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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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ors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10월 13일 (목) 22: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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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윤정환.jpg
부천 시절 윤정환

윤정환(1973년 2월 16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미드필더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플레이메이커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던 선수. 오오 윤느님 오오[1]


프로필

  • 이름 : 윤정환
1996년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02년 FIFA 월드컵 대표
(통산 A매치 38경기 출장 3골)
  • 현 소속팀 : 선수생활 은퇴
  • 등번호 : -
  • 별명 : 제리
  • K리그 기록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유공 코끼리 1995 24 7 3 5 9 0
부천 SK 1996 22 1 2 8 2 0
부천 SK 1997 16 10 3 3 4 0
부천 SK 1998 28 13 4 8 4 0
부천 SK 1999 18 3 3 4 1 0
세레소 오사카 2000
세레소 오사카 2001
세레소 오사카 2002
성남 일화 천마 2003 30 26 1 3 2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4 34 5 2 8 6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5 31 20 2 5 6 0
사간 도스 2006
사간 도스 2007
사간 도스 2008
통산(K리그) - 203 85 20 44 34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시즌 종료시점 기준.


지도자 프로필

파일:윤정환 감독.jpg
감독이 되신 윤정환. 으앙 멋있다 ㅜ 약간 성룡 느낌이 난다




유소년 생활

금호고등학교동아대학교를 졸업 했다. 프로 입단 이전부터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프로 생활

유공 입단, 그리고 니폼니쉬

J리그 시절

유공에서의 성공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한 윤정환에게 해외팀들의 오퍼가 안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 J리그는 세밀한 패스플레이를 바탕으로한 축구를 펼치고 있었고, 이에 뛰어난 패싱능력을 가진 윤정환을 탐을 내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 팀은 세레소 오사카였고, 윤정환은 이적료 약 11억원을 기록하며 J리그 최고급의 대우로 세레소로 이적하게 되었다. 윤정환은 일본에서도 뛰어난 패싱플레이를 바탕으로 세레소의 운영진을 흡족케했다. 2000년 35경기에 나와 6골을 기록한 윤정환은 2001년 32경기에 나와 10골을 기록, 첫 두자리수 득점을 올렸지만, 2000년 후반기부터 시작 된 답이 없는 자동문 수비의 덕택으로-_-; 팀은 2부리그로의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2001년 시즌 종료 후 당초 2년 계약으로 세레소와의 계약이 종료되어 이적을 모색하고 있었으나, J2리그로 강등 된 세레소는 모든 강등팀이 그렇듯 핵심선수들을 재계약 시키는에 총력을 기울였고 K리그 및 J리그 팀들과의 스카우트 전쟁에서 승리하여 윤정환과 재계약 하는데 성공하였다. J2리그에서 2002 시즌을 맞은 윤정환은 29경기 2골을 기록하면서 활약하며 다시 J1리그로 승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K리그 복귀

2003년 이적료 50만달러를 기록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며 K리그에 복귀하였다. 당시 화려한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던 성남이었기에 윤정환 선수의 영입은 성남을 더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성남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던 신태용과 포지션이 겹치는데다 차경복 감독의 전술과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로 인해 주로 교체출장에 그치고 말았다. 차경복 감독은 수비가담이 적고 개인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이유로 중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즌도 성남이 우승) 그리고 2004년 시즌 전 부천 시절 5년 동안 코치로서 함께했던 조윤환 감독의 적극적인 영입 제의를 받아 트레이드 형식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게 된다.



조윤환 감독은 부천시절의 전술을 운용하기 위해 여러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주로 부천 시절 자신이 중용했던 선수들을 영입했다. 윤정환도 그 중 하나 였다.[2] 다행히 조윤환 감독은 니폼니쉬의 제자답게 윤정환을 활용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강력한 미드필드를 구성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그리고 2004년 시즌 시작을 알리는 대한민국 슈퍼컵에서 친정 팀인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윤정환은 완벽한 플레이로 성남의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대활약을 예고했다. 2004년 전반기 전북은 2위를 기록하며 우승후보로 까지 거론되었지만 후반기부터 잇따른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와 전체적인 부진으로 인해 성적이 급하강하며 2005년 여름 조윤환은 감독직에서 사퇴하게 된다. 그 후 부임한 신임 감독 최강희는 선수단 리빌딩 과정에서 FA로 풀린 윤정환을 굳이 잡으려 하지 않았고, 2006년 J리그 사간 도스로 이적하였다.


사간 토스

J2의 작은 클럽인 사간 도스에서는 비록 노장이었지만 한 차원 높은 클래스의 기술을 선보이며 팀을 이끌었다. 참고로 2006년 시즌에 기록한 4위가 현재까지 사간 도스의 가장 높은 순위이다. 그리고 선수활동과 함께 틈틈이 지도자 과정을 착실히 준비하였다. 그후 2007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2008년 은퇴 후에도 사간 도스에 남아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0년 수석 코치 겸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였다.[3] 드디어 S급 라이센스를 따낸 윤정환은 2011년부터 사간 도스의 감독을 맡고 있다. 얼른 K리그로 와주세요 핰..


