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축구단 (1980~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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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980년에 창단한 할렐루야 축구단에 관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축구단 전반에 관한 내용은에 대해서는 할렐루야 축구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할렐루야 축구단
할렐루야 축구단.jpg
기본정보
정식명칭 할렐루야 축구단
원어명 로마 : Hallelujah Football Club
창단년도 1980
연고지 충청도,강원도강원도전라도
운영
감독 조병득 (마지막 감독)
소속리그 수퍼리그(1983~1985),
실업축구(1986~1998)
홈페이지
현재시즌

할렐루야 축구단 (1980~1998)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할렐루야 축구단슈퍼리그에 참여하던 시기와 1986년과 1998년까지 실업축구에서 활약하던 할렐루야 축구단의 역사에 대한 문서이다. 마스코트 선정과정에서 할렐루야 독수리라는 명칭을 일부언론이 사용하기는 했으나 마스코트로 사용되기만 했을 뿐 실제 기업명+마스코트명의 미국식 팀명칭을 사용하진 않았으므로 수퍼리그 참여시에도 정식명칭은 할렐루야 축구단이었다. [1]



역사[편집]

창단[편집]

1979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한 신동아그룹의 오너 최순영씨가 자신의 축협 회장 취임시 공약[2]중 하나인 프로리그를 위해 1980년 12월 20일 창단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축구단이었다. 축구의 대중화 및 기독교 선교가 창단 목적이었기 때문에 보통 기업구단들이 그룹 자회사 산하에 구단을 두는 것과 달리 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선교단체인 한국기독교선교원 산하에 구단을 두었고, 창단 감독이던 김용식 이하 선수 전원이 개신교 교인이거나 개신교에 입교할 사람으로 구성되었으며, 팀명은 할렐루야가 되었다.[3] 그러나 할렐루야팀이 창단되었으나, 정작 다른 프로팀이 생기지 않았고 프로 리그가 출범되지 못해 곤란함을 겪게 되었다.[4] 그래서 1981~82년 동안 미주(북아메리카)와 홍콩 등지의 국제 축구대회에 출전하기도 하고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일명 박스컵) 에도 출전하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자웅을 겨루기도 하였다. 1982년에는 신앙과 축구 사이의 중심문제로 논란이 생겼는데 결국 할렐루야 축구단의 창단주역이었던 이영무를 비롯하여, 신현호, 조병득, 김철용, 박민재 등 5명의 선수가 4월 29일 제명, 탈퇴되어 12명의 선수만 남게 되는 위기 상황에 쳐하기도 하였다.[5]프로축구단이 참여하는 리그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먼저 창단된 할렐루야 축구단은 창단초기 실업축구팀의 보이콧으로 경기를 제대로 갖지못하는 상황에 빠졌다가 83년 슈퍼리그가 출범하면서 비로소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프로야구의 영향을 받아 일본식 구단명칭(기업명+마스코트) 형식이 되면서 마스코트를 독수리로 정한다.[6][7]

수퍼리그 참가[편집]

1983년 드디어 프로팀과 실업리그 선발팀이 함께 출전하는 슈퍼리그가 개막되면서 할렐루야도 참가하게 되었는데 첫해 우승을 차지해 K리그 초대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83년 우승 이후 주축 멤버들의 대거 은퇴 선언과 타 팀 이적등으로 전력이 처지면서 84, 85시즌에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결국 1985년 가을, 85시즌을 끝으로 슈퍼리그 참가 포기와 더불어 아마추어팀 전환[8]을 선언하면서 프로 무대에서 할렐루야 축구단은 사라지고 말았고, 이후 프로 축구와는 다른 실업 축구로써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아마추어 팀으로의 전환[편집]

1986년 아마추어 팀으로 전환하여 실업축구연맹전등의 대회에 출전한다. 이후 프로출신들이 대거 이탈했지만 아마 축구계에서는 강팀의 자리를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유지하였다. 각종 실업 축구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K리그 드래프트로 수많은 선수를 프로에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해체[편집]

1986년 아마추어 팀으로 전환하여 실업축구연맹전등의 대회에 출전한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1998년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맡고 있던 기독교 선교횃불재단은 할렐루야 축구단의 해체를 선언한다. 팀 해체 통보후 선수들은 자비를 들여가며 제3회 삼보체인지업 FA CUP 축구대회에 참가하지만 11월17일 천안 오룡경기장에서 있었던 천안 일화와의 1-4 패배를 마지막으로 18년의 역사를 마감한다.[9]

기록[편집]

성적 및 수상[편집]

연도 대회 명칭 수상
1983년 1983년 슈퍼리그 우승


K리그 참가결과[편집]

시즌 리그 순위 경기 감독
1983 수퍼리그 우승 16 6 8 2 28 20 함흥철
1984 수퍼리그 4/8 28 10 9 9 34 35 함흥철
1985 축구대제전 8/8 21 3 7 11 15 30 함흥철

