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165 바이트 추가됨 ,  2020년 4월 29일 (수) 00:06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
[[File:이민선.jpg|180픽셀|섬네일|대구 시절의 이민선]]
+
[[File:이민선.jpg|180픽셀|섬네일|대구 시절 이민선]]
'''이민선'''(1983년 10월 21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고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던 미드필더이다.
+
'''이민선'''(1983년 10월 21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고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던 미드필더이다.
      24번째 줄: 24번째 줄:  
* 최종학력 : 선문대학교 중퇴
 
* 최종학력 : 선문대학교 중퇴
   −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50번째 줄: 50번째 줄:  
! 통산 ([[내셔널리그]]) ||KNL|| - ||29 ||-|| 4||2 ||3 ||0
 
! 통산 ([[내셔널리그]]) ||KNL|| - ||29 ||-|| 4||2 ||3 ||0
 
|}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선수기록|ID=20040107}}
 
:{{연맹선수기록|ID=20040107}}
 
{{col-end}}
 
{{col-end}}
 +
    
== 유소년 생활 ==
 
== 유소년 생활 ==
[[동북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줄곧 발탁될 정도로 유소년 시절에는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2002년 [[AFC U-19 청소년선수권]]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였으며 한국 대표팀의 우승을 견인하였다. [[선문대학교]]로 진학 후에는 팀의 에이스를 꿰차며 추계연맹 우승을 일구어내기도 하였다.
+
[[동북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줄곧 발탁될 정도로 유소년 시절에는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2002년 [[AFC U-19 청소년선수권]]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였으며 한국 대표팀의 우승을 견인하였다. [[선문대학교]]로 진학 후에는 팀의 에이스를 꿰차며 추계연맹 우승을 일궈내기도 하였다.
       
== K리그 ==
 
== K리그 ==
2004년, [[대구 FC]]에 일찌감치 입단하며 어린 기대주로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나, 천성이 장난을 좋아하고 재기발랄한 이민선 선수와 [[박종환]] 감독의 지도 방식은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박종환 감독의 불호령 아래 2군으로 내려가 1년 가까운 기간동안 제대로 된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대구와 계약 해지 후, 2006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했으나 그곳에서도 부상과 컨디션 조절 실패로 8개월여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
2004년 [[대구 FC]]에 일찌감치 입단하며 어린 기대주로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나, 재기발랄한 이민선 선수와 <del>빳따</del> [[박종환]] 감독의 지도 방식은 궁합이 맞질 않았던듯.. 결국 박종환 감독의 불호령 아래 2군으로 내려가 1년 가까운 기간동안 제대로 된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대구와 계약 해지 후, 2006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했으나 그곳에서도 부상과 컨디션 조절 실패로 8개월여 만에 퇴단하고 말았다.
       
== 내셔널리그 ==
 
== 내셔널리그 ==
2007년 [[INGNEX FC]]에 입단하며 2007 내셔널리그를 소화했으나, 갑작스런 팀 해체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천안 시청]] 축구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천안의 주축 멤버로 성장했으나 2008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으로 방출되었다. 아마도 군문제가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
2007년 [[INGNEX FC]]에 입단하며 2007 내셔널리그를 소화했으나, 갑작스런 팀 해체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천안 시청]] 축구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천안의 주축 멤버로 성장했으나 2008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으로 천안시청에서도 퇴단 후 은퇴하였다. 아마도 군문제가 걸렸던듯.  
      70번째 줄: 71번째 줄:     
== 에피소드 ==
 
== 에피소드 ==
2002년 당시, [[AFC U-19 챔피언십]] 본선 조별예선을 손쉽게 통과한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새로 잡은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이민선 선수가 숙소의 수영장을 보자마자 뛰어들었다 물에 빠질 뻔했다고.. 이 때 2002년 청소년대표 깜짝 스타였던 [[김동현3|김동현]] 선수가 주저하지 않고 풀장에 뛰어들어 이민선 선수를 구해내는 소동이 있었다..<ref>이 사건 이후로 이민선 선수는 덕분에 김동현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다고 한다.</ref> 이후 '까불이'로 찍힌 이민선 선수는 청소년 선수권 잔여경기에서 모두 출장할 수 없었다.  
+
2002년 당시, [[AFC U-19 챔피언십]] 본선 조별 예선을 손쉽게 통과한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새로 잡은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이민선 선수가 숙소의 수영장을 보자마자 뛰어들었다가 물에 빠질 뻔했다고.. 이 때 2002년 청소년대표 깜짝 스타였던 <del>지금은 승부조작의 대명사가 되었지만</del> [[김동현3|김동현]] 선수가 주저하지 않고 풀장에 뛰어들어 이민선 선수를 구해내는 소동이 있었다..<ref>이 사건 이후로 이민선 선수는 덕분에 김동현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다고 한다.</ref> 다행히 별 문제없이 작은 소동으로 끝났지만, 이 때 스탭진들에게 '까불이'로 찍힌 이민선 선수는 청소년 선수권 잔여경기에서 모두 출장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