플레이 스타일

그의 플레이를 논하자면 천재 플레이메이커로는 수식이 부족할 정도. 환상적인 터치, 간결한 동작, 그리고 이어지는 정확한 패스는 보는이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이끌어내게 하였다. 몸싸움을 약간 꺼려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그만큼 지능적으로 해결하는 스타일. 다만 윤정환 선수를 논할때 단점으로 체력이 부족한 반쪽짜리 선수라고 평가하는게 일반적인데... 다만 뛸 때와 안뛸 때를 구별했을뿐, 체력적으로 부족한 선수는 절대 아니다. 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딱봐도 아니다 싶으면 안뛰는 스타일이었고, 이는 근성을 강조하는 한국축구 지도 스타일과는 당연히 어울릴 수 없었기에 이런 부정적 평가가 생긴 것일뿐.[4] 여기에 팀 전체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카리스마와 경기 전체를 보는 눈도 한차원 높았던 선수로 니폼니쉬는 윤정환 선수를 두고 자기가 해야할 일을 다 알고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굳이 내가 지시할 필요가 없다. 는 평을 남기기도 하였었다. 으앙 축구만화 주인공같아 ㅠㅠ

또한, 윤정환 선수는 단순히 패스만 찔러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득점력도 갖춘 선수였지만, 기실 윤정환 선수는 득점 찬스가 엄청나게 많은 상황에서도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를 통해 어시스트 하는걸 즐겼다.[5] 다만 이게 좀 과해서 패널티 에어리어내 슈팅찬스 상황에서도 계속 찔러주기만 하다가 부천 스트라이커들이 허공에 날려먹기 일쑤였는데, 이는 윤정환 선수 본인의 욕심과 유독 득점 감각 있는 스트라이커가 부족했던 부천 SK에 두고두고 약점으로 남았다.[6]


에피소드

파일:허당골.jpg
당시 윤정환의 패스로 실점을 허용한 김병지 선수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 1997년 4월 26일, 당시 부천 VS 울산 경기 도중, 부천의 윤정환이 필드에 쓰러진 선수가 치료 받는 상황이라 울산이 볼을 라인아웃 시켰던걸 관례대로 부천 볼이나 다시 울산에 넘겨준다는 것이 윤정환의 힘 조절 실패로 울산 GK 김병지 한테 패스한다는게 그만 그대로 골이 된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니폼니쉬 감독은 부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려 울산에게 1골을 내줄 것을 지시했으나, 부천 골리 샤샤만은 이 지시를 듣지 못해, 부천 선수들이 왜 수비를 안하냐고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울산의 슈팅들을 막아낸 일화가 있다. 결국 감독이 샤샤를 잠깐 불러 자초지종을 얘기한 이후에야 실점을 허용. 결국 1:1로 경기가 끝났다.


  • 신은 모든걸 주지 않는다고.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과 윤정환이라는 사기캐릭터를 가진 부천 SK였지만, 골을 넣을 스트라이커가 부천엔 정말 정말 없었다. 그나마 밥값한 세르게이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윤정환 선수의 패스를 받아 두 세번의 기회안에 골을 성공시키는 선수가 없었다. ㅠㅠ 샤샤가 부천에 있었다면 윤정환 선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을텐데...[7]


경력


같이 보기


참고

  1.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문서 수정자는 윤정환빠다. 객관적인 문서가 아닐 수도(?) 있다.
  2. 당시 8~9억에 달하는 이적료를 맞추기 위해 서혁수에 4억을 얻어주었다. 당시 전북 팬들은 조윤환 감독이 김도훈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이적시키는데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당연히 윤정환 영입에 대해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3. 사실상 2010시즌부터 사간 토스 감독직을 수행하였으나, S급 라이센스만 감독 업무가 가능한 일본 축구 규정에 따라 A급 라이센스 소지자인 윤정환은 명목상 수석코치의 직위에 머물러 있었다.
  4. 발레리 니폼니쉬를 만난 것이 윤정환 선수에게 있어서는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음이 여기에 있다. 다른 감독같았으면, 윤정환 선수의 재능의 반도 써먹질 못했을 것이다. 당장 고 차경복 감독이 윤정환에 대해 내린 평가만 봐도 알 수 있지않은가
  5. 때문에 K리그 통산 40도움이 넘는 선수 중, 강득수 선수와 함께 유일하게 40-40 클럽에 가입하지 못한 선수로 남았다.
  6. 이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http://tirano.egloos.com/1725990 에서 홍차도둑님의 글을 꼭보자! 위 링크를 따라가 윤정환 시리즈를 필독해주길 부탁드린다. 윤정환에 대해 모르신다면 정독하시고, 윤정환 빠라면 즐겨찾기해놓고 매일 보자. 오오 윤느님 오오 ㅠㅠ
  7. 실제로 부산 대우 로얄즈샤샤를 매물로 내놓았을 당시, 부천과 수원이 경합을 벌인바 있다. 결국 샤샤는 수원행.. 이때 부천으로 샤샤가 이적했다면 K리그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외부 링크