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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8일 (일) 13:02 판

윤상철

윤상철(1965년 6월 14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88년부터 1997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공격수이다. K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100골을 기록한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였다.


프로필

  • 이름 : 윤상철
  • 등록명 : 윤상철
  • 출생일 : 1965년 6월 14일
  • 유스클럽 : 건국대학교 졸업
  • 신체 : 178cm / 73kg
  • 수상 경력
1989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정
1990년 K리그 득점왕 수상, K리그 시즌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정
1993년 K리그 도움왕 수상, K리그 시즌 MVP 수상, K리그 시즌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정
1994년 K리그 득점왕 수상(2회째), K리그 시즌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정
  • 국가대표 경력
(통산 A매치 33경기 출장 2골[1])
K리그 대상 최초 3관왕 기록
K리그 최초 개인통산 100골 돌파 선수
K리그 역대 통산 득점순위 7위 랭크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럭키금성 황소 1988 18 6 4 1 0 0
럭키금성 황소 1989 38 10 17 6 3 0
럭키금성 황소 1990 30 4 12 2 0 0
LG 치타스 1991 31 16 7 2 0 0
LG 치타스 1992 34 22 7 2 2 0
LG 치타스 1993 32 6 9 8 0 1
LG 치타스 1994 34 6 24 1 3 0
LG 치타스 1995 31 19 4 2 0 0
안양 LG 치타스 1996 33 21 14 4 1 0
안양 LG 치타스 1997 19 13 3 3 0 0
통산 (K리그) - 300 123 101 31 9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10월 11일 기준


유소년 생활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 시절까지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윙어 였다고 한다.


프로 생활

1988년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권을 갖고있던 럭키금성 황소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당시 럭금 감독이었던 고재욱은 윤선수 주 포지션이 미드필더임에도, 대학시절 뛰어난 득점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기억하며 최전방으로 올려 전문적인 공격수 훈련을 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2년차인 1989년시즌부터는 17골을 기록하여 골잡이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득점왕에 올라 프로축구 최고의 공격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우승 이후로 LG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야심차게 데려온 외국인 선수 영입이 전부 실패하며 LG 구단은 몇시즌간 최하위권을 맴돌며 좀처럼 순위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간판공격수인 윤상철 선수는 늘 상대 수비수의 집중 견제를 받고 최전방에 고립되는 상황이 늘 발생하였다. 그 후 1997년 시즌 9위 18경기 15골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받아든 안양 LG 구단에서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하였다. 윤상철, 김판근 등의 노장선수들이 정리대상이 되어 강제로 은퇴를 시키게 되었고 게다가 구단에서 임의탈퇴까지 신청해 버려서 더이상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이래놓고 FC GS는 레전드니 어쩌니 선수생활을 더 하고싶었던 윤상철은 호주로 건너가 세미프로리그에서 2년간 뛰었고 호주에서 선수생활을 정리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득점 감각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감각적인 스크린플레이 이후에 이어지는 날카로운 슈팅이 일품이었다. 체격이 큰편이 아니고 스피드도 빠른편이 아니었으나 문전앞에서의 골감각 하나는 최고였던 선수다. 1991년 LG 치타스로 팀명이 변경된 후, 가장 치타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진 선수로 으레 윤상철 선수가 뽑히곤 했을 정도.


에피소드

  •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동안 한팀에서만 뛰어온 K리그의 전설로 남을 선수. 하지만 K리그 암흑기였던 1990년대 초중반에 활약했고, 하필 K리그 르네상스기인 1998년 직전해에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정리한 탓에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지 않는 비운의 스타이기도 하다.
  • 윤상철 선수가 세간에 오르내리지 못한 이유는, 리그에서의 가공할만한 활약도에 비해 국가대표에서는 저조한 활약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소위 윤상철, 김현석, 신태용 등 리그에서는 환상적인 활약을 보이면서도 국대에서는 저조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을 가리켜 국내용 공격수라는 오명을 씌우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의 일이다.
  • 사실상 1990년대 초중반 LG 치타스와 안양을 먹여살린 선수였다. 당시 LG는 윤상철을 비롯해, 구상범, 이영진, 김판근, 서정원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93시즌 준우승을 제외하고는 늘 최하위를 맴돌았는데, 이는 윤선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밥먹듯 국가대표에 차출된 탓에 소속팀에 전념하기가 쉽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LG는 윤상철만 막으면 되는 팀 정도로 이미지가 박혔던 안습의 팀전력을 자랑했다..;
  • 1994년 11월 5일, 對 포항제철 아톰스와의 경기에서 윤상철 선수는 해트트릭을 기록하지만, 하필 포철의 라데가 이날 4골을 집어넣은탓에 경기는 LG가 3:4로 패배하고 말았다. K리그 역사상 유일한 해트트릭을 성공하고도 소속팀이 패배한의 주인공이 바로 윤상철 선수이다.


선수 경력

  • 1998 : Marconi Stallions FC / 호주
  • 1999 : Newcastle Breakers / 호주


지도자 경력


같이 보기

참고

  1. 사실 A매치 출장에 대해서 정확한 공식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