아마대회 성적[편집]

대회명 순위 연도
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990(추계),1993(춘계)
준우승 1987(춘계),1991(춘계),1993(추계),1995(춘계)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준우승 1998
군.실업축구대회 우승 1991,1992
준우승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1988
준우승 1994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준우승 1991, 1994, 1995, 1997, 1998
전국체전 우승 1991,1993,1995
준우승 1987,1997

역대 주요 선수[편집]

성명
박성화, 이용수, 김진옥, 박창선, 최종덕, 조병득, 신현호,오석재

역대 감독[편집]

순번 이름 선임 취임 사임 재임시즌
수퍼리그 시절
1대 김용식 1980/12 [10] 1980/12 1982/03/05
1981-1982
2대 함흥철 1982/03/06[11] 1982/03/06 1985 1982-1985
실업축구 시절
황재만[12] 1989 1989 1993.10 1989-1993.10
신현호 1993.11.1 1993.11.1 1996/10/19 1993.11.1-1996
조병득 1996/10/20[13] 1996/10/20 1998/11/17 1997-1998

제반 사항[편집]

엠블럼[편집]

에피소드[편집]

  • 독수리 마스코트는 할렐루야의 유니폼 서플라이어이던 아식스타이거의 도안사에 의해 그려졌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전 문서명이 할렐루야 독수리 였으나 실제로 할렐루야 축구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문서명을 변경한다.
  2. 당시 최순영의 공약이자 축협의 당면과제는 크게 축구전용구장, 승강제프로축구 출범이었다.
  3. 할렐루야(Hallelujah)는 하느님을 찬양하라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로 개신교에서 많이 사용되며, 가톨릭에서는 알렐루야 혹은 찬미 예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 개신교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개신교측에서는 개신교라는 단어보다 기독교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나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가톨릭) 모두를 칭하는 단어이다.
  4. 때문에 정식 창단은 80년 12월에 했지만 공식 경기는 이듬해 3월에야 이루어졌다. 즉 1981년 3월 28일, 할렐루야 축구단은 동대문운동장에서 브라질 Americano를 초청해 친선 경기를 가졌으며 이영무의 골과 상대팀의 자책골을 더해 2:1로 데뷔전 승리를 거두었던 것. 이후 동년 4월 11일에는 대전공설운동장에서 홍콩 1부 리그 팀인 세이코를 초청해 이영길, 이영무, 신현호의 연속골로 3:1 대승을 거두었던바 있다. 그러나 경기간 간극도 길었고, 이벤트성 초청 경기에 국한된 한계가 있었다.
  5. 탈퇴된 선수들은 기독교 선교구단인 할렐루야가 신앙보다 축구만 신경쓰고 있으며 할렐루야 감독이 되기 위해 입교한 함흥철 감독과 나머지 선수들의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하고 구단측에서는 경기전 운동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기도를 하여 경기에 지장을 주며 간증선교를 위해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는 등 축구선수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신앙에만 몰두한다고 대립했다. 결국에는 이수정 할렐루야 축구단 단장이 주장 이영무에게 좀 더 훈련에 매진하라고 했으나 그에 대해 반발하고 5명의 선수가 탈퇴를 선언하여 결국 5명의 선수가 제명. 이영무는 탈퇴후 임마누엘 축구단을 꾸려 코치겸 선수로 활동하면서 목사까지 되었고 나중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단장이 되었으니 승리의 이영무. 좀 ㅎㄷㄷㄷ한 스토리.
  6. 성경 이사야40장 31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같이, 달음박질하여도 피곤치 아니하겠고 걸어도 피곤치 아니하겠다"에서 유래. 독수리 날개 치듯이(On Eagle's Wings) 라는 찬송가도 있다.
  7. 개신교에서 독수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도 승리를 상징하고 기백과 용맹을 나타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8. 원래는 구단 매각을 추진했지만 협회장의 구단해체에 대한 반발 및 기독교계의 반발(신의 부름에 부응하기 위한 팀을 매각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며..)로 인해 매각 계획은 철회하고 아마추어로 전환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김덕기의 프로축구 30년<23> 아듀, 프로 1호 독수리 날개 접다 -스포탈코리아, 2013년 4월 3일-
  9. '할렐루야' 축구찬양 18년마감 -1998년 11월 18일, 경향신문-
  10. [1]
  11. [2]
  12. 1989년 황재만 감독, 신현호 코치 체계로 운영되다 황재만 감독이 총감독이 되고 신현호 코치가 감독직을 맡게 되었고, 1996년 성적 문제로 신현호 감독이 해임되고 조병득 감독이 취임하였으나 황재만 총감독은 구단이 해체될 때까지 유임되었다. 황재만 감독은 하지 마비로 인해 휠체어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시절에도 신현호 코치가 일정부분 감독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