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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3차전 중화민국과의 경기는 아시안컵 바로 직전에 있었던, [[1960년 로마 올림픽]] 아시아예선 몰수패의 설욕전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ref>중화민국과의 경기 도중, 한국 선수단이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를 퍼부었고 관중 난입 등 소요가 일어나자 주심이 몰수패를 선언해 결국 한국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1960년 로마 올림픽]] 문서 참고</ref> 한국 선수들이 집중력을 가지고 쉼없이 공격을 퍼부었고, 결국 전반 종료를 앞두고 터진 [[문정식]] 선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해당 경기를 끝으로, 한국은 3전 전승으로 동대회를 우승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후 3차전 중화민국과의 경기는 아시안컵 바로 직전에 있었던, [[1960년 로마 올림픽]] 아시아예선 몰수패의 설욕전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ref>중화민국과의 경기 도중, 한국 선수단이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를 퍼부었고 관중 난입 등 소요가 일어나자 주심이 몰수패를 선언해 결국 한국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1960년 로마 올림픽]] 문서 참고</ref> 한국 선수들이 집중력을 가지고 쉼없이 공격을 퍼부었고, 결국 전반 종료를 앞두고 터진 [[문정식]] 선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해당 경기를 끝으로, 한국은 3전 전승으로 동대회를 우승으로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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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C 아시안컵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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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팀 선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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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1992년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예선을 앞두고 예선기간이 [[92 한국프로축구대회]]와 겹치고 프로축구의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실업선수와 대학선수로 구성된 아마 선발팀을 아시안컵 예선에 파견한다.이와 같은 대한축구협회의 모험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대한축구협회는 아마 선발의 파견을 강행한다. 당시 아시안컵 예선에 파견된 맴버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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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표팀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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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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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이름 !! 당시 소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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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bgcolor="white" | '''스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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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최길수]] ||  [[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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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치''' || [[김성남]] ||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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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bgcolor="white" |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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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2" |'''GK''' || [[이승태]] ||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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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안]] || [[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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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7" |'''DF''' || [[손기영]] || [[주택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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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 [[대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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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석]] || [[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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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구]] || [[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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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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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응]] || [[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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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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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원]] || [[국민은행 축구단|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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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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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호]] || [[상무축구단|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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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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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4" |'''MF'''|| [[박남열]] || [[대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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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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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해]] || [[상무축구단|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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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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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호]] || [[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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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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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철]] || [[국민은행 축구단|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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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rowspan="7" |'''FW''' || [[최범락]]  || [[홍익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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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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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홍균]] || [[할렐루야 축구단 (1980~1998)|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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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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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상래]] || [[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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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차승룡]]  || [[인천대학교]]
 +
|-
 +
|  [[이종훈]]  || [[중앙대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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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웅렬]] || [[할렐루야 축구단 (1980~1998)|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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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원]]  ||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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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진행 =
 
= 경기 진행 =
 
한국 대표팀은 동부 최종예선을 대만에서 1956년 9월 2일에 마치고,<ref>즉 본선 대회 일정이 시작된 뒤에, 예선 일정이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ref> 바로 당일 홍콩으로 배편을 통해 출발, 9월 5일에야 홍콩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홍콩과의 본선 1차전 경기가 바로 다음날인 6일에 있었던 것. 사전 준비나 적응도 없이 곧바로 진행된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전반 2골을 실점하며 0:2로 끌려가다가, 후반 [[김지성]]ㆍ[[최광석]]의 연속골로 간신히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차전을 마쳤다. 이후 곧바로 2일 뒤 열린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서는 한국 대표팀은 체력을 회복하여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력을 펼쳐보인 끝에 [[우상권]]ㆍ[[성낙운]]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게 된다.<ref>특히 2차전은 후반 10분 경, [[차태성]] 선수가 퇴장당한 상황에서 일구어낸 승리라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ref> 마지막 3차전에서는 월남을 상대로 [[우상권]](2골)ㆍ[[최정민]](2골)ㆍ[[성낙운]]의 소나기 골이 터지며 5:3 승리를 거두어 결국 2승 1무의 성적으로 대회 초대 우승컵을 드는데 성공하였다.
 
한국 대표팀은 동부 최종예선을 대만에서 1956년 9월 2일에 마치고,<ref>즉 본선 대회 일정이 시작된 뒤에, 예선 일정이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ref> 바로 당일 홍콩으로 배편을 통해 출발, 9월 5일에야 홍콩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홍콩과의 본선 1차전 경기가 바로 다음날인 6일에 있었던 것. 사전 준비나 적응도 없이 곧바로 진행된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전반 2골을 실점하며 0:2로 끌려가다가, 후반 [[김지성]]ㆍ[[최광석]]의 연속골로 간신히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차전을 마쳤다. 이후 곧바로 2일 뒤 열린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서는 한국 대표팀은 체력을 회복하여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력을 펼쳐보인 끝에 [[우상권]]ㆍ[[성낙운]]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게 된다.<ref>특히 2차전은 후반 10분 경, [[차태성]] 선수가 퇴장당한 상황에서 일구어낸 승리라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ref> 마지막 3차전에서는 월남을 상대로 [[우상권]](2골)ㆍ[[최정민]](2골)ㆍ[[성낙운]]의 소나기 골이 터지며 5:3 승리를 거두어 결국 2승 1무의 성적으로 대회 초대 우승컵을 드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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