되는 끔찍한 일을 겪고 말았다. 결국 이 날 부상으로 최선수는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말았고, 결국 2008시즌 종료 후 부산을 떠나고 말았다.


부산을 떠난 이후[편집]

부산에서 퇴단 후, 잠시 내셔널리그 미포조선, S-리그 팀인 홈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11년 선수 생활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이후로는 대동정산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대동정산고 심봉섭 감독을 2013년까지 보좌하였고, 2014년부터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2016년 현재까지 활동 중에 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기술적 능력과 골감각을 겸비한 공격수였지만, 그놈의 부상이 항상 발목을 잡았던 아쉬운 선수였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다만 2000년 울산은 최철우 등의 공백을 메우지못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최철우를 뽑았던 고재욱 감독은 2000년 6월 울산 감독직을 자진사임하게 된다.
  2. 여기에는 2005년 부천의 주포로 활약할걸로 기대했던 세지오아고스의 잉여화도 한몫 거들었다..
  3. 하필 바로 다음에 터진 알리송의 대박골 때문에 최철우 선수의 중거리 골은 부천팬들 등 소수에게만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