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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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절 오범석

오범석(吳範錫, 1984년 7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풀백이다.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뛰고 있다.


프로필

  • 이름 : 오범석
  • 출생일 : 1984년 7월 29일
  • 신장 : 180cm / 73kg
  • 국가대표 경력
200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2005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 본선 대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10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 본선 대표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대표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통산 A매치 43경기 출장 2골)


  • K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 스틸러스 K리그 2003 1 1 0 0 0 0
2004 25 7 1 0 3 0
2005 33 2 2 0 7 0
2006 33 7 2 2 10 0
2007 16 8 0 0 6 0
울산 현대 2009 14 1 0 0 2 0
2010 21 3 0 2 5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 29 3 0 1 6 0
2012 39 1 0 1 11 0
경찰 축구단 챌린지 2013 23 3 2 2 10 0
안산경찰청 축구단 2014 16 1 2 0 9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클래식 2014 0 0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 211 33 9 6 50 0
챌린지 - 39 4 4 2 19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10월 1일 기준.


유소년 시절

옥동초등학교, 학성중학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머리를 잘 써 상대 선수를 잘 피해 다니며 오버래핑을 하여 꾀돌이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인 '사까나시 (Sacanage, 사카나지. 어감이 좀......)'라는 별명이 붙었다. 터프한 플레이로 지능적이고 꼭 필요한 상황에서 반칙을 많이 범하여 '반칙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포항 시절

2003년 포항제철고 출신답게 연고 구단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최순호 감독은 오범석을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용했고, 오범석은 기대에 부응하듯이 오른쪽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 및 수비수를 오가며 맹활약했다. 당시에는 이영표를 이을 차세대 측면 수비수라 평가받기도 하였다. 오범석은 이를 바탕으로 2004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이후 오범석은 기복없이 꾸준히 2007년까지 포항에서 활약하면서 국가대표에도 뽑히는 등 성공적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요코하마 FC 시절

포항에서 맹활약하던 오범석에게 가장 손을 내민 것은 일본 J리그요코하마 FC였다. 오범석은 새로운 도전을 원했고, 포항은 2007년 7월, 1년 임대의 형식으로 오범석을 요코하마에 보냈다, 그러나 시민구단인 요코하마 FC는 약체 팀이었고, 시즌 중반 감독마저 포풍 경질을 당하면서, 팀은 최하위를 마크하면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시절

일본에서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오범석은 2008년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로의 이적을 추진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성남 일화 천마로의 이적을 추진하던 포항 스틸러스와 마찰을 빚었다. 포항 스틸러스측과 오범석측은 각각 '임의탈퇴'와 'FIFA 제소'라는 강경책을 내세워 대립하였고, 결국 포항 스틸러스가 이적동의서를 발급하면서 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로 완전 이적하였다.[1] 이 과정에서 포항과 성남의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로 이적한 이후 데뷔전 상대로 FC 테레크 그로즈니를 맞아 '최우수선수'에 선정되는 등 주전 선수로 뛰며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2009 시즌엔 로만 시스킨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많은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2008시즌 제니트 시절 아나톨리 티모슈크에게 철저하게 밀린 이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말았다. 결국 오범석은 1년 반만에 국내로 돌아올수 밖에 없게 되었다.


울산 시절

2009년 7월 K리그의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며 국내에 복귀한 오범석은 포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안정된 활약을 보여주었다. 울산에서 오범석은 포항에서 뛰던 시절보다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이는 공격 다변화를 꾀하던 울산에 호재로 다가왔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오범석은 2010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에도 선발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2]


수원 입단 이후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 오른쪽 수비를 맡았던 송종국이 떠나고 이를 뒷받침해주던 조원희마저 떠나자 우측면 수비자원이 부족해진 수원은 오범석의 영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으며, 결국 2011년 1월 10일, 강민수와 트레이드 되어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



수원에 입단한 오범석은 자신의 주 포지션인 오른쪽 풀백 뿐만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수비라인을 진두지휘 하였고, 2013년 양상민과 함께 경찰청 축구단으로 들어가 병역의무를 수행하였다. 2013년부터 경찰청이 K리그 챌린지 무대에 참가하면서 프로에서 경기 감각을 계속 유지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4년 9월 26일 근 2년간의 군생활을 모두 마치고 수원으로 복귀하였다. 복귀하자마자 상주 상무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풀타임 활약하며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수원 입장으로써는 오범석의 존재가 여러모로 큰 힘이 되었다. FC GS와의 경기에서 로저가 터뜨린 결승골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전역 이후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장했다.

국가대표 생활

2005년 1월 16일, 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2007년 AFC 아시안컵은 물론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무대에도 참가하며 국가대표 내 사이드 풀백 자원으로 오랜 시간 활약하였다. 한 때 송종국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의 차세대 오른쪽 풀백을 맡을 적임자로 지목되기도 하였는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을 상대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뒤 국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이후 국가대표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에피소드

  • 오범석의 아버지는 오세권으로, 과거 축구선수로 활약했으며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은퇴 이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과 내셔널리그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김희태축구센터에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범석이 국대에서 잘 못하면 심심하면 아버지가 언급되기도 했다. 기술위원이라는 자리가 국대설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막강한 자리가 아니다.
  • 오범석의 누나인 오유미는 2003년 미스코리아 미(美) 출신이다. 포탈 검색창에 오범석을 치면 제일먼저 '오범석 누나'가 나온다.
  • 2007년에는 영국의 한 축구 전문 월간지에서 선정한 '이적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선수 100인 명단'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같이보기


참고

  1. 여기서 포항은 성남에게 꼼짝없이 위약금을 물어주게 되게 생겼는데, 정성룡의 이적료에서 이 위약금을 빼면서 이를 상쇄하였다
  2. 하지만 월드컵 B조 예선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오범석은 메시만을 따라다니다 다른 선수들을 놓쳤고, 대한민국은 1-4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의 네티즌들은 동점골 기회를 날려먹은 염기훈과 함께 오-염라